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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 법륜 스님 금강경 강의

작성자향상일로|작성시간22.02.27|조회수134 목록 댓글 0

제21.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수보리(須菩提) 여물위여래작시념(汝勿謂如來作是念) 아당유소설법(我當有所說法) 막작시념(莫作是念) 하이고(何以故)약인(若人)언(言) 여래(如來) 유소설법(有所說法) 즉위방불(卽爲謗佛) 불능해아소설고(不能解我所說故) 수보리(須菩提) 수보리야, 설법자(說法者) 무법가설(無法可說) 시명설법(是名說法) 이시( 爾時) 혜명수보리(慧命須菩提) 백불언(白佛言) 세존(世尊) 파유중생(頗有衆生) 어미래세(於未來世) 문설시법(聞說是法) 생신심부(生信心不) 불언(佛言) 수보리(須菩提) 피비중생(彼非衆生) 비불중생(非不衆生) 하이고(何以故) 수보리(須菩提) 중생중생자(衆生衆生者) 여래설비중생(如來說非衆生) 시명중생(是名衆生)

『수보리야, 여래가 생각하기를 「내가 말 한 바 법이 있다.」한다고 하지마라. 이런 생각을 하지 말지니 무슨 까닭이겠는가 하면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께서 말씀 하신 바 법을 가지고 있다.」한다면, 이는 곧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니, 내가 설한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법을 말한다는 것은 실로 말 할 만한 법이 없으므로 이를 이름 하여 '법을 말한다' 하느니라.』 그때에 혜명(慧明)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중생이 앞으로 오는 세상에 이 법문을 듣고서 믿음을 일으킬 이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수보리야, 그들은 중생도 아니오, 중생 아님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겠는가 하면, 수보리야, 중생 중생(者)이라 한 것은 여래가 말씀하시기를 이는 중생이 아니요 다만 중생(衆生)이라 '이름' 한 것 뿐이니라.』

중생(衆生)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중생이 따로 있지 않으니 지금 그 이름이 다만 중생일 뿐입니다. 한 생각 어리석게 내면 중생이라 부르고, 어리석은 생각을 내려 놓으면 부처라고 부를 뿐 본래 중생과 부처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비설소설(非說所說)즉 설할 법이 없는 실상(實相)입니다.

 

부처님은 말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상(我相)을 버리고 법상(法相)도 버리라는 말입니다. 법이 진리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이것마저 상이 되어 법상에 집착하면 진리에 어긋납니다. 설령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을 기록했다 하더라도 거기에 맹목적인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은 진리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법을 말한다는 것은 법을 가히 말할 수 없는지라 이 이름이 법을 말함.’이라는 말은 언뜻 들어보면 말장난같이 느껴지겠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심오한 뜻이 담겨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부처님은 자신의 말조차도 고정불변의 진리로 절대화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진리는 언제나 살아 숨 위는 것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여기에 불교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자신을 섬(등불)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법을 섬(등불)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부처님이 열반 직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이를 중국에서 자등명(自燈明) 자귀의(自歸依), 법등명(法燈明) 법귀의(法歸義)라고 번역했습니다.

 

부처님 마지막 말씀은 자기 스스로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체험하고 경험한 것으로 진리를 삼으라는 뜻입니다. 체험하지 않고 책 내용만 가지고 논쟁을 하는 것은 이무 이익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하고 체험한 것이라고 해서 다 진리는 아닙니다. 자기 경험만을 진리로 삼으면 심각한 주관주의의 오류에 빠집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늘 법에 근거해서 자기가 경험한 것이 옳은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습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공(空), 연기법(緣起法), 중도(中道),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주장이 부처님 가르침에 부합하는 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금강경을 수지 독송하면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는 것을 자기 욕심으로 해석해서 그저 금강경을 읽고 인쇄하여 보시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식으로 여기고 다른 사람에게도 강조합니다. 그러나 보니 심지어 금강경이 기복의 주문으로 전략해 버리는 일도 생기곤 합니다. 이는 금강경의 근본 사상과 동 떨진 이야기입니다.

 

나무는 부지런히 광합성작용을 해서 신선한 산소를 만들어내면서도 뭇 생명이 그 산소로 숨 쉬는 걸 보고 내가 산소를 만들어 주었다고 자랑하거나 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준다는 것도 받는다는 것도 다 우리 생각, 고정관념입니다. 실상에서는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없습니다. 태양은 다만 햇빛을 비추고, 물은 흘러내릴 뿐입니다.

 

실무중생득멸도자(實無衆生得滅道者) ‘실로 제도를 받은 자가 하나도 없다.’ 이 말은 본래 중생이라고 할 것이 없으나 중생을 제도한 바가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출처 : 법륜 스님 <금강경 강의 : 정토출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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