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저녁놀 하나가 창가에 기대어 울고 있을 때
나는 오래된 편지처럼 그대를 떠올립니다
세상은 자꾸만 빠르게 흘러가라 재촉하지만
그대 생각은 느린 강물처럼 마음속을 돌아
끝내 가장 깊은 곳에 머물러 앉습니다
별빛이 어둠 이기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제 자리에서 빛나듯이
그대 또한 내 삶에 와서
무언가를 바꾸려 하지 않았으나
나의 계절 하나를 통째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겨우내 자신의 모습을 흔적 없이 지워버린
꽃도 피었다 지고 바람도 왔다가 떠나며
사람 또한 스쳐 가는 인연이라지만
어떤 이름은 세월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아
낡은 가슴 한구석에서
은은한 등불처럼 살아 있습니다
그대야
허기진 영혼 천길 벼랑 끝에 이르러도
이제 절망 같은 거 하지 말아요
행여 삶이 고단하여
발길이 자꾸만 어두운 쪽으로 향하거든
기억하십시오 밤하늘이 아름다운 이유는
별이 많아서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끝내 빛나는 것들이 있기 때문임을
나는 오늘도 그 사실을 그대를 생각하며 배웁니다
그리고 먼 훗날
우리의 모든 날들이 추억이 된다 하여도
한 사람을 진심으로 그리워했던 마음만은
가을 들녘의 억새처럼
늦도록 바람 속에 오래도록 흔들릴 것입니다
그대야
부디 아프지 말고
부디 외롭지 말고
온 세상에 겨울이 깊어져도
대관령 계곡에 얼음 풀리고
진달래 환한 등불로 내걸리는 봄날처럼
그대의 하루가 한 편의 시처럼 맑기를
어느새 인적은 끊어지고
못 다한 말들이 한 음절씩 저 멀리 불빛으로 흔들릴 때
독약 같은 그리움에 늑골을 적시며
실어증을 앓고 있는 자작나무
그것이 오늘 밤
내가 그대에게 보내는 작은 시 한 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