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별과 차별이 없는 마하반야바라밀 : 불이(不二)
세상은 빛이다.
빛이 있기에 생명이 있다.
식물도 빛을 받아야 활발한 광합성 활동을 시작한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은 빛에서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태양은 빛의 근원이다.
태양은 그 어떤 구별이나 차별을 하지 않고 빛을 비춰 준다.
우리의 오감(五感)은 어떤가?
우리가 지닌 오감도 그 어떤 구별이나 차별을 하지 않고 있는 그 대로 모든 것을 인식한다.
눈(眼), 귀(耳), 코(鼻), 입(舌), 촉각(身)은 차별이나 구별 없이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며 느낀다. 즉 우리가 오감으로 받아들이는 상(相)은 부자나 빈자나, 여자나 남자나, 흑인이나 백인이나, 동양인이나 서양인이나 똑같은 상을 받아 들인다. 우리 눈에 들어오는 상은 누구에게나 똑 같다. 소리도 똑같고, 냄새, 맛, 피부가 느끼는 감각도 마찬가지로 똑 같다.
자연의 본성은 구별이나 차별을 하지 않는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구별하지 않는다.
높고 낮음을 구별하지 않는다.
어린이와 어른을 구별하지 않는다.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별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것이 이 세상이다.
우주 법계는 차별과 구별이 없는 세상이다.
모든 문제와 혼란은 구별과 차별에서 시작된다. 기독교에서도 선악과로 인하여 구별과 차별이 생겨 죄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세상의 본성은 구별과 차별이 없는 불이(不二) 세상이다.
오직 우리 마음이 본성을 잃고 구별과 차별을 만든다. 흑과 백, 너와 나, 좋음과 싫음으로 구별하고 차별을 하면서 각종 문제를 잃으킨다.
수행은 이런 구별과 차별이 없는 건강한 본래 마음을 찾아 바르게 쓰는 것이다.
태양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남자나 여자나 공평하게 빛을 준다.
이렇게 구별하거나 나누지 않는 마음이 바로 반야바라밀이다.
반야심경에서 줄기차게 강조하는 것이 이 반야바라밀이다.
햇빛처럼, 물처럼, 공기처럼 구별과 차별 없는 마음을 내고 실천해야 한다.
갑(甲)과 을(乙)이 상생(相生)하며 살야야 한다.
차별과 구별이 없는 자연 덕분에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
구별과 차별이 없는 자연처럼 너와 내가 하나되어 더불어 따뜻하게 살때 이 세상은 더욱 더 아름다워 진다.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