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사, 군자를 향한 경배
제사가 지속될 것인가?
제사의 전통과 현대인의 고민
제삿날이 다가오면 고민이 됩니까? 제사에 참석해야 하는데 가기가 싫으십니까? 제사에 가면 제사를 어떻게 모셔야 할지 고민이 되십니까? 서원의 향사를 한번 참관해 보세요. 고민이 많이 해결 될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 가리지 않고 누구나 향사를 구경하는 것은 무방합니다. 향사를 보고 난 후에도 제사의 전통을 이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지는 못하더라도 거기서 만나는 조선 선비의 후예들의 단정한 모습에서 전통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는 마련 될 것입니다.
향사가 무엇인지 모르지요. 향사는 조선시대 중기 이후 세워진 사립학교인 서원에서 모시는 제사입니다. 학교인 서원에서는 공부나 하지 제사는 왜 지냈을까요? 당시의 공부는 지금의 공부와 매우 달랐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교육은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덕성의 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지식의 양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지만 과거에는 덕성과 지성의 겸비가 온전한 인간의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덕성은 지금은 안계시지만 서원 마당에 모셔진 군자인 스승의 길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요. 앎은 서원의 강당에서 살아있는 스승과 동료 학도들과 함께 닦아 가는 것이지요. 향사를 모시는 것도 공부의 절반입니다.
이제 향사를 볼까요?
향사는 일반 제사의 전범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반적으로 집에서 모시는 제사보다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습니다.
향사의 절차는 대강 입재, 향사, 파재의 세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입재의 단계는 다시 재계(근신, 정성들이기), 분정(제관 등 집사의 선정), 성생(희생제물 살펴보기), 진설(제물의 봉인과 제상차리기), 사축(축문쓰기) 등입니다.
향사는 전폐(폐백드리기), 초헌 ,아헌, 종헌, 음복, 망예(축문 불사르기)의 순서로 전폐 와에는 일반가정의 제사순서와 유사합니다. 파재는 음복 개좌와 출문당회입니다.
제사가 우리 사회에서 의례의 중심이었을 때는 제사의 종류와 규모는 신분에 따라서 달랐습니다. 향사 역시 누구나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람에서 인정받은 사람으로 한정되었습니다.
이제는 구신분제가 무너진 후 그러한 제한이 없습니다. 전통 의례의 엄숙함은 향사의 일을 나누어 맡기는 분정에서 잘 나타납니다. 향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분정을 하는 장시간 동안 단정히 꿇어앉아서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뜰 수 없기 때문에 수행이라도 할 정도로 힘들고 엄숙한 분위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유교의 제사가 혈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제사인데, 석전과 향사는 혈연보다 학연에 바탕한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존경하는 스승을 모시는 일입니다. 향사를 받드는 이들은 유림이고 향사를 받는 스승은 흔히 ‘혈식군자’라 합니다. 혈식은 익히지 않은 음식(제수)이란 의미이며, 군자란 누구나 알 듯이 유교의 이상적인 인간을 말합니다.
따라서 혈식군자가 많은 즉 향사를 받는 인물이 있는 집안은 그 자체가 영광스러운 일이므로 지역사회에서 큰 자랑거리로 내세웁니다. 이른바 명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유교는 의례의 정확한 실천을 요구하며, 제물의 목록과 진설, 복제, 자세 태도 제단 앞에서는 서열 등을 철저히 하였습니다. 이러한 강조가 연장자의 권위를 높이고, 사회통제를 지원하며, 보수적인 전통주의자의 태도를 조장합니다.
이것이 유교문화를 위축시켰고 식민지배의 역사는 전통문화의 전승과 단절에 대한 논의의 기회조차 박탈하였습니다. 이제 현대사회에서 유교문화는 대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벗어난 하위문화의 일부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유교문화에 대한 재평가가 다시 필요한 시기입니다. 구미에서 볼 수 있는 향사는 금오서원, 동락서원, 낙봉서원 등의 향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