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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꽃말은 일편단심입니다.

작성자은단초|작성시간26.06.23|조회수1 목록 댓글 0






민들레 꽃말은 일편단심입니다.
 

'조용필'은 1981년 '일편단심 민들레야'를 노래로 실어 발표합니다. 

그런데 이 노래의 작사자는 '이주현'이라는 여성으로, 당시(1981년) 72세의 
이 여사는 납북된 남편을 그리워하며 쓴 자전적인 이야기를 신문에 투고했는데 
이를 본 '조용필'이 가사로 만들어 줄 것을 제안하여 노래로 탄생하게 된 사연입니다. 

50년 전 그녀는 '동아일보' 총무국장이던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한국전쟁 때 납북되는 바람에 
홀로 3남매를 키우며 살아왔습니다. 

노점에서 좌판 등을 하며 어렵사리 살아온 그녀는 평생모은 돈을 남편이 다닌 '동아일보'에 기부하면서 남편 
이름을 붙인 '수남 장학금'을 만들었습니다.


1981년 4월 28일 신문에 실린 기사 '햇빛 본 할머니의 꿈'은 '이주현' 여사의 '일편단심'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남(水南)! 이렇게 불러볼 날도 이제 오래지 않겠지요. 
나도 나이古稀(고희)를 넘겼으니,살아갈 날이 얼마나 되오리까?
당신과 헤어진지도, 어언 30년성상이, 넘어가네요!
밟혀도 밟혀도 고개를 쳐드는 민들레같이 살아온 세월,
몇 번씩이나 너무 지치고 힘에 부쳐 인생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때마다 당신을 생각하며 이겨왔답니다."

이 여사는 1년여에 걸쳐 집필한 원고 1천 여장 분량의 '일편단심민들레야'의 첫머리에 납북 후 생사를 
알 길없는 남편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끈질긴 생명력의 민들레라 해도 일편단심 붉은 정열이 내게 없었다면 어린 자식들을 못 키웠을 
것이고, 지아비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의 情(정)이 없었다면, 붓을 들 용기도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내용을 축약하고 다듬어 쓴 노랫말 가사는,

"님 주신 밤에 씨 뿌렸네, 사랑의 물로 꽃을피웠네.
처음 만나 맺은 마음 일편단심 민들레야
그 여름 어인 광풍,
그 여름 어인 광풍,
낙엽지듯가시었나. 행복했던 장미인생 비바람에 꺾이니 
나는 한 떨기 슬픈 민들레야
긴 세월하루같이 하늘만 쳐다보니 그이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들을까,
일편단심민들레는, 일편단심 민들레는 떠나지 않으리라."

노랫말 중 '그 여름의 어인 狂風(광풍)'은 1950년청천벽력 같은 6.25 전쟁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낙엽지듯,가시었나'는 그해 가을 납북된 남편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늘만,바라보는 것'은 이북에 끌려간 후 종무 소식없는 남편을 생각하며 그리워함이고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그 목소리'는 남편이 떠나면서 "걱정하지마, 금방 돌아올게!"라고 말했던 그 목소리였습니다.

조용필이 지구레코드  슈트디오에서 이 곡의 취입이 있었습니다. 

조용필은 이주연 여사를, 취입현장에 초대했고. 이여사의 한매친 사연이 조용필 특유의 절규에 가까운 
열창으로 대형 스피커를 통해 울려 펴졌습니다. 


특히 
"나는 한떨기 슬픈 민들레야. 
긴세월,하루같이 하늘만 쳐다보니 그이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들을까" 하는 대목에서 이씨의, 주름잡힌
 노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흘렀고 스튜디오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도 눈을 감고 싶을 만큼 숙연해졌다고 합니다. 


○진심을 신겨준 점원과 노신사
    
어느 비 내리는 오후, 서울 외곽의 한 구두 매장에 백발이 성성한 노신사가 들어섰습니다. 

그의 옷차림은 깔끔했지만, 발에 신겨진 구두는 밑창이 다 닳아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낡아 있었습니다.

매장 안의 다른 손님들이 힐끗거리며 그를 쳐다보았지만, 젊은 점원은 환한 미소로 그를 맞이했습니다.
"어르신, 비도 오는데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발이 많이 젖으셨네요."

점원은 노신사를 가장 편안한 소파로 안내하더니, 망설임 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깨끗한 손수건을 꺼내 빗물에 젖은 노신사의 발을 정성스럽게 닦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노신사가 당황하며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점원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새 신발을 신으시려면 발이 보송보송해야 기분이 더 좋으시잖아요. 잠시만 계셔보세요."

점원은 노신사의 발 크기를 꼼꼼히 재고, 평소 걸음걸이 습관까지 물어가며 가장 편안한 수제화 한 켤레를
 추천했습니다. 


신발을 신겨드린 후에도 구두끈을 조여주며 불편한 곳은 없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죠.

드디어 새 신발을 신고 일어선 노신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계산을 마친 후, 문을 나서려다 다시 뒤를 돌아 점원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의 눈가에는 작은 떨림이 있었습니다.
"젊은이, 사실 나는 오늘 아내를 먼저 보내고 오는 길이라네. 세상에 나 혼자만 남겨진 것 같아 마음이 참 
시리고 허전했지. 그런데 오늘 자네가 내 발을 닦아주고 신발을 신겨줄 때, 마치 내가 다시 세상의 환영을 받는
 귀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자네는 오늘 나에게 신발이 아니라 살아가야 할 온기를 팔았네. 
정말 고맙네."


점원의 진심 어린 배려가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가장 어두운 날을 밝혀주는 한 줄기 빛이 된 것입니다.

"상대의 낮은 곳(발)을 살피는 마음이 누군가의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기도 합니다. 

새삼 共感이 가는 글이 있어 공유합니다.

○시골 소녀의 7대 불가사의

'안나'는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 소녀다.
3학년까지만 있는 시골초등학교에 다니다가 4학년부터는 근처 도시 학교로 전학을 가야 했다.

전학 첫날, 버스에서 내리자 
다른 학생들은 각자 자기 교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낯선 분위기에 잠시 쭈뼛대던 '안나'도 미리 안내받은 교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같은 반이 된 학생들이 '안나'를 반갑게 맞아주기는 커녕 작은 시골 출신이라고 무시했다.

얼마 후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셨다.
갑자기 깜짝 쪽지시험 준비하라고 하셨다.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적어 제출하라고 했다.
다른 학생들은 재빨리 답을 쓰기 시작했다.

모든 학생이 답안지를 제출할 무렵, 

선생님이 '안나'에게 다가가 말했다.
“다른 아이들은 며칠 전에 배웠던 내용이야. 
너는 배우지 않았으니까 그냥 아는 대로만 답하면 된다.”

아이들 대부분은 
   중국의 만리장성,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영국의 스톤 헨지, 
   이집트의 피라미드, 
   이탈리아의 피사의 사탑, 
   인도의 타지마할, 
   페루의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 등을 써냈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적어낸 답을 읽어주다가 마지막으로 안나의 답안지를 읽기 시작했다.

“7대 불가사의는 우리가 
볼 수 있고 (be able to see), 
들을 수 있고 (be able to hear), 
느낄 수 있고 (be able to feel),   
웃을 수 있고 (be able to laugh), 
생각할 수 있고 (be able to think), 
친절할 수 있고 (be able to kind), 
사랑할 수 있는 (be able to love) 것입니다.”

선생님은 감동해서 멍하니 서 있었고, 다른 학생들도 모두 말을 잊은 채 앉아 있었다.

시력을 잃어버려 보지 못하고, 
청각을 잃어버려 듣지 못하고, 
불안과 인색함에 웃지 못하고,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심에
사랑의 표현조차 하지 못하는 일은 없었는지

보고, 듣고, 느끼고, 웃고, 생각하며, 친절하고, 사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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