김윤겸(金允謙)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극양(克讓), 호는 진재(眞宰)·산초(山樵)·묵초(默樵). 척화대신 상헌(尙憲)의 현손으로 관직은 진주 동쪽의 소촌역(召村驛)의 찰방을 지냈으며, 둘째 아들 용행(龍行)의 친구인 박제가(朴齊家)의 봉별금장진재북유시사수(奉別金丈眞宰北遊詩四首)에 의하면 영조 말년에 중국 북방을 여행한 것으로 보인다.
정선(鄭敾)이 이룬 진경산수화풍(眞景山水畵風)을 이어받아 강희언(姜熙彦)·김응환(金應煥) 등과 함께 겸재파(謙齋派)를 형성하였고, 금강산·한양 근교·단양·영남 지방 등 명승을 여행하면서 진경산수 제작에 몰두하였으며, 실경을 대담하게 생략한 근대적 화면 구성의 특징과 수묵과 담채의 가벼운 표현과 바위의 붓질을 중복하여 입체감을 가미시킨 표현은 서구적인 수채화를 연상하게 하는 창작으로 정선이나 겸재파 화가들의 경향에서 벗어나 자신의 화풍을 갖추었음을 전해 오는 그림으로 보아 알 수 있다.
長安寺(장안사) / 신좌모(申佐模)
矗矗尖尖怪怪奇 人仙鬼佛總堪疑
촉촉첨첨괴괴기 인선귀불총감의
平生詩爲金剛惜 及到金剛便廢詩
평생시위김강석 급도김강편폐시
우뚝우뚝 뾰죽뾰죽 괴상하고 기이하여
사람인지 신선인지 귀신인지 부처님인지 아리송하네
지금껏 시 쓰는 일 금강산 위해 아껴 왔는데
금강산에 와서는 시 쓰는 일 그만두어 버렸네
금강산은 봉우리마다 그 모양이 다르고 경관이 황홀하여 제대로 된 시를 쓰겠다고 별러 오던 시인들이 생각을 아예 접어 버리고 할 말을 잊었다는, 곧 시인들이 시로 나타낼 수 없을 만큼 금강산이 기이하고 아름답고 황홀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신좌모(申佐模)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799(정조 23)∼1877(고종 14).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좌인(左人), 호는 담인(澹人)으로 춘추관 편수관이 되어 실록편찬에도 참여하였으며, 은퇴한 뒤에는 향리에 화수헌(花樹軒)을 짓고 후진양성으로 많은 학자를 배출, 저서로는 담인집(澹人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