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 화상(誌公和尙) 불이송(不二頌) 3
3. 佛與衆生不二(불여중생불이)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다.
衆生與佛無殊 (중생여불무수) 중생과 부처는 다름이 없으며,
大智不異於愚 (대지불이어우) 큰 지혜는 어리석음과 다르지 않네.
何須向外求寶 (하수향외구보) 어찌하여 밖에서 보물을 찾으려 하는가?
身田自有明珠 (신전자유명주) 자신 속에 본래 밝은 보배구슬 있는데.
正道邪道不二 (정도사도불이) 바른 길과 삿된 길은 둘이 아니고,
了知凡聖同途 (료지범성동도) 범부와 성인이 같은 길을 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迷悟本無差別 (미오본무차별) 미혹과 깨달음이 본래 차별이 없고,
涅槃生死一如 (열반생사일여) 열반과 생사(生死)가 같구나.
究竟攀緣空寂 (구경반연공적) 결국에는 반연도 공적하니,
惟求意想淸虛 (유구의상청허) 뜻과 생각의 맑고 고요한 경지를 구할 뿐이다.
無有一法可得 (무유일법가득) 한 법도 얻을 수 없으니,
翛然自入無餘 (소연자입무여) 고요히 무위의 경지에 저절로 들어 가리라.
■ 화엄경에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차별이 없는 하나인데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편의상 이름을 달리지어 붙인 것이다. “사람이 부처님이다.”라는 말이나 “당신은 부처님”이라는 인불사상(人佛思想)이 곧 이러한 의미다.
중생과 부처를 다르게 아는 사람을 지공 화상은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점이라고 하였다. 고려청자가 스스로 고려청지인줄 모른다고 해서 어찌 고려청자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구태여 밖을 향해서 보배를 구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자기 자신 안에 무진장의 보물이 있기 때문이다. 밖에서 구한들 어찌 이 보물과 같겠는가. 그러므로 아무리 못난 중생이라 하더라도 그대로 완전무결한 부처라고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