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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에 바치는 십자가의 길

작성자오뚝이|작성시간19.03.22|조회수439 목록 댓글 0





      십자가의 길 기도는 아무때나 바칠수 있지만 특별히 사순시기 금요일과 성금요일에는 마땅히 바쳐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오늘은 사순2주일 금요일 십자가 기도를 드리고 나서 사순절에 신자들이 어렵지않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본 

다   사순시기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는 교회력 절기를 말하는데,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절 전 40일 기간동안을 말한다.

 사순절은 참회와 속죄로 우리의 신앙생활을 쇄신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준비하는 시기다.  예수가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누명으로

수난속에 십자가형의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사순시기를 보내면서 정의, 진실, 희생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사회적 공감과

이해가 없으면 진실이나 정의는 진흙속 진주같고, 개인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은 예수의 수난에 동참하려는 마음으로 각자의 처지에서 단식과 금육을 하며, 내게있는 어떤 것들을 나누려는

생각과 행동으로 예수의 말씀에 따라 회개와 보속의 생활을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한 없는 은총을 주시는

데, 사람들은 그릇을 준비하지 못해 은총이 땅으로 스며든다며, 하느님의 그릇은 감사, 찬미, 희생, 나눔, 행복, 봉사활동 등 녹슬지

않는 그릇이라는 어느 신부님의 말씀이 새삼 가슴을 울린다.  나는 어떤 생활을 하여야 할까? 

 

 * 프란치스코 교황은 3월 18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설명하며 사순 시기를 온전히 살기 위한 몇 가지 안을 제시했다.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Vatican Media)

Barbara Castelli / 번역 이창욱

“타인을 심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타인을 단죄하지 말고 용서해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아버지의 자비를 본받아야 합니다.” 3월 18일 월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삶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하느님을 본받고”, “아버지의 눈 앞에서 걸어가야” 한다고 상기시켰다. 교황은 이날 복음인 루카 복음(루카 6,36-38)에서 출발해 무엇보다도 가장 “나쁜” 행동들도 용서할 수 있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 설명했다.

“하느님의 자비는 아주 크고, 정말로 위대한 것입니다. 이 점을 잊지 맙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까! ‘저는 나쁜 일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저는 지옥에 제 자리를 마련한 것이니,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자비를 생각합니까? 아르스의 성자 비안네 신부에게 고해성사하러 갔던 불쌍한 과부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합시다. 과부의 남편은 자살했습니다. 다리에서 강물로 뛰어내렸던가요? (아무튼) 그녀는 흐느껴 울며 비안네 신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로 저는 불쌍한 죄인입니다. 그런데 불쌍한 제 남편! 남편은 지옥에 있습니다! 자살을 했기 때문입니다. 자살은 대죄입니다. 그 사람은 지옥에 갔습니다.’ 그러자 아르스의 본당 신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정하세요, 부인. 다리와 강 사이에 하느님의 자비가 놓여있거든요.’ 그런데 마지막까지, 끝까지, 하느님의 자비가 있습니다.”

사순 시기를 위한 좋은 습관

자비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실천적인 권고를 알려주셨다. 먼저 “심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특별히 이번 사순 시기 동안 삼가야 할 “나쁜 습관”이다.

“우리가 스스로 알아채지 못한 채 우리의 삶 안으로 스며든 습관이기도 합니다. 항상 심판합니다! 어떤 대화를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했는지 봤어요?’ (이는) 타인을 심판하는 겁니다. 하루에 몇 번이나 우리가 (타인을) 심판하는지 생각해봅시다. 제발 부탁입니다! 우리 모두는 (마치) 잘못된 판관들 같습니다. 안 됩니다! 모두가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어떤 대화를 시작할 때 (우리는) 항상, 타인에 대해 수근댑니다. ‘자, 보세요. 성형외과 시술을 받았어요! (그런데도) 전보다 더 못 생겼네요.’”

두 번째로, 단죄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에 가서는, 비록 “상당히 어렵지만”, 용서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행동으로 인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행하셔야 할 지에 대한 척도를 하느님께” 드리기 때문이다.

호주머니를 열어둡시다

교황은 강론을 통해 관대함의 지혜, 곧 “험담”을 포기하기 위한 최선책을 이해하라고 모두를 초대했다. 험담을 통해 “우리는 계속해서 심판하고, 계속해서 단죄하며, 용서도 아주 어렵게”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어라’고 가르치십니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주는 일에 대해 관대한 사람이 되십시오. ‘호주머니를 닫아놓은 사람들’이 되지 마십시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는 데 있어 관대한 사람이 되십시오. 또 많은 것을 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조언을 해주고,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십시오. 웃으십시오. 항상 주고, 또 주십시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루카 6,38). 주님께서는 관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를 주면 그분께서는 우리가 준 것보다 100배를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심판하지 않는 것, 단죄하지 않는 것, 용서하는 것을 확고하게 해주는 태도입니다. 자선의 중요성은 물질적인 자선뿐 아니라, 영적인 자선도 중시합니다. 영적인 자선은 (우리가) 도움이 필요한 타인에게 우리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 병자를 방문하는 것, 웃어주는 것입니다.”

 


18 3월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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