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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 법문과 글

법정(法頂) 스님

작성자향상일로|작성시간20.06.02|조회수513 목록 댓글 0

법정(法頂) 스님

 

법정(法頂, 속명(본명) 박재철(朴在喆), 1932115(음력 108) ~ 2010311)은 대한민국의 불교 승려이자 수필가이다. 무소유(無所有)의 정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수십 권이 넘는 저서를 통해 '무소유 사상''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으로 대표되는 자신의 철학을 널리 전파해 왔다. 법정 스님은 한 시대의 참 스님이요, 스승 이었다.

 


() 송광사 수련원 원장 직위를 지낸 그는 1955년 승려 효봉의 제자로 출가하였고 1970년대 후반에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佛日庵)을 지어 지냈다. 그러나 끊임없이 찾아드는 사람들로 인해 17년 동안이나 살았던 불일암을 뒤로 하고 19924월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겨 홀로 수행 정진하게 된다.

 

2010311일을 기하여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2동에 위치한 길상사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인해 세수 78, 법랍 55세로 입적(入寂)하였다. 그의 기일은 불교식 전통에 따라 매년 음력 126일로 지낸다.

 

젊은 시절과 무소유 사상

 

1932115(음력 108)에 전라남도 해남군 우수영(문내면)에서 태어났다. 우수영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당시 6년제 였던 목포상업중학교에 진학했고, 이후 전남대 상대에 입학하여 3년을 수료, 중퇴하였다. 그는 당시에 일어난 한국 전쟁을 겪으며 인간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교 3학년이던 1955년에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오대산으로 떠나기로 했던 그는 눈길로 인해 차가 막혀 당시 서울 안국동에 있던 효봉 스님을 만나게 된다. 효봉 스님과 대화를 나눈 그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고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바로 다음 해에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에서 정진했다. 19593월에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으며, 19594월에 해인사 전문 강원에서 명봉 스님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다.

 

                출가 전 ‘여수회’ 친구들과 이별을 아쉬워 하며 찍은 사진.(아래 맨 오른쪽이 법정스님)


1960년에는 통도사에서 <불교사전> 편찬 작업에 동참하였고, 1967년 서울 봉은사에서 운허스님과 더불어 불교 경전 번역을 하였다. 1972년에는 첫 에세이집 <영혼의 모음>을 출간하였다. 1973년 함석헌 선생이 주도했던 씨알의 소리편집위원으로 참여하였고, 함석헌, 장준하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하여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다, 1975년에는 인민혁명당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아 그 해 10월 수행자의 본래자리로 돌아가고자, 당시 부도만 남아있던 송광사 자정암 터에 토굴을 지어 홀로 살았다. 그 과정에서 철저한 자기 질서 속에 무소유 사상을 설파하고 텅 빈 충만의 시기를 보냈으며, 이 무렵인 1976년에 자신의 가르침을 담은 <무소유>를 발간하였다. 무소유370만 권이 판매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이후 17년간 불일암에서의 생활을 이어갔으나, 그곳에서의 수많은 저서 집필로 인해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면서 사람의 발길이 잦아지게 되었다. 이에 법정은 19924월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고 홀로 수행 정진하게 되었다.


<불일암>

19937월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라는 이유로 독립기념관과 창덕궁 부용정 연못의 연꽃이 모두 뽑혀졌다는 사실을 접하고, 그 어이없는 심정을 연못에 연꽃이 없더라.는 글을 발표하며 다시 한 번 세속 일에 관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날로 각박해져만 가고 메말라만 가는 우리 심성을, 세상과 자연을 두루 맑고 향기롭게 가꾸면서 살아가자"'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을 주창하게 된다.

 

1994326'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선포 기념행사로 서울 양재동 구룡사에서 '법정 스님과 함께 하는 실천 큰 모임, 출발 맑고 향기롭게' 대중 법문을 개최하였다. 맑고 향기롭게 모임은 범종교, 범종파 순수 시민운동으로 회원 각자가 자신의 방식대로 후원하는데 힘입어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모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맑고 향기롭게 장학금'을 마련해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매년 학비를 지원하는 등의 운동을 펼쳤다. 이후 회원과 후원금의 규모가 증가하자 199612월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고, 법정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971214일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 개원법회에 한국 천주교 성직자인 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하여 축하해 주자, 이에 대한 답례로 1998224일에 명동 성당을 방문하여 특별 강연을 가져 종교 간의 화합을 보여 주었다.


                                                     <길상사> 

말년과 입적

 

200312, 월간 맑고 향기롭게내 그림자에게라는 글을 통하여 길상사 회주(會主)와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 직책을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뒤에서 도울 것이라 약속하며 길상사에서 짝수 달마다 해오던 법회를 봄, 가을 두 차례만 할 뜻을 밝힌다. 그러나 주위의 거듭된 만류로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직 사임은 철회하였다.

 

이때쯤부터 '회주 스님', '큰 스님', '이사장 스님'이란 명칭을 일절 사용하지 못하고 '어른 스님'이란 호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글을 통해 밝힌 입장과는 달리 동안거, 하안거 해제, 결제, 길상사 창건 기념일, 부처님 오신 날 등 길상사의 큰 행사에는 산에서 내려와 어른 스님으로서 책임을 다하였다.

 

2007년부터는 폐암이 발병해 여러 차례 수술과 치료를 받았다. 2009년 겨울에는 강원도의 오두막에서 제주도로 거처를 옮겨 요양했지만, 병세가 악화돼 서울 강남구의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하였다.

 

2010311일 오전 길상사로 옮겨졌고, 오후 151분에 입적하였다. 법정 스님의 장례는 "많은 사람 수고만 끼치는 일체 장례의식 하지 말라"며 관이나 수의를 마련하지 않고 승복 입은 그대로 다비하라는 평소 뜻에 따라, 영결식 등 별도의 장례절차 없이 진행되었다. 312일에는 스님이 수행했던 전남 순천시 송광사로 운구해 13일 오전 11시에 다비하였다.

 

                                          <법정 스님 운구 - 관 없이 가사에 덮힌 모습>

법정은 '사후에 책을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그의 저서들은 모두 절판, 품절 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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