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로터리와 부산탑
부산 서면의 중심에 원형의 ‘서면로터리’가 조성된 시기는 1957년, ‘부산탑’은
1963년에 세워졌다. 부산시가 1963년 1월 1일, 직할시로 승격됨에 따라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62년 12월 1일 대대적인 기념행사가 열렸다. 부산 공설
운동장에서 거행된 이날 기념식에는 박정희(朴正熙)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비롯한 정부 요인, 재부 기관장 그리고 부산 상공인과 시민 2만여 명이 참여했다.
또한 부산상공회의소는 직할시 승격을 기념하는 ‘부산탑’ 건립 공사를 추진
하였는데 예산 250만원(부산시 100만원, 부산상공회의소 150만원)으로 1962년
12월 25일에 기공식을 가진 뒤 1년간의 공정을 거쳐 1963년 12월 14일 제막식을
거행함으로써 부산의 명물 ‘부산탑’이 탄생을 보았다.
탑의 전체 높이는 23m, 상부에는 오륙도를, 중앙에는 자유의 횃불을 든 4.2m
높이 남녀 동상을 안치하여 부산의 영원한 번영을 염원하였고 가로 61㎝,
세로 91㎝, 두께 14.2㎝ 크기의 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에는 “이 탑은 넓은 바다와 맑은 하늘의 복과 덕을 입어 자유와 평화에의
굳은 신념으로 새로이 출발한 직할시 부산의 영원한 번영과 자손만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온 시민의 정성으로 모아진 것이다.”라는 취지문과 탑 건립에
참여한 당시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인 姜錫鎭과 具仁會, 金智泰, 朴敬奎, 朴正寬
申景浩, 申德均, 申世均, 愼重達, 梁泰振, 王相殷, 李秉喆, 李英震, 張洪植,
鄭翼鈺, 鄭泰星 外 釜山商議 議員 一同이라는 명단을 새겼다.
[2009. 3월에 발견된 부산탑 건립 기념비]
중앙로, 가야로, 새싹길, 동성로를 연결하는 다섯 갈래 서면로터리는 부산 교통의
중심은 물론 상업, 금융, 유통, 문화, 정보 등이 교차하는 소통의 로터리였다.
찻길은 늘 차량의 홍수를 이루었는데 솜씨가 서툰 신출내기 운전자는 로터리를
빠져나갈 기회를 잡지 못해 몇 바퀴나 뺑뺑이를 돌기도 했다.
197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로 도시가 발전하고 교통량이 폭증하자 부산에도
지하철 공사가 시작되면서 부산탑은 1981년 7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로터리는 신호등이 달린 교차로로 바뀌었다. 자유의 횃불을 든 남녀상은 부산
박물관 뜰에 보관되어 있으며 기념비는 종적이 묘연하다 2009년 3월, 부산박물관
지하 창고에서 발견된 바 있다.
[부산탑 설치 전의 서면로타리 항공사진, 1950년]
[철거 전의 부산탑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