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이 오산학교 때 세 살 위인 누나를 사랑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소월이 사랑했던 소녀라며 오숙 이야기가 가끔 나오는데, 숙모는 말이 안 되는 지어낸 이야기라고 펄쩍 뛴다.
숙모 계명희가 쓴 『내가 기른 소월』에 따르면, 소월을 두고 난데없이 여자 친구가 있었던 것처럼 꾸며서 글을 쓰는데, 문제의 여인 오숙에 대해서 기록한다면 다음과 같다.
큰집(소월의 집)에서 곽산골에 가려면 ‘회대미 재’라고 불리는 조금 언덕진 곳에 집 한 채가 있었다. 그 집에는 윤 과부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 과부의 딸과 사위 오정준이 다른 지방에서 살다가 윤 과부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게 되었다.
딸 내외에게는 오철, 오숙이라는 외자 돌림의 딸 둘이 있었는데 내가 시집갔을 때 오철은 열넷이었고, 오숙은 열한 살이었다. 그리고 소월은 네 살(한국나이)이었다.
“소월이가 오숙을 사랑해서 남산봉에서 자주 밀회한 것 같이 글로 묘사를 했는데, 네 살짜리하고 열한 살짜리 소녀가 그 시대에 사랑을 속삭일 수 있었을까 독자의 상상에 맡기지만 이렇게 터무니없고 사실무근한 일을 그럴듯하게 꾸며서 소월의 인상을 흐리게 하고 욕되게 하고 있으니 소월을 기른 나로서 이해할 수가 없어 분명히 밝혀둔다.”
북한 『문학신문』기사도 이를 뒷받침 한다. 1966년 김영희 기자가 소월의 고향에 취재를 갔을 때 오숙의 언니 오철 씨를 만나 물어보았다. 오철 할머니의 이름은 오철청으로 바뀌어 있었다.
김영희 기자는, 사람들이 소월의 소꿉친구인 오숙이 시인의 첫 연인이며 후에 오숙의 죽음을 슬퍼하여 ‘초혼’을 썼다는 이야기가 있어 오철 씨에게 소월과 동생 오숙과의 관계를 물어봤다고 했다.
오철 할머니는, “이 사람아, 우리 오숙이가 나보다 두 살 아래였는데 그때 열 살이 되나마나 했지. 그리고 오숙이는 정식이(소월의 본명)가 죽기 전에 죽은 게 아니라 전쟁 때 미국놈 폭격에 죽었네.”
출처 : 김정식 작가(마음 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