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화상(誌公和尙) 불이송(不二頌) 12 - 境照不二(경조불이)
12. 境照不二 (경조불이) 경계와 비춤이 둘이 아니다.
禪師體離無明 (선사체리무명) 선사의 몸은 무명(無明)을 떠났으니,
煩惱從何處生 (번뇌종하처생) 번뇌가 어디에서 생길 것인가?
地獄天堂一相 (지옥천당일상) 지옥과 천당이 하나의 모습이고,
涅槃生死空名 (열반생사공명) 열반과 생사가 헛된 이름이다.
亦無貪瞋可斷 (역무탐진가단) 끊어야 할 탐진치도 없고,
亦無佛道可成 (역무불도가성) 이루어야 할 불도(佛道)도 없다.
衆生與佛平等 (중생여불평등) 중생과 부처가 평등하니,
自然聖智惺惺 (자연성지성성) 자연히 성스런 지혜가 뚜렷하구나.
不爲六塵所梁 (불위육진소염) 육진 경계에 오염되지 않으니,
句句獨契無生 (구구독계무생) 마디마디 홀로 무생법에 계합한다.
正覺一念玄解 (정각일념현해) 바르게 깨달으면 한 생각에 현묘한 뜻을 이해하니,
三世坦然皆平 (삼세탄연개평) 과거 현재 미래가 고르게 모두 평등하다
非法非律自制 (비법비율자제) 법에도 매이지 않고 율에도 매이지 않고 스스로 주관하니
翛然眞入圓成 (소연진입원성) 자재하고 진실하게 원만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간다.
絶此四句百非 (절차사구백비) 사구(四句)와 백비(百非)를 단절하면,
如空無作無依 (여공무작무의) 허공과 같이 만들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는다.
▶ 십사과송 그 열두 번째는 대상인 경계와 주체인 비춤이 둘이 아니라는 뜻을 밝혔다. 눈이 사물을 보는 경우 눈과 사물은 둘이 아니다. 눈이 있어 사물을 보고 사물이 있어 눈이 본다.
지공 화상의 말씀에 의하면 선사는 무명과 번뇌를 떠났다고 하였다. 그에게는 또한 천당도 지옥도 하나라고 하였다. 생사와 열반도 헛된 이름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탐욕도 진심도 어리석음도, 심지어 불도(佛道)마저도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선사에게는 중생도 부처도 평등하여 성스런 지혜가 저절로 늘 깨어 있어서 성성하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선사라고 부를 수 있다. 그렇지도 못하면서 선사라고 부른다면 그 부채가 적지 않으리라.
좀 더 부연하면 선사는 선불교의 여덟 가지 정신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즉 간결하고 소박한[簡素] 삶이어야 한다. 다음은 탈속(脫俗)하여야 한다. 그리고 모든 생활이 자연(自然)스러워야 한다. 또 사람이 깊이[幽玄]가 있어야 하며, 또한 고고(枯孤)하여야 하며, 몸도 마음도 언제나 고요하여[靜寂]야 하며, 또 틀에 메이거나 사고가 고정되지 않아야[變化] 한다. 그리고 끝으로 부동(不動), 즉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꿋꿋한 팔풍부동(八風不動)의 인격자라야 비로소 선사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