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원효(元曉) 대성사

일심(一心)으로 돌아가라

작성자향상일로|작성시간25.01.07|조회수50 목록 댓글 2

무애행과 <대승기신론>의 중생심의 가르침이

원효의 "일심(一心)"이라는 새로운 사상을 낳는 근원이 되었다.

 

중생들 마음속에 큰 좋은 바탕(眞如)이 있고,

이를 통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마음을 원효는 "일심"으로 표현했고,

'일심'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원효는 "일심"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이 같은 하나인 마음의 도리는 말을 여의고 생각을 초월했기 때문에

무엇을 지목할지 몰라서 억지로 이름 하여 하나의 마음(一心)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원효의 또 다른 유명한 논서(論書)인

<금강삼매경론>의 첫 페이지는 다음과 같이 "일심"을 말합니다.

"무릇 한 마음(一心)의 근원은

있음(有)과 없음(無)을 떠나서 홀로 조촐하고,

삼공(三空)의 바다는 참(眞)과 속(俗)을 아우르면서 맑으니,

맑아서 둘을 아울러도 하나가 아니며,

홀로 조촐하여 모퉁이(邊)를 떠났으나 가운데(中)가 아니다.

가운데(中)가 아니면서 모퉁이(邊)를 떠나기 때문에

법을 지나지 않으나 곧 없음(無)에 머무르지 않으며,

상(相)이 없지 않으나 곧 있음(有)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하나가 아니면서 둘을 아우르기 때문에

참이 아닌 일[事]도 비로소 속되지 않고,

속되지 않은 이(理)도 비로소 참(眞)이 되지 않는다."

 

원효는 일심에 대해 「대승기신론소」에서

"깨끗함과 더러움의 존재는  그 본성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참과 거짓의 두 문이 다를 수 없다. 그래서 이름을 일심(一心)이라 한다.

이 둘이 없는 곳이 모든 존재의 실체이다.

이는 허공이 텅빈 것이 아니라 본성이 스스로 신령(神靈)하기 때문에 마음이라 한다.

그러나 이미 없는 데 어찌 하나가 될 수 있으며 하나도 있는 것이 아니데 어찌 마음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도리는 언설(言說)을 여의고 생각이 끊어진 자리라 무엇으로 지목할지 몰라

억지로 이름을 한마음(一心)이라 정했다."

 

원효 대사는 우리의 마음에 이러한 공덕이 있음을 알게 되면,

우리의 눈, 귀, 코, 혀, 몸, 뜻의 6가지 감각기관이 일심(一心)을 버리고

밖으로 치달으며 욕망과 갈애로 집착하는 미망의 삶에서 벗어나

불법승 삼보에 대해 귀의하고 참된 신앙심이 나타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목숨을 들어 부산한 먼지를 피우는 번뇌의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

본래의 원천, 즉 하나의 마음(일심)으로 되돌아가는 까닭에 귀명(歸命)이라고 한다.

돌아가는 바 그 하나의 마음이 바로 불법승 삼보인 것이다."

 

이렇게 원효 대사는 하나의 마음인 일심이

곧 불법승 삼보이기 때문에 목숨을 다 바쳐 일심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심으로 돌아가 귀의가 이루어지면

<대승기신론>에 나오는 5가지 바라밀행인보시, 지계, 인욕, 정진, 지관을 수행하며

이 수행은 불도를 완성하고 중생을 요익하게 하는 방편이 되므로

원효는 여기에 입각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원효가 중생들의 곁으로 나아간 이유는 중생의 마음 바탕에는 일심(진여)이라는

무한한 공덕이 있다는 믿음과 함께 그 중생들에게 일심의 무한한 공덕을

꽃피우고 살라는 가르침을 펴기 위해서였습니다.

 

원효 대사 자신이 그 사명이 불타올랐기 때문에 기꺼이 중생들 곁으로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출처 : 불교 인물사/극락회상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初心 | 작성시간 25.01.08 🙏
  • 작성자향상일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01.08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