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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無我)와 참나의 차이를 여쭙니다.

작성자향상일로|작성시간21.04.24|조회수374 목록 댓글 0

무아(無我)와 참나의 차이를 여쭙니다.

 

강병균 교수(포항공대)

 

티베트 닝마파(紅帽派)의 개조(開祖) 파드마삼바바(蓮花生尊者)는 8세기에 100여 권의 비밀경전을 티베트 전역에 숨겨놓았다. 그 후 그의 제자들이 환생을 거듭하며 그 경전들을 찾아내, 오늘날 그 수가 65권에 이른다.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때 부처님이 왕사성 독수리 봉에 1,250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돌독수리(石鹫 석취) 한 마리가 상승기류를 타고 창공에 솟아오르자, 까마득한 저 아래 사바세계를 조망(鳥望)하시던 부처님이 문득 금구(金口: 부처님의 입)를 여셨다. 내가 보리수 아래서 정각을 얻은 후 바로 무여열반에 들지 않고 부러 세상에 머물며 교화한 지 벌써 40여 년이구나. 내 처음에 우려하던 바와 달리 내 문중이 이리 융성하여 이제 때가 무르익었으니 최상승법을 설하노라.

 

일체는 무상(無常)이고 고(苦)이며 무아(無我)이다. 젊음, 건강, 사랑, 미모, 부, 어린자식, 수명, 권력, 기억력, 추리력, 판단력, 근력, 시력, 청력, 후각, 미감, 촉감, 감수성 그 어느 것 하나 시간이 가면 낡아 삐걱거리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니 어찌 고(苦)가 아니겠느냐. 또, 이것들은 하나같이 내 뜻을 따라주기는커녕 오히려 괴로움을 주므로 나(我)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감추어진 또 다른 비밀의 세계가 있음을 알라. 내 이제 무시이래로 닫혀있던 여래장(如來藏)을 열어 ‘비밀 중의 비밀’을 보이노라.

 

오래전에 어떤 이가 내게 물었다.

 

여래는 무여열반 후 세상에 존재하는가, 아니 하는가?

여래의 몸과 마음은 같은가, 다른가?

우주는 시간적으로 시작과 끝이 있는가, 없는가?

우주는 공간적으로 유한한가, 무한한가?

 

이 질문들에 대해 그동안 답을 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답을 하리라.

 

우주는 시간적으로 시작도 끝도 없으며, 공간적으로는 한없이 무한하며, 여래는 즉 참나(眞我 진아)는 이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한 우주에서 생긴 적도 없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영생불멸하다. 참나는 언제 어디에나 있으므로, 티끌에도, 공기에도, 돌멩이에도, 담석(膽石)에도, 수레바퀴에도, 이끼에도, 염병에도, 학질에도, 문둥병에도, 에이즈 균에도, 에볼라 균에도, 암에도, 중음신(中陰身 pudgala)에도, 건달바(乾達婆 gandharva)에게도, 개(狗子)에게도, 잣나무(栢樹子)에도, 똥막대기(乾屎厥, 厠籌)에도 없는 곳이 없다. 그러므로 참나와 몸은 같다. 다시 말해, 우주 삼천대천세계는 참나 그 자체이다.

 

어리석은 이들은 자기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이 방편인지 모르고 “일체가 무아(無我)”라고 외친다.

 

온 우주가 자기 것이라면 무슨 집착할 일이 있으랴? 온 우주가 자기라면 어디 애증(愛憎)이 설 자리가 있으랴? 사람들은 좁은 육신(慾身)만을 자기라 여겨 소유와 감각에 집착하고, 욕망의 충족·불충족에 따라 불같은 애증을 일으킨다.

 

근기가 열등한 자들은 무아(無我)를 움켜잡고 놓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만약 정말로 무아라면 설산수행 6년은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이며, 삼아승지겁 고통과 피눈물의 윤회는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알라. 참나는 영생불멸하다. 그대들이 스스로 무명(無明)으로 참나를 덮어 보지 못할 뿐이다.

 

눈에 백내장이 있으면 못 보나 백내장이 걷히면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마음에 무명이 걷히면 맑은 아침하늘에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명명백백히 보리라. 이제 내 밑에서 오래 수행을 하여 준비가 되었으므로, 그대들 마음의 백내장을 걷어 주리라.

 

참나는 온 우주이므로 상주불변하니라. 상락아정(常樂我淨)이니라. 내가 곧 우주이므로 어디 더 취득할 욕망이 존재하랴. 온 우주를 자기 부동산으로 소유한 사람에게는, 더 취득할 부동산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어리석은 사람이 소유욕을 충족시키려 이것저것 움켜잡는 것은, 이미 자기 소유인 땅을 사러 돌아다니는 어리석은 자와 다를 바가 없다.

 

온 우주가 이미 ‘나(我)’이자 ‘내 것’(我所)이므로, 더 이상 죽음과 태어남이 없으며, 더 소유할 것도 없어, 마음은 탐욕을 여위어 깨끗하니(淨) 갈애로부터 해방되어 항상(常) 즐거우니라(樂). 온 세상이 ‘자기’이자 ‘자기 것‘인 자의 놀라운 포만감과 행복을, 가진 것 없는 무명중생(無明衆生)들이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혹자는 불성(佛性)이란 단순히 부처가 될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세계 최대용량의 나무 "제너널 셔면(General Sherman)"의 씨앗이 조그만 핀치새 부리에 산산조각 나 소화되면 영원히 큰 나무로 자랄 수 없거늘, 지난날의 "큰 나무로 자랄 가능성"이 그때는 아무리 크고 멋있었을 지라도 지금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알라. 불성이라는 ‘참나(진아 眞我)’는 그런 공허(空虛)한 것이 아니니라. 참(眞實)되고 ‘헛되지 않아(不虛, 無無我)’ ‘참나’라 하는 것이다.

 

무량대수 수백억 광년 동안 육신이라는 좁은 집에 갇혀, 안과 밖을 분별하고 나와 남을 분별하며, 밖을 소유물로 만들어 안에 구겨 넣으려는 탐심(貪心)에, 그리고 그 탐심(貪心)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에 진심(嗔心)을 일으키며 윤회해왔다. 이제, 아득히 긴 세월동안 살던, '윤회의 탈것'인, 몸이라는 좁은 집을 벗어버리고 우주와 하나가 되니 진실로 상락아정(常樂我淨)이로다.

 

부처님이 설법을 마치시며 게송을 읊으셨다.

 

무아설법 시방편설. 참나즉시 제법실상.

우자불견 최상승법. 허로집착 허무무아.

여등비구 금일당지. 우주여아 일여동근.

참나상주 불생불멸. 약오여시 불이어불.

상락아정 현전불멸. 무무아법 대열반법.

 

無我說法 是方便說. 眞我卽是 諸法實相.

愚者不見 最上乘法. 虛勞執着 虛無無我.

汝等比丘 今日當知. 宇宙與我 一如同根.

참나常住 不生不滅. 若悟如是 不異於佛.

常樂我淨 現前不滅. 無無我法 大涅槃法.

 

주문을 설하니,

 

“무아방편 참나진설 우자무아 지자참나 무아단멸 참나상주 여실지견 상락아정”이로다.

無我方便 참나眞說. 愚者無我 智者참나. 無我斷滅 참나常住 如實智見 常樂我淨

 

날아갔던 돌독수리가 다시 돌아와 내려앉자, 대중은 큰 꿈에서 깨어난 듯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오늘 희유한 설법을 들으니, 만길 깊이의 구부러진 동굴에서 살다 처음으로 빛을 본 듯, 눈물이 비오듯 앞을 가리는구나.” 그리고 모두 한목소리로 찬탄했다.

 

“천상천하 무여참나, 천상천하 무여참나.” “天上天下 無如眞我, 天上天下 無如眞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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