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스승의 향기
-운성-
부처님께서 아난다와 저자 거리를 걷고 게실 때. 향을 파는 상점 앞을 지나게 되었다. 아난다를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향을 파는 집이로구나 너는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전단 향을 한번 집었다 놓아 보아라.”
아난다는 부처님께서 시키신 대로 향 파는 가게에 들어가서 ‘전단향’을 집었다 놓았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한 번 더 향을 집었다 놓아라.”
아난다는 부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한 번 더 향을 집었다 내려놓았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향을 집었던 손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 맡아보아라.”
“부처님이시여 손에서 전단 향의 아름다운 향기가 납니다.”
“그렇다 향을 만진 손에서 향기가 나듯 좋은 스승을 가까이하는 사람에게선 아름다운 향기가 나느니라. 그러므로 사람에게 어리석음을 물리치고 지혜를 깨닫게 하는 진실한 가르침을 주는 좋은 스승을 자주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아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이 좋은 스승입니까?”
“가르침을 따라 부지런히 공부하여 깨달음을 이루고 남도 깨닫도록 애써 가르치며 일체중생을 위해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시하고 해탈법을 열어 부지런히 지도하는 사람을 진실하고 좋은 스승이라 할 것이다. 또 함께 정진하고 함께 선정하여 열반에 이르게 이끄는 이를 진실하고 좋은 스승이라 하느니라.”
‘좋은 스승’을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승불교권에서는 선지식(善知識)이라 한다. 선지식은 참선. 간경 등 수행을 깊이 하신 높은 깨달음을 이루신 바른 가르침을 내릴만한 스승에게 붙여지는 말이다.
부처님께서 육 년간의 출가수행을 마치시며 마지막으로 깨달음을 이루신 곳이 ‘붇다가야’의 보리수 아래다. 보리수는 아스바다(asvattha) 혹은 ‘핍바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부처님께서 그 아래서 깨달음을 이루신 인연으로 깨달음 나무(보리수 나무)란 이름이 새로 붙여지게 되었다. 깨달음이란 말의 인도 음은 “보디”다. 보디의 중국식 음의 표기는 보제(菩提)인데 우리나라에선 발음하기 쉬운 “보리”라 한다. 다시 말해 본래 아스바다 내지는 핍바라가 부처님과의 인연으로 해서 보리수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보리수에 대한 인도인들의 사랑은 극진했다. 그 나무를 어떤 경우엔 행운의 나무라 하기도 하고. 다른 경우는 진리의 나무라 하고 또는 도량을 수호하고. 수행자를 보호하는 보호수로 여기기도 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전통방식을 따라 보리수 아래서 수행하셨다.
보리수에선 핍바라(pipvala)라는 열매가 열리기도 하는데 그래서 염주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열매는 그다지 예쁘지 않아서 염주로서 그리 환영받진 못하지만, 보리수라는 신앙적 기준에 의해 많이 소장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인도의 보리수와 우리나라의 절 마당에 서 있는 ‘보리자’ 나무를 혼동하기도 하는데 이는 전혀 다른 나무다. 보리자는 꽃향기가 매우 아름다워서 향기로 아침마당을 가득 채우기도 하며 열매가 예뻐서 많은 사람에게 염주로 사랑받는다. 보리수와 보리자는 이름은 비슷하지만, 나무는 확실히 다르다. 더구나 인도의 보리수는 열대식물이라서 우리나라에선 온실이 아니면 살지 못한다.
“나쁜 사람 멀리하기를 원수같이 하고 좋은 사람 가까이하기를 부모 섬기듯 하라.” 하기도 하셨다.
나쁜 사람 가까이해서 생기는 나쁜 일에 대하여 상세히 이르시기도 하셨는데 이를테면….
“몸에서 악취가 난다. 얼굴 모양새가 험악해진다. 말이 거칠고 교만해진다. 위아래를 모르는 불량자가 된다. 살아서 사람들이 싫어하게 되고 죽어서는 악취에 떨어진다.”이다.
수행자가 보리수 등 나무를 의지처로 수행했던 것은 나무가 선지식같이. 좋은 스승같이 수행자를 보호하고 좋은 수행의 환경을 만들어주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