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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삶을 감탄하며 끝없는 인연을 따라가는 길

작성자향상일로|작성시간23.04.21|조회수118 목록 댓글 2

40년 지기 친구 세 명이 강화도 고려산 진달래 축제로 여행을 떠났다. 한 친구는 포천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하여 버스와 전철을 타고 송내역으로 향했다. 또 한 친구는 수원에서 출발하여 영등포까지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가서 전철로 송내역으로 갔다. 포천에서 출발한 친구는 깜박 졸다 송내역을 지나처 부개역까지 갔다 다시 송내역으로 되돌아 와서 10시 30분에 두 친구는 송내역에서 만났다.

 

세 친구는 송내역에서 출발하여 강화도 초진대교 근처에서 점심으로 보리밥을 먹고 정수사를 둘러보았다. 정수사에서는 함허 스님에 대한 인상이 깊었다. 우리는 함허 스님 승탑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함허 스님은 고려 말 조선 초에 활동했던 고승으로 불교가 배척당한 시대에 살았으면서도 유학자들과 당당히 맞서 부처님의 가르침의 뛰어남을 주창했던 선지식이었다.

 

그는 동천계곡을 “사바세계의 때 묻지 않은 수도자가 가히 삼매에 들 수 있는 곳”이라고 극찬을 한 뒤 수도했다고 한다. 17세기에 저술된 강화의 읍지인 <강도지(江都誌)>에는 ‘고려 때 중원에서 건너온 함허대사가 수행했는데, 그의 부인이 찾아와 모국으로 돌아가길 청했으나 돌아가지 않자, 바다에 빠져 죽었는데, 각시바위(각시의 섬)가 됐다’는 내용의 애틋한 ‘순애보’가 전한다. 지금도 계곡 바위에는‘함허 동천 (涵虛洞天)’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고, 정수사 오른편 언덕에는 함허대사의 부도가 앞 바다의 각시바위를 바라보는 곳에 세워져 있다.

 

정수사에서 사찰과 연초록 자연을 보고 동막 해수욕장으로 가서 분오리 돈대(墩臺 : 해안에 있는 성에서 적들이 침입하기 쉬운 요충지에 주로 설치)와 동막 해수욕장을 걸은 후 「멍때림」 카페로 갔다. 그런데 「멍때림」 카페가 정기휴일 이었다. 우리는 일정을 바꿔 석모도 보문사로 갔다. 절에 도착하니 절은 정돈이 잘 되었고 눈썹 바위 마애불에서 보는 풍경이 정말 아름다워 잠시 쉬면 경치를 감상하고 내려왔다.

보문사 눈썹바위 마애불

한 친구는 와불상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자등명 자귀의 법등명 법귀의 (自燈明 自歸依 法燈明 法歸依) 제행무상 불방일정진 (諸行無常 不放逸精進) 부처님 최후 유언을 관심이 많았다.

 

자등명 ㅡ 남을 등불로 삼지 말고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아라.

자귀의 ㅡ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라.

법등명 ㅡ 사람을 등불로 삼지 말고 법(진리)을 등불로 삼아라.

법귀의 ㅡ 사람에 의지하지 말고 법(진리)에 의지하라.

제행무상 ㅡ 태어나서 형성된 모든 것은 무상하여 변한다.

불방일정진 ㅡ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

 

세 친구 원래 일정에는 보문사가 없었는데  「멍때림」 카페가 쉬는 바람에 가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여행지를 일정 대로라면 놓칠 뻔했는데 다행이었다. 이것이 바로 발길 가는 대로 여행이다.

 

보문사를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데 외포리 횟집 음식 가격이 너무 비싸고, 친구 하나가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수산 시장에서 회만 사서 숙소에서 먹기로 했다. 평일이라 숙소에는 우리뿐이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주인아주머니가 우리가 가져 간 막걸리를 보더니 ‘막걸리 맛 좀 보여 주세요!’하고 말을 해서 식사에 초대를 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늘 남자들만의 자리에 나이가 비슷한 주인댁과 함께한 저녁 대화는 매우 재미가 있었다. 새벽 1시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침은 라면과 햇반으로 먹을 계획이었는데 고맙게도 주인댁은 순무 김치와 배추김치를 반찬으로 주셨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고려산 진달래 축제장으로 갔다. 축제는 진달래꽃 개화시기가 빨라져 이미 끝난 상태였다. 차를 백련사 아래 주차장에 두고 우리는 백련사를 구경했다. 백련사는 고구려 장수왕 시절 인도에서 온 스님은 고려산 주변에 절을 짓기 위하여 몇날 며칠을 살폈다. 그러다가 하룻밤 꿈속에 나타난 노인이 고려산 꼭대기에 올라보라는 말을 하고 사라진 뒤 고려산엘 올랐다. 가서 보니 산꼭대기에 연못이 있고, 그 연못에 아름답게 피어난 화려한 연꽃5송이가 있어, 이를 하늘 높이 날려 그 연꽃이 떨어진 곳이 명당터라 생각하고 5곳에 절을 지었다는 것이다.

백련사

그때 그 스님이 창건한 절은 동쪽에 청련사, 남쪽에 적련사(현재 적석사), 가운데에는 황련사, 서쪽에는 백련사, 북쪽에는 흑련사로 전하고 있다. 5곳의 절 가운데 흑련사의 존재는 확인이 안 되고 있지만 이곳을 뺀 4곳의 절은 지금도 같은 전설을 간직한 채 그 전설의 명맥을 잇고 있다.

 

백련사 옆을 지나 진달래 축제장인 고려산(436m) 정상으로 걸어갔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명상의 길로 조성되어 편안하게 올랐고 군부대로 가는 아스팔트길을 지나 따라 올랐다. 정상의 진달래 단지는 꽃이 마지막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정상으로 가는 내내 꽃향기가 우리 코를 기분 좋게 하였다. 꽃은 화려하지만 생명이 너무 짧다는 것과 지는 꽃에는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다는 것이 좀 애처로웠다. 당나라 두보가 쓴 '상엽홍어이월화(霜葉紅於二月花) 서리를 맞은 고운 단풍 봄꽃(二月花)보다 붉구나.'라는 시(詩)가 생각이 났다. 곱게 물든 단풍이 떨어지면 주워가지만 떨어지는 꽃은 아무도 주워가지 않는다고 한다. 고려산에서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진달래와 연초록 풍경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고려산 진달래 단지 모습

고려산 정상에서 연초록 산과 꽃을 감상하고 내려오는 길에 청련사(靑蓮寺) 이정표를 따라 청련사로 내려가 청련사를 구경하고 백련사로 다시 올라가다 능선 삼거리에 이정표가 없는 바람에 길을 잘못 들어 한 능선을 넘어 엉뚱한 곳으로 내려왔다. 백련사와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다. 청련사 삼거리에서 우리와 동행 하던 한 분도 길을 몰라 함께 내려왔다. 여기서 다시 백련사로 가는 길은 3km 정도이니 왕복 약 6km 소요되는 거리였다. 마을로 내려오는 첫 집에서 담장수리를 하고 있는 마을 분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흔쾌히 우리를 백련사까지 태워다 주었다. 우리 일행과 같이 내려온 등산객이 사정 이야기를 한 덕분이었다. 잠시 맺은 인연이 우리에게는 고마운 일이 되었다. 

 

여행은 새로운 문화와 만남을 위해 떠난다고 한다. 여행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여정인 셈이다. 이번 여행도 카페 「멍때림」이 쉬는 바람에 보문사를 여행했고, 숙소에서는 생각지도 않는 주인댁과 밤을 지새며 이야기 나눴고, 산에서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곳으로 내려와서는 고마운 인연을 만났다. 인연이 계속 될 때마다 좋은 인연은 좋은 대로 나쁜 인연은 나쁜 대로 고맙게 받아드리며 여행을 해야 할 일이다. 길을 잘못든 우리를 백련사까지 태워다 준 마을 주민에게 정말 고마움을 전했다. 우리는 ‘이 세상은 이렇게 좋은 분들 덕분에 잘 돌아가고 있다.’ 고 입을 모았다.

 

세상살이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좋은 일도 없고 나쁜 일도 없다. 좋은 일이라고 했던 게 나쁜 일이 될 수도 있고, 나쁜 일이라 했던 게 좋은 일이 될 때가 있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무슨 일이든 자기의 삶을 건강하고 유용하게 만드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여행은 살아있는 나에게 감탄하며 새로운 인연과 만남을 위한 아름다운 체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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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강물 | 작성시간 23.04.22 행복한 여행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보문사 눈썹바위 마애불이 신비롭습니다.
    고려산 진달래 사진은 아름답습니다.
  • 작성자향상일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4.22 강물님 덕분에 오늘도 기분좋게 시작합니다.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한 삶으로 무량대복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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