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과 예리함의 미학 /
홍강호
한탄강은 알고 있다
흙 속에 묻혀 있던
돌날 하나
바람에 씻기고
물에 닳으며
수십만 년을 견뎌온
주먹도끼*의 뼈대를
예리한 날끝 아래
멈추었던
짧은 숨까지
오늘
흰머리들 수백이
모자 속에 세월을 감춘 채
공 하나
채 하나 들고
강가의 초록 위에 선다
연천 구석기축제
파크골프 대회의 날
삐익
호각 소리가 울리고
굳은 어깨들이
조금씩
풀린다
공들이
잔디 위로 흩어지자
형형색색의 점들이
초록 들판을 건넌다
굿 샷
짧은 환호
낮은 탄식
허공에 번지는 동안
강은
아무 말 없이 흐른다
삼십만 년 전의 바람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고
누군가는
숨을 고른다
강물처럼
깊고
느리게
그리고
돌날처럼
예리하게
버디 퍼팅 하나가
잔디를 가른다
홀컵을 한 바퀴 돌고 나온 공
탄식 하나가
지층의 무게처럼
내려앉는다
치열했던 하루가
강물 쪽으로 기울고
흰머리 모자를 벗은 사람들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힌다
구석기의 사냥꾼과
오늘의 노병들
잠시
같은 숨을 쉰다
한탄강 저녁 바람
이마의 땀을
천천히
식힌다
* 미군 하사 보웬이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연천 전곡리를 세계적으로 유명한 구석기 유적지로 만든 30만년 전 당시의 나이프형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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