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 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인문 평론≫ (1940. 7.)
이 시에서 주요 소재인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에, “길”은 “구겨진 넥타이”에, 열차의 매연은 “담배 연기”에, “구름”은 “셀로판지”에 비유되어 있다. 그 결과 상투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가을의 소재들은 현대적 감각으로 낯설게 변주된다. 여기서 그간 한국 시가 경험하지 못한 뜻밖의 가을 이미지가 탄생하는 것이며, 독자도 매우 새롭고 이질적인 감각적 쾌감을 만나게 되는 미적 효과가 생겨난다. 이처럼 시인은 일상 현실에서 익숙한 자연과 사물을 아직은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도시적 소재로 치환함으로써 감각적 신선함을 획득하고 있다. 이런 표현 방식을 통해 시인의 개인적이고 특수한 정서를 최대한 억제하여 객관적이면서 보편적인 정서 전달에 성공하고 있다.
이 시는 객관적인 묘사를 중시하기 때문에 시적 화자를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시의 표면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3인칭의 객관적 화자를 내세워 관찰자의 시선으로 풍경을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후 시인과 동일시되는 1인칭 화자가 암시되지만, 전반적으로 객관적인 기조를 유지하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후반부에 가서 시적 화자의 정서를 완전하게 억제하지 않고 “황량”·“고독” 등의 어휘를 사용하여 서정적인 느낌을 조성하고 있다. 이는 앞서 발표되었던 「외인촌」에서 보여준 주관적 정서의 완전한 배제에서 다소 벗어나는 경향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이미지즘의 원칙에 구속되지 않고, 그런 원칙에 서정적인 요소를 접목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