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천지 경외로운 세상, 공룡능선」
간밤 잠에서 깨어난 공룡이 거대한 등줄기를 일으켜 세운다. 능선을 오를수록 바위들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으르렁거린다.
국내 제1비경으로 치는 신선대다. 수 억 년 세월이 빚은 별천지 세상의 경외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공룡능선의 중심에 선 1275봉이 하늘을 찌를 듯한 침봉針峯의 카랑한 위세에 압도되고, 범봉虎峰의 넘치는 위용이 늠름하다. 이처럼 넘어야 할 험봉들이 줄줄이 줄을 잇고 있다.
몸을 훑어가는 신선대의 바람줄기엔 서늘한 서기瑞氣가 감긴다. 좌측 너머로 대청봉에서 중청봉 소청봉 귀때기청봉으로 마루금이 유려하게 이어진다. 푸른 비단을 두른 듯 유장하게 흐르는 능선미는 억겁의 세월과 바람이 빚은 신선들의 정원인 양 장엄하기 이를 데 없다.
해가 정수리에 걸려서 1275봉에 닿는다. 수직처럼 솟아 있는 절벽이 철옹성 성벽 같다. 여기서부터 산은 한층 그 깊이를 더한다. 억겁의 세월이 모진 바위도 다듬어 놨다. 수억 년의 시간을 품은 거대한 바위들은 비와 바람과 햇살에 씻기며 또 다른 세월을 흘러 보내고 있다.
그곳에서 간단히 목을 축이고 숨을 돌린 뒤, 험준하고 장대한 산줄기를 다시 밟아나간다. 겹겹이 물결을 이루는 돌길이 세상의 돌이란 돌은 다 모아 놓은 듯한 능선길, 하늘을 향해 치솟은 칼날바위들 길들여지지 않은 공룡이 사납게 꿈틀대 듯 가파른 바위길의 연속이다. 거친 길일수록 도전해 보고 싶었건만, 문득 나는 왜 여기에 있는지 묻고 싶어진다.
자문에 답을 얻기도 전에 큰새봉(巨鳥峰)이 비상의 나래를 펼친다. 능선이 깊어질수록 하늘도 땅도 구별되지 않는 급경사의 오르내림이 심하여 참으로 고역스럽다. 이래서 산은 인생의 축소판이라 회자되는 걸까. 바람과 비와 햇살이 그려낸 이 험준한 능선길에는 굽이굽이 걸어온 인생길이 숨어 있다.
쉼 없이 이어지는 계단과 바위길에 나한봉(羅漢峰)이 나타난다. 나한이 수행을 통해 해탈의 경지에 든 성자의 봉우리이다. 나한은 성자답게 청량한 푸른 기운을 아낌없이 내어준다.
지친 걸음을 다독여 올라선 길, 드디어 공룡의 시종점 겪인 마등령이다. 시작부터 달아오른 거친 숨을 푸른 바람이 달래준다. 여기서 비선대까지 남은 거리는 3.5키로메터. 등반의 팔할은 해낸 셈이다. 뒤돌아 보니 암봉들은 거칠기가 이를 데 없으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천혜의 걸작들로 가득하다.
인생을 뜨겁게 살아내는 곳이 여름 산이다. 설악산은 오늘도 비선대를 필두로 능선 구석구석 풍경의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내놓으라 하는 숱한 산꾼들을 초빙한다.*석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