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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공화상(誌公和尙) 불이송(不二頌) 2 - 持犯不二 (지범불이)

작성자향상일로|작성시간22.04.15|조회수225 목록 댓글 0

2. 持犯不二 (지범불이) 지키고 어김이 둘이 아니다.

 

丈夫運用無礙 (장부운용무애) 대장부는 움직이고 씀에 막힘이 없으니,

不爲戒律所制 (불위계율소제) 계율에도 제약을 받지 않는다.

 

持犯本自無生 (지범본자무생) 계율을 지키고 어김이 본래 생겨남이 없는데,

愚人被他禁繫 (우인피타금계) 어리석은 사람은 그 규칙에 묶이는구나.

 

智者造作皆空 (지자조작개공) 지혜로운 자에게는 조작함이 모두 공(空)이지만,

聲聞觸途爲滯 (성문촉도위체) 성문(聲聞)은 부딛히는 족족 막히는구나.

 

大士肉眼圓通 (대사육안원통) 대승(大乘)의 선지식은 육안으로도 두루 통하지 않음이 없지만,

二乘天眼有翳 (이승천안유예) 소승(小乘)의 이승(二乘)은 천안(天眼)으로도 막혀서 보지 못하네.

 

空中妄執有無 (공중망집유무) 공(空)한 가운데서 망녕되이 ‘있음’과 ‘없음’에 집착하여,

不達色心無礙 (부달색심무애) 형상(色)과 마음(心)이 걸림없는 줄을 알지 못하네.

 

菩薩與俗同居 (보살여속동거) 보살은 속인과 함께 살아도,

淸淨曾無染世 (청정증무염세) 청정하여 세속에 물든적이 없네.

 

愚人貪著涅槃 (우인탐착열반) 어리석은 사람은 열반을 탐하고 집착하지만,

智者生死實際 (지자생사실제)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생사(生死)가 곧 실상(實相)이다.

 

法性空無言說 (법성공무언설) 법성(法性)은 텅 비어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緣起略無人子 (연기약무인자) 연기로 이 게송을 대략 만들었네.

 

百歲無智小兒 (백세무지소아) 백살을 먹어도 지혜가 없으면 어린아이고,

小兒有智百歲 (소아유지백세) 어린아이라도 지혜가 있으면 백세 노인과 다를 바 없다.

 

계율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인생사에 대해서 사람마다 그 대처하는 자세가 각각 다르다.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 보면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다. 불교적인 용어로 지혜로운 사람은 혹 깨달은 사람, 또는 보살이라고도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성문이나 연각과 같은 소승을 말한다. 먼저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이든 남이 하는 일이든 모두가 텅 비어 공한 것으로 꿰뚫어 본다. 기쁨도 슬픔도 한결같다.

 

그래서 자고로 낙이불음 애이불상(樂而不淫 哀而不傷)이라고 표현한다. 즐거운 일에 대해서라면 그 즐거움을 즐거워하되 그 즐거움에 빠져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슬픈 일에 대해서는 그 슬픔을 슬퍼하되 사람이 상할 정도로까지 슬퍼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는 일마다 다 막히고 일으키는 감정마다 모두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도인이나 성인이라고 해서 왜 슬픈 일과 기쁜 일이 없겠는가마는 그 희로애락에 대처하는 자세가 이와 같이 다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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