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의 제4대 황제 강희제 업적과 사상
강희제(재위 1661~1722년)는 청나라의 제4대 황제로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 휘는 현엽(玄燁)이다. 그는 중국의 역대 황제 가운데 가장 긴 62년의 재위 기록을 보유한 황제로 명군 중의 명군으로 알려져 있다.
강희제
강희제는 중국 역사상 전례가 없는 영토를 보유하는 위업을 이룩한 황제이기도 하다. 1689년 청나라와 러시아 사이에 네르친스크 조약이 체결됐다. 이 조약으로 청나라는 흑룡강 및 동북쪽의 영토를 포함한 국경선을 확정했다. 이 조약은 중국 역사상 최초로 맺어진 국제평등 조약으로 “하늘 아래 모든 땅은 황제의 것이다.” 혹은 “세상의 모든 이는 황제의 신하다.”라는 전통적인 중화사상에 반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강희제가 명군으로 칭송받는 데는 그가 단순히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소수의 만주족이 다수의 한족의 반감을 사지 않게 그들을 통제하고, 거대한 제국을 성공적으로 통치하는 데 온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한족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학문을 중시했다. 그는 특히 주자학에 열중해 스스로 유학자의 삶을 살고자 했다. 조정 대신들과 경연이나 조회에서 유교 경전을 논하는 것을 즐겼으며, 학식이 매우 깊어 대신들이 그와 유교 경전을 논하지 못할 정도였다. 강희제의 포용력은 유학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삼번의 난과 러시아와의 전투를 통해 서양의 앞선 기술을 도입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고 서양의 학문을 과감히 수용했다. 그는 예수회 선교사에게 서양의 지리, 천문, 수학, 음악 등을 배웠는데, 특히 천문학과 수학을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이러한 강희제의 학문에 대한 열정은 그의 치세에 반영되었다. 강희제는 ‘박학홍유과(博學鴻儒科)’라는 과거를 통해 인재를 선발하고 전국에서 유명한 학자들을 소집해 편찬 작업을 하게 했다. 이리하여 《명사(明史)》, 《강희자전》,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연감유함(淵監類函)》, 《패문운부(佩文韻府)》, 《역상고성》, 《수리정온》, 《전당시》 등이 편찬되었다.
■ 강희제의 삶의 핵심 사상
1. 신기미(愼機微) : ‘마음속에 일어나는 사소한 잡념을 제거하고 자신을 단속한다.’는 뜻이다. 자신을 절제하고 단속해서 치우침이 없는 정신과 태도입니다. 강희제는 신기미정신으로 살았기 때문에 쓸데없는 명예병이나 권력욕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그의 나이 70세 생일에 축하연을 열겠다고 했지만 거절했습니다. 갈단을 평정한 후에는 신하들이 올린 존호(尊號)를 거부했습니다. 그의 통치 60주년에 20자나 되는 경축 존호가 올라왔지만 거절했습니다.
2. 덕재승(德勝才) : ‘덕이 재주를 이긴다’는 뜻이다. 무위지치(無爲之治)를 강조했습니다. 다스리지 않고 다스리는 것으로 최소한의 통치로서 국태민안과 안거낙업(安居樂業)을 이룬다는 통치술입니다. 그는 ‘힘으로 하는 자는 홀로 영웅이 되고 위엄으로 하는 자는 한 나라를 지킬 수 있지만 덕으로 지키는 자는 천하를 세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3. 국궁진력(鞠躬盡力) : ‘존경하는 마음으로 몸을 굽혀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다. 강희제는 “짐은 하늘의 종이기 때문에 어떤 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군주는 죽는 날까지 한 순간도 쉬어서는 안 된다.” 그는 문부백관이 퇴궐한 뒤에도 상소문을 가지고 침소에 들어가 읽다가 밤을 샜습니다. 그의 유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한 가지 일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온 천하에 근심을 끼치게 되고 한 순간을 부지런하지 않으면 천대 만대에 우환을 남기게 된다. 나는 천하를 보살피는데 내 마음을 다 쏟아 부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