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닥거리는 무당이 부정(不淨)이나 살(煞)을 풀기 위해 간단하게 음식을 차려놓고 하는 굿을 말한다. 미신은 보편성을 지니지 못하며 일반인들 사이에서 헛되고 바르지 못하다고 인정되는 믿음이나 신앙을 말한다. 미신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것을 맹목적으로 믿는 부질없는 일을 말한다.
불교가 푸닥거리를 그만 두어야 한다고 법정 스님은 1964년부터 끊임없이 제기했다. 그러나 불교에서 푸닥거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돈이 들어가는 푸닥거리가 있다. 부처님은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과 인과법(因果法), 무아(無我)와 무상(無常)그리고 공(空)의 진리를 설파하셨는데 불교가 중국을 거치고 우리 문화와 합세되면서 불교에서 푸닥거리는 이제 완전히 불교의 한 자리를 차지한 상태이다.
법정 스님이 말씀하셨다. 절에서는 제사(祭祀)와 재(齋)를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제사(祭祀)는 유교에서 조상의 신령에게 음식을 바쳐 정성을 드리는 예절이다. 그러나 재(齋)는 몸과 말과 생각을 맑히는 일이고, 정해진 시각에 대중이 한자리에 모여 공양하는 일이다. 이 재는 부처님 생존 시부터 전해 내려오는 교단의 중요한 행사이기도 하다. 청정한 수행자들이 모여 사는 정진 도량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지만, 너절하게 지내는 청체 불명의 사이비 절에서는 재를 지낸답시고 밤새도록 법석을 떨면서, 심지어 춤(소위 승무라는 것)까지 추어가면서 지루하고 장황한 푸닥거리를 하고 있는 걸 보면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불사(佛事)라는 행사가 요즘에는 왜 그리도 많습니까? 걸핏하면 ‘100일 기도’․ ‘10,000인 동참 기도’․ ‘보살계 살림’․ ‘가사 불사’․ 탑에 물방울 정도 튀기는 ‘세탑(洗塔) 불사․ 아이들 장난도 아닌데 위조지폐까지 발행해 가면서 하는 도깨비놀음 같은 ‘예수재’ 등등 …. 이 밖에도 일찍이 보고 듣지도 못한 별의별 희한한 불사들이 정말 비 뒤의 죽순처럼 여기저기서 잇달아 거행되고 있습니다. <법정 스님 물소리 바람 소리>
거제 연등사 도안 스님이 지적했습니다. 사주, 부적, 삼제풀이, 삼제기도, 방생, 성지순례, 인등, 수능 합격기도, 신년 기도, 만년 위패, 스님 생일 찾기, 산신 기도, 용왕 기도 등등이 모두 비불교적인 것으로 그만 두어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요지는 단 하나이다. 오직 자비와 사랑이다. 불법은 진실을 밝히는 사실적인 가르침이다. 그것은 생명과 정신과 우주의 실체에 대한 가르침이며 우주의 이치와 인간의 길에 대한 가르침인 것이다. 불교의 핵심은 참선과 같은 명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삶의 실천인 자비와 사랑에 있다. 이것은 이미 수 천 년 전 부처님이 기존 힌두교의 무지를 타파하면서 선언한 절대명제인 것이다. 부처님은 보리수나무 밑에서 깨닫고 나셔서 "자신의 정각은 요가와 고행 같은 명상에서 온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을 거쳐 자신이 쌓아온 올바른 공덕(功德)에 의한 것이니 바르게 배우고 행하여 정법을 행하라."고 분명히 선언하신 것이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는 종교입니다. 불교는 철저하게 결정론적 사고를 거부했다. 연기법에 의해 현실은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고 그 변화는 스스로의 노력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는 종교다. 즉 불교는 타력적 기복이 아닌 자력에 의한 수행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스님이 신통력에 의지하게 되면 수행의 목적이 왜곡될 수 있다. 불교의 수행은 신통력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번뇌를 끊고 해탈을 얻기 위함이다. 설령 신통력을 얻었더라도 생로병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자기 자신이 부처가 되는 길입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자기실현의 길이고, 형성의 길입니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부처에 이르는 길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한 생각이 일어나 부처가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수많은 세월을 두고 순간순간 자비의 실천을 통해서, 다시 말해 부처의 행을 통해 부처를 이루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저 연못에 돌을 던져놓고 떠올라라, 떠올라라, 하고 불공을 올린들 그 무거운 돌이 떠오르겠느냐. 저 흙 속에 잡초 씨앗을 뿌려놓고 쌀이 되어라 쌀이 되어라, 하고 불공을 드린들 잡초씨앗에서 벼 이삭이 나올 수 있겠느냐?' 불공보다 물에 들어가 돌을 건져내고, 잡초가 아니라 벼를 심어놓고 김을 매는 자비를 실천해야 합니다.
윤청광 방송작가는 이런 절에 절대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인생살이 허덕이는 중생이 상담하러 가면 무조건 ‘조상 천도재’를 지내라고 강권하며 최소한 수백만 원에서 기천만 원까지 요구하는 절에는 절대로 두 번 다시 가지 말아야 한다. 법회 때 제대로 된 설법은 하지도 못하면서 이 불사, 저 불사에 동참하라고 입만 벌리면 돈타령하는 절에도 두 번 다시 가지 말아야 한다.
푸닥거리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불교에서 푸닥거리는 귀신 불교요, 허깨비 놀음입니다. 푸닥거리는 부처님 가르침이 아닙니다. 푸닥거리는 진리를 외면하고 거짓과 구라를 믿게 하여 허무한 삶을 살게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