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것 중 가장 모르는 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사람들은 죽고 난 후에 대해 관심이 많지만 죽음 이후는 아무도 모르는 영역입니다. 죽은 뒤에 어떻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그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어요. 그래서 가장 완벽한 사기는 바로 죽은 뒤에 어떻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짓임을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에요. 죽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사실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사람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아이디어를 내놓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죽은 뒤에 더 좋은 세상, 천국에 간다는 생각이에요. 비록 이 세상에서는 괴롭고 힘들었지만 죽은 뒤 천국에 가면 영원히 괴로움 없이 산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잖아요. 두려운 마음을 극복해보려고 하다 보니 죽은 뒤 저 세상은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남을 돕고 남을 즐겁게 하면 우선 내가 좋습니다. 반대로 남에게 손해 끼치거나 남을 괴롭히면 내가 괴롭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옛날부터 사람들이 죽고 난 다음 세상에 대해 궁금해하니까 그것을 동기 삼아서 죽은 뒤에 좋은 세상에 가려면 살아서 좋을 일은 많이 해야 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살아있을 때 좋을 일을 많이 하면 죽어서 좋은 세상에 가게 되고, 살아서 나쁜 일을 많이 하면 죽은 뒤에 나쁜 세상에 가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한 생각은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도 가능하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나쁜 일은 적게 하도록 인도했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난다는 ‘윤회’를 생각해냈어요. 이건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니까 저 세상에 가는 것보다 더 좋습니다. 마치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듯이 이 세상에 다시 오는 것이니까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없어져요. 하지만 이 발상도 애초에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떠올린 생각입니다.
우리는 천국이니 윤회니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이 사실인가, 아닌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지만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믿고 살아가면 본인에게도 죽는 사람에게도 두려움이 줄어드니까 이익이고, 죽는 이를 보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익입니다.
▶죽음은 삶의 한 과정
그러나 부처님의 접근방식은 달랐습니다. 죽음은 삶의 한 과정이라고 보셨습니다. 얼음이 물이 되고, 물이 다시 얼음이 되듯이 삶과 죽음은 그저 하나의 변화과정입니다. 자연생태계에서 봐도 우리의 삶은 이렇습니다. 부처님은 이를 ‘인연이 이루어지고 유지되고 흩어지고 사라진다’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래서 우주는 성주괴공(成住壞空)하고, 인생은 생로병사(生老病死)하고, 우리의 마음은 생주이멸(生住異滅)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세상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머무르고, 흩어지고, 사라지는 과정을 반복하는 걸 말합니다. 물질의 세계나 생명의 세계에 불법을 적용해보면 진실이자 과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진실을 알지 못하고, 어떤 환상에 사로잡혀서 영원히 살겠다거나 변하지 않겠다는 헛된 생각을 해요. 이 세상 모든 것이 변하는 게 진실인데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고통이 생기는 겁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든 저런 일이 일어나든 일어날 만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늘 여여(如如)하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여래(如來)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죽음 앞에서도 여여하셨어요. 열반경 마지막 부분을 보면 부처님은 죽음 직전에도 마치 잠드는 순간처럼 아무런 두려움 없이 여여하셨습니다.
그런데 경전을 기록한 인도 사람들은 육신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나 봐요. 또 당시 성행했던 다양한 종교들이 구원을 받으면 육신을 그대로 갖고 승천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록하는 사람들도 ‘부처님은 왜 열반에 드셨는가?’, ‘깨달음을 얻었다면 영생해야 하지 않는가?’하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영원히 살 수 있었지만 악마의 권청에 의해서 유수행을 그만두셨다고 기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기가 어떠하든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도 부처님의 말씀이 기록된 부분은 진리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본인이 깨달음을 얻고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마음을 쓰면 누구나 다 괴로움이 없는 열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들도 나처럼 괴로움 없는 경지에 이르렀으면 좋겠다’, ‘이 법을 믿고 이해하고 행동하고 체험하면 좋겠다’, ‘어떤 상황이 와도 의심이 들거나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부처님의 중생에 대한 간절한 원(願)이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말고 뜻을 살펴보세요
그러니 글자에 너무 연연하지 마세요. 표현은 2천여 년 전 기록한 사람들의 사유방식이나 믿음이 반영된 것이니까 그 부분을 감안해야 합니다. 경전에는 당시 기록하는 사람의 사유와 믿음이 녹아있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해석하게 되면 내용을 오해하게 됩니다.
부처님의 제자라면 본인 스스로 이 법을 믿고, 이해하고, 실천하고, 체험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을 ‘수행’이라고 해요. 또한 여기에 머무르지 말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도 이 좋은 법을 믿도록, 이해할 수 있도록, 행하고 체험하도록, 그들의 이익을 위해 조리 있게 법을 설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삿된 교설로 반론을 제기하거나 비판을 하면, 진리와 진실로 그것을 타파해야 합니다. 이것이 수행자가 가야 할 길입니다.
출처 : 정토회 법륜 스님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