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설(法說)과 의설(義說) : 불교 경전 중 상당수가 부처님의 본래 말씀(법설) 이 아니라, 후대 제자들이 첨가한 해석 혹은 왜곡된 가르침(의설) 임을 밝힙니다. ‘의설’은 겉보기엔 옳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진리에서 벗어난 합리적이지 않은 말, 난사(難辭) 를 뜻합니다. |
<대열반경>에 사유기의즉능요지일체중생실유불성(思惟其義則能了知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의설(義說 : 거짓 주장)로 사유하니 불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번역 당시 글자 뜻이 질문 당시와 달라졌다는 것이다.
일체(一切)는 ‘나와 세상이란 모든 존재’라는 뜻이 ‘모두’로 바뀌었고
실(悉)은 ‘깊이 생기다’라는 뜻이 ‘모두’ 쓰이기 시작했고, 의(義)는 ‘거짓’에서 ‘뜻, 옳다’로 바뀌었다.
그러니 단어의 뜻이 바뀌기 전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란 문장의 원래 뜻은
‘일체라는 존재로 여기는 중생은 불성이 존재한다고 마음에 새겨져 있다.’이다.
그리고 이것은 잘못된 사유로 의설(思惟其義)이라고 밝히고 있다.
불성(佛性)이 있다는 생각도 사견(邪見)에 해당한다.
불성은 ‘존재하는 부처의 성품’이라고 받아들이면,
모든 중생 안에 이미 불성이 존재하므로 언젠가는 붓다가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이것은 외도들이 말했던 결정론과 같은 맥락이다.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중국)께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조주 스님이 대답했다.
"없다(無)“
조주 스님은 존재로 바라보는 외도의 시각을 바로잡고자 정견을 드러나고자 무(無)라고 답한 것이다.
붓다는 불성이 있어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무명(無明)이 명(明)으로 전환될 때 드러나는 것이다.
최상의 진리를 깨달았는가, 깨닫지 못했는가의 문제이지, 불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선사들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화두로 제시한 것이 아니다.
화두의 해답은 언제나 정견을 확립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출처 : 고광 스님 불교 도장 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