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그릇에 인연(因緣) 따라 밥도 담기고,
국도 담기고, 반찬도 담기며,
물도 담기고, 국수도 담기고,
라면도 담기고, 비빔밥도 담긴다.
빈 그른 안에 다양한 것들이
인연 따라 오고 갈지라도,
그 빈 그릇은 비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
우리의 본성, 마음 또한 이와 같다.
인연 따라 삶 위로
온갖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오고 간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고,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고,
젊음도 있고 늙음도 있다.
그 모든 것은 오고 가는 내용물일 뿐이다.
마음이라는 빈 그릇 안에
임시로 담기는 내용물일 뿐이다.
그 어떤 내용물이 오고 갈지라도,
이 빈 그릇은 전혀 변함이 없다.
텅 비었기에 무엇이든 인연 따라 담을 수 있다.
이 빈 그릇처럼,
이 세상의 온갖 경계가 오고 갈지라도,
우리의 본마음인 참 성품은 늘 그대로다.
이처럼 우리 본성품은 빈 그릇이어서
따로 정해진 이름이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내용물이 자기인 줄 알기 때문에,
밥이 담기면 밥그릇이라 이름 붙이고,
국이 담기면 국그릇이라 이름 붙잡는다.
이 빈 그릇은 고정된 이름이 없다.
정해진 쓰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텅 비어 있기에,
그 위로 무엇이 오고 가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뿐이다.
비출 뿐이다.
빈 그릇처럼,
이 자리에서 그저 삶 위로 오고 가는
일체 모든 것들을 그저 비춰보기만 하라.
빈 그릇이 자기임을 깨닫는다면,
오고 가는 '것들'에 이름을 붙이고
동일시하여 자기화하지 않을 것이다.
행복한 나, 괴로운 나가 아니다.
그저 인연 따라 임시적으로
행복도 담기고 괴로움도 담길 뿐이다.
담겨진 내용물이 내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비추고 있고 담고 있는
빈 그릇이 진정한 자기다.
출처: 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