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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문학

편지 - 한강(국문과 4학년)

작성자향상일로|작성시간24.10.12|조회수32 목록 댓글 0

그동안 아픈 데 없이 잘 지내셨는지

궁금했습니다.

꽃 피고 지는 길

그 길을 떠나

겨울 한번 보내기가 이리 힘들어

때 아닌 삼월 봄눈 퍼붓습니다.

겨우 내내 지나온 열 끓는 세월

얼어붙은 밤과 낮을 지나며

한 평 아랫목의 눈물겨움

잊지 못할 겁니다.

 

​누가 감히 말하는 거야 무슨 근거로 무슨 근거로 이 눈이 멈춘다고 멈추고 만다고… 천지에, 퍼붓는 이… 폭설이, 보이지 않아? 휘어져 부러지는 솔가지들,… 퇴색한 저 암록빛이, 이, 이, 바람 가운데, 기댈 벽 하나 없는 가운데, 아아… 나아갈 길조차 묻혀버린 곳, 이곳 말이야…

 

그래 지낼 만하신지 아직도 삶은

또아리튼 협곡인지 당신의 노래는

아직도 허물리는 곤두박질인지

당신을 보고난 밤이면 새도록 등이 시려워.

가슴 타는 꿈속에

어둠은 빛이 되고

부셔 눈 못 뜰 빛이 되고

흉몽처럼 눈멀어 서리 치던 새벽

동 트는 창문 빛까지 아팠었지요.

 

​………어째서… 마지막 희망은 잘리지 않는 건가 지리멸렬한 믿음 지리멸렬한 희망 계속되는 호홉 무기력한, 무기력한 구토와 삶, 오오 젠장할 삶

 

악물린 입술

푸른 인광 뿜던 눈에 지금쯤은

달디 단 물들이 고였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한번쯤은

세상 더 산 사람들처럼 마주 보고

웃어보고 싶었습니다.

 

​사랑이었을까… 잃을 사랑조차 없었던 날들을 지나 여기까지, 눈물도 눈물겨움도 없는 날들 파도와 함께 쓸려가지 못한 목숨, 목숨들 뻘밭에 됭굴고

 

당신 없이도 천지에 봄이 왔습니다

눈 그친 이곳에 바람이 봅니다

더운 바람이,

몰아쳐도 이제는 춥지 않은 바람이 분말같은 햇살을 몰고 옵니다

이 길을 기억하십니까.

꽃 피고 지는 길

다시 그 길입니다

바로 그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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