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의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출전 : [개벽]25호(1922.7월호), 시집 [진달래꽃](1926)
즈려 밟고 : 가볍게 눌러 밟고. 즈려 : '재겨 디디어 사뿐히'(살짝 눌러 발이 땅에 닿을 듯 말 듯.) - 평안북도 사투리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누구나 알고 있다고 여겨질 만큼 알려진 시이다. 지금껏 여러 사람이 소월의 <진달래꽃>을 해석했고 그 해석들이 일면 타당성을 지니고 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선입감 없이 여러 각도로 시를 대한다면 시가 지닌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 시를 시어를 중심으로 보면 그간에 해석되었듯이 이별의 정한을 형상화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연인들 간에 주고받는 달콤한 이야기이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진 상태에서 내가 싫어서 님이 간다면 눈물도 흘리지 않고 잘가라고 꽃을 뿌리면서 보내주겠다고 웃으면서 가볍게 농담처럼 하는 말인 것이다. 물론 가볍게 말하는 속에도 님에 대한 사랑과 진실이 들어있지만 말이다.
이 시에서 논란이 된 부분은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이다. 이 부분은 처음에는 역설이라고 했다가 시간이 흐른 뒤에는 반어라고 하였다. 이 부분이 역설이라면 독자가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모순을 느껴야한다. 역설은 사전에서 ‘②〖논리〗일반적으로는 모순을 야기하지 아니하나 특정한 경우에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는 논증. 모순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그 속에 중요한 진리가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이라 풀이되어 있다. 그러므로 시에 쓰인 역설도 이에서 벗어난 특수한 용어가 아닌 이상 모순 되게 보여야 한다. 그런데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에서는 모순을 발견하기 어렵다. 헤어지는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것을 모순이라 생각한다면 너무 주관적이다. 자신이 싫어서 간다는 데는 눈물을 흘리면서 만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면서 만류하지 않는다고 이를 역설이라 하여 확대 해석하는 것은 주관적이다.
이 부분이 역설이 되기 어렵다고 생각한 사람은 이 부분을 반어라고 하였다. 반어란 사전에 ‘표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실제와 반대되는 뜻의 말을 하는 것’이라 풀이 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이 부분을 읽는 독자에게 ‘죽어도 눈물 흘리겠습니다’의 의미로 들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의미로 듣는 독자가 얼마나 있을까 의심 된다. 내가 싫어서 간다는데 그것도 역겨워서 간다는데 그런 사람을 보내는 것이 슬퍼서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자존심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슬픈 사람이 ‘아름따다’나 ‘사뿐이’와 같이 아름답고 가벼운 시어를 사용할까 의심이 된다. 슬픈 사람은 자신의 슬픈 마음이 담긴 말을 쓰는 것이다. 말은 마음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가벼운 시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화자의 마음이 가벼운 상태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 부분은 역설도 반어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 <진달래꽃>에 담긴 의미를 탐구하겠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에서 ‘가실 때에는’의 ‘에는’은 ‘⑨앞말이 조건, 환경, 상태 따위의 부사어임을 나타내는 격 조사’이다. 그리고 ‘가실 때’의 ‘-ㄹ’은 미래를 나타내는 관형형 어미이다. 그러므로 화자가 님을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는 때는 지금이 아니라 미래이다. 그러므로 ‘드리오리다’, ‘뿌리오리다’, ‘흘리오리다’에 나타난 화자의 행위는 ‘리다’가 ‘으오-' 뒤에 붙어』(예스러운 표현으로) ②하오할 자리에 쓰여, 상대에게 그렇게 하겠다는 의향을 말해 주는 종결 어미. 약속하는 의미가 될 때도 있다.’의 의미를 지녔을 생각하면 님에 대한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가 일어나는 때는 님이 나를 역겹게 보아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된 미래의 어느 때이다. 이는 다르게 보면 지금은 님이 나를 역겹게 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님에게 한 약속의 조건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이 시의 계절적 배경은 ‘진달래꽃’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화창한 봄이다. 그리고 ‘가시옵소서’를 보면 화자가 말하는 것을 청자가 듣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님이 바로 화자의옆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드리오리다’, ‘뿌리오리다’, ‘가시옵소서’, ‘흘리오리다’의 ‘오’는 ‘(예스러운 표현으로) 서술이나 의문에 공손함을 더하여 주는 어미‘이고 와 ‘시’는 ‘어떤 동작이나 상태의 주체가 화자에게 사회적인 상위자로 인식될 때 그와 관련된 동작이나 상태 기술에 결합하여 그것이 상위자와 관련됨을 나타내는 어미’로 화자가 청자를 매우 공손히 대하고 있고 청자를 상위자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는 미래에 님이 화자를 보는 것을 역겨워한다면 그리고 역겨워서 떠날 때는 왜 역겨워하느냐고 묻거나 매달리거나 울거나 하지 않고 ‘고이 보내’겠다고 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가서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고 한다. ‘고이’는 ‘ꃌ①겉모양 따위가 보기에 산뜻하고 아름답게. ②정성을 다하여. ③편안하고 순탄하게. ④온전하게 고스란히. ⑤성질이나 태도가 순순하게’의 의미이다. 이 시에서는 ①에서 ⑤의 의미가 모두 어울린다. 이러한 생각을 하기에 화자는 님이 ‘가실 길에’ ‘진달래꽃’을 뿌릴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꽃을 뿌리는 행위를 산화(散華)공덕(功德)이라고 하나 이는 공덕의 의미가 ‘ ②〖불교〗좋은 일을 행한 덕으로 훌륭한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능력’이므로 타당하지 않다. 그렇다면 ‘진달래꽃’을 뿌리는 의미는 무엇이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진달래꽃’에 담긴 의미를 알아야 한다. ‘진달래꽃’은 ‘진달래’나무에서 핀 꽃으로 다른 말로 ‘두견화(杜鵑花)‧산척촉(山躑蠋)’이라 한다.
설화에 의하면 진달래꽃은 본래 흰색이었는데 두견새가 죽으면서 토한 피가 묻어서 붉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두견새에는 유래담이 있다. 중국 설화에는 ‘중국 촉나라 황제가 나라를 잃고 죽어 두견새가 되었고, 봄마다 나라 잃은 슬픔에 울며 흘린 피눈물이 떨어져 진달래꽃을 붉게 물들였다’고 하고 또는 ‘옛 중국의 촉(蜀)에 망제(望帝)가 아내를 별령에게 빼앗기고 하루 종일 울다 지쳐 죽게 되었을 때 두견새에게 "두견새야! 내 대신 울어서 나의 심정을 사람들에게 전해다오."라고 유언을 했다. 망제의 유언을 들은 두견은 즉시 촉으로 날아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를 토하면서 울어댔다.두견새가 토해낸 피가 묻어 붉게 물든 꽃이 바로 진달래꽃이다. 그래서 진달래꽃을 두견화라 부르게 된 것이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설화에는 진달래꽃이 ‘우렁각시’의 변이담으로 전한다. 우렁각시가 사람이 된 후 우렁각시를 본 임금 또는 원님이 우렁각시를 데려다가 궁궐 또는 원 깊숙이 우렁각시를 숨겨놓자 각시를 찾으러 간 총각이 각시를 보지 못하고 궁밖 또는 원 밖에서 헤메다 죽어 새가 되어 각시가 있는 곳에 가서 자기가 왔음을 각시에게 알리며 밤새 울다 피 토하고 죽었는데 그 피가 묻어 진달래꽃이 붉게 되었다는 전설과 죽은 자리에서 나무가 생겼는데 그 나무가 진달래라는 전설이 있다.
이러한 전설들은 진달래꽃이 단순한 봄의 꽃이 아니라 님에 대한 일편단심의 사랑을 의미함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은 단순한 향토적 소재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는 님에 대한 일편단심의 사랑을 님이 가실 길에 뿌리겠다는 의미로 사랑으로 님을 고이 보내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님이 나를 떠나가더라도 원망하지 않고 또 원망이 있더라도 표현하지 않고 말없이 고이 보내 줌으로써 님이 ‘가시는 걸음 걸음’이 ‘사뿐’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별의 순간에 아무런 부담없이 가볍게 자신을 떠나가라는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내는 것이 화자의 님을 위한 사랑이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라는 것을 어떤 이는 화자의 사랑을 ‘무참히 짓밟지는 말라’는 의미라 한다. 이보다는 사랑으로 님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뿐히 떠나게 하겠다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화자의 마음을 님에게 전달하고 자신의 뜻대로 하기를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옵소서’는 ‘합쇼할 자리에 쓰여, 정중한 부탁이나 기원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 공손함을 나타내는 어미로 '-오-16'에 부탁이나 기원을 나타내는 어미 '-소서06'가 결합한 말이다’ 이러한 태도는 1연의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와 호응이 되면서 다시 한 번 더 4연에서 강조된다.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는 눈물을 흘리겠다는 의미를 지닌 반어로 쓰인 것도 아니고 상황적인 역설도 아니다. 화자의 말 그대로 님이 내가 싫어서 갈 때는 부담 없이 가볍게 갈수 있도록 매달리지도 않고 눈물을 보임으로써 님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내용적으로 님이 화자를 역겨워서 떠나는 이별의 순간에 화자가 취할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 태도는 님이 떠나면서 부담이 없도록 가볍게 떠나게 사랑으로 보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가정이다. 실제 상황이 아니다. 또한 이러한 고백을 하고 있는 상황은 님과 이별할 가능성이 없는 상황이다. 이 시가 이별을 염두에 쓰고 썼다면 ‘아름 따다’나 ‘사뿐이 즈려 밟고’와 같이 가벼운 느낌을 말을 쓰기는 어렵다.
이 시는 이별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사랑에 자신감에 차서 가볍게 말하는 것이다. 진달래꽃 핀 화창한 봄날에 영변의 약산에 님과 함께 구경 가서 행복에 겨워하는 이야기이다. 내가 보기 싫어서 떠난다면 말없이 보내 드리겠다. 이 산의 핀 꽃을 아름 따다 가는 길에 뿌리겠다. 눈물도 보이지 않겠으니 가볍게 떠나라는 농이 석인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05. 07. 23 토요일 오전 10:17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출전 : [개벽]25호(1922.7월호), 시집 [진달래꽃](1926)
즈려 밟고 : 가볍게 눌러 밟고. 즈려 : '재겨 디디어 사뿐히'(살짝 눌러 발이 땅에 닿을 듯 말 듯.) - 평안북도 사투리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누구나 알고 있다고 여겨질 만큼 알려진 시이다. 지금껏 여러 사람이 소월의 <진달래꽃>을 해석했고 그 해석들이 일면 타당성을 지니고 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선입감 없이 여러 각도로 시를 대한다면 시가 지닌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 시를 시어를 중심으로 보면 그간에 해석되었듯이 이별의 정한을 형상화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연인들 간에 주고받는 달콤한 이야기이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진 상태에서 내가 싫어서 님이 간다면 눈물도 흘리지 않고 잘가라고 꽃을 뿌리면서 보내주겠다고 웃으면서 가볍게 농담처럼 하는 말인 것이다. 물론 가볍게 말하는 속에도 님에 대한 사랑과 진실이 들어있지만 말이다.
이 시에서 논란이 된 부분은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이다. 이 부분은 처음에는 역설이라고 했다가 시간이 흐른 뒤에는 반어라고 하였다. 이 부분이 역설이라면 독자가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모순을 느껴야한다. 역설은 사전에서 ‘②〖논리〗일반적으로는 모순을 야기하지 아니하나 특정한 경우에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는 논증. 모순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그 속에 중요한 진리가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이라 풀이되어 있다. 그러므로 시에 쓰인 역설도 이에서 벗어난 특수한 용어가 아닌 이상 모순 되게 보여야 한다. 그런데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에서는 모순을 발견하기 어렵다. 헤어지는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것을 모순이라 생각한다면 너무 주관적이다. 자신이 싫어서 간다는 데는 눈물을 흘리면서 만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면서 만류하지 않는다고 이를 역설이라 하여 확대 해석하는 것은 주관적이다.
이 부분이 역설이 되기 어렵다고 생각한 사람은 이 부분을 반어라고 하였다. 반어란 사전에 ‘표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실제와 반대되는 뜻의 말을 하는 것’이라 풀이 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이 부분을 읽는 독자에게 ‘죽어도 눈물 흘리겠습니다’의 의미로 들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의미로 듣는 독자가 얼마나 있을까 의심 된다. 내가 싫어서 간다는데 그것도 역겨워서 간다는데 그런 사람을 보내는 것이 슬퍼서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자존심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슬픈 사람이 ‘아름따다’나 ‘사뿐이’와 같이 아름답고 가벼운 시어를 사용할까 의심이 된다. 슬픈 사람은 자신의 슬픈 마음이 담긴 말을 쓰는 것이다. 말은 마음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가벼운 시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화자의 마음이 가벼운 상태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 부분은 역설도 반어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 <진달래꽃>에 담긴 의미를 탐구하겠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에서 ‘가실 때에는’의 ‘에는’은 ‘⑨앞말이 조건, 환경, 상태 따위의 부사어임을 나타내는 격 조사’이다. 그리고 ‘가실 때’의 ‘-ㄹ’은 미래를 나타내는 관형형 어미이다. 그러므로 화자가 님을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는 때는 지금이 아니라 미래이다. 그러므로 ‘드리오리다’, ‘뿌리오리다’, ‘흘리오리다’에 나타난 화자의 행위는 ‘리다’가 ‘으오-' 뒤에 붙어』(예스러운 표현으로) ②하오할 자리에 쓰여, 상대에게 그렇게 하겠다는 의향을 말해 주는 종결 어미. 약속하는 의미가 될 때도 있다.’의 의미를 지녔을 생각하면 님에 대한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가 일어나는 때는 님이 나를 역겹게 보아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된 미래의 어느 때이다. 이는 다르게 보면 지금은 님이 나를 역겹게 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님에게 한 약속의 조건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이 시의 계절적 배경은 ‘진달래꽃’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화창한 봄이다. 그리고 ‘가시옵소서’를 보면 화자가 말하는 것을 청자가 듣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님이 바로 화자의옆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드리오리다’, ‘뿌리오리다’, ‘가시옵소서’, ‘흘리오리다’의 ‘오’는 ‘(예스러운 표현으로) 서술이나 의문에 공손함을 더하여 주는 어미‘이고 와 ‘시’는 ‘어떤 동작이나 상태의 주체가 화자에게 사회적인 상위자로 인식될 때 그와 관련된 동작이나 상태 기술에 결합하여 그것이 상위자와 관련됨을 나타내는 어미’로 화자가 청자를 매우 공손히 대하고 있고 청자를 상위자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는 미래에 님이 화자를 보는 것을 역겨워한다면 그리고 역겨워서 떠날 때는 왜 역겨워하느냐고 묻거나 매달리거나 울거나 하지 않고 ‘고이 보내’겠다고 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가서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고 한다. ‘고이’는 ‘ꃌ①겉모양 따위가 보기에 산뜻하고 아름답게. ②정성을 다하여. ③편안하고 순탄하게. ④온전하게 고스란히. ⑤성질이나 태도가 순순하게’의 의미이다. 이 시에서는 ①에서 ⑤의 의미가 모두 어울린다. 이러한 생각을 하기에 화자는 님이 ‘가실 길에’ ‘진달래꽃’을 뿌릴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꽃을 뿌리는 행위를 산화(散華)공덕(功德)이라고 하나 이는 공덕의 의미가 ‘ ②〖불교〗좋은 일을 행한 덕으로 훌륭한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능력’이므로 타당하지 않다. 그렇다면 ‘진달래꽃’을 뿌리는 의미는 무엇이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진달래꽃’에 담긴 의미를 알아야 한다. ‘진달래꽃’은 ‘진달래’나무에서 핀 꽃으로 다른 말로 ‘두견화(杜鵑花)‧산척촉(山躑蠋)’이라 한다.
설화에 의하면 진달래꽃은 본래 흰색이었는데 두견새가 죽으면서 토한 피가 묻어서 붉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두견새에는 유래담이 있다. 중국 설화에는 ‘중국 촉나라 황제가 나라를 잃고 죽어 두견새가 되었고, 봄마다 나라 잃은 슬픔에 울며 흘린 피눈물이 떨어져 진달래꽃을 붉게 물들였다’고 하고 또는 ‘옛 중국의 촉(蜀)에 망제(望帝)가 아내를 별령에게 빼앗기고 하루 종일 울다 지쳐 죽게 되었을 때 두견새에게 "두견새야! 내 대신 울어서 나의 심정을 사람들에게 전해다오."라고 유언을 했다. 망제의 유언을 들은 두견은 즉시 촉으로 날아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를 토하면서 울어댔다.두견새가 토해낸 피가 묻어 붉게 물든 꽃이 바로 진달래꽃이다. 그래서 진달래꽃을 두견화라 부르게 된 것이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설화에는 진달래꽃이 ‘우렁각시’의 변이담으로 전한다. 우렁각시가 사람이 된 후 우렁각시를 본 임금 또는 원님이 우렁각시를 데려다가 궁궐 또는 원 깊숙이 우렁각시를 숨겨놓자 각시를 찾으러 간 총각이 각시를 보지 못하고 궁밖 또는 원 밖에서 헤메다 죽어 새가 되어 각시가 있는 곳에 가서 자기가 왔음을 각시에게 알리며 밤새 울다 피 토하고 죽었는데 그 피가 묻어 진달래꽃이 붉게 되었다는 전설과 죽은 자리에서 나무가 생겼는데 그 나무가 진달래라는 전설이 있다.
이러한 전설들은 진달래꽃이 단순한 봄의 꽃이 아니라 님에 대한 일편단심의 사랑을 의미함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은 단순한 향토적 소재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는 님에 대한 일편단심의 사랑을 님이 가실 길에 뿌리겠다는 의미로 사랑으로 님을 고이 보내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님이 나를 떠나가더라도 원망하지 않고 또 원망이 있더라도 표현하지 않고 말없이 고이 보내 줌으로써 님이 ‘가시는 걸음 걸음’이 ‘사뿐’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별의 순간에 아무런 부담없이 가볍게 자신을 떠나가라는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내는 것이 화자의 님을 위한 사랑이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라는 것을 어떤 이는 화자의 사랑을 ‘무참히 짓밟지는 말라’는 의미라 한다. 이보다는 사랑으로 님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뿐히 떠나게 하겠다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화자의 마음을 님에게 전달하고 자신의 뜻대로 하기를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옵소서’는 ‘합쇼할 자리에 쓰여, 정중한 부탁이나 기원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 공손함을 나타내는 어미로 '-오-16'에 부탁이나 기원을 나타내는 어미 '-소서06'가 결합한 말이다’ 이러한 태도는 1연의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와 호응이 되면서 다시 한 번 더 4연에서 강조된다.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는 눈물을 흘리겠다는 의미를 지닌 반어로 쓰인 것도 아니고 상황적인 역설도 아니다. 화자의 말 그대로 님이 내가 싫어서 갈 때는 부담 없이 가볍게 갈수 있도록 매달리지도 않고 눈물을 보임으로써 님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내용적으로 님이 화자를 역겨워서 떠나는 이별의 순간에 화자가 취할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 태도는 님이 떠나면서 부담이 없도록 가볍게 떠나게 사랑으로 보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가정이다. 실제 상황이 아니다. 또한 이러한 고백을 하고 있는 상황은 님과 이별할 가능성이 없는 상황이다. 이 시가 이별을 염두에 쓰고 썼다면 ‘아름 따다’나 ‘사뿐이 즈려 밟고’와 같이 가벼운 느낌을 말을 쓰기는 어렵다.
이 시는 이별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사랑에 자신감에 차서 가볍게 말하는 것이다. 진달래꽃 핀 화창한 봄날에 영변의 약산에 님과 함께 구경 가서 행복에 겨워하는 이야기이다. 내가 보기 싫어서 떠난다면 말없이 보내 드리겠다. 이 산의 핀 꽃을 아름 따다 가는 길에 뿌리겠다. 눈물도 보이지 않겠으니 가볍게 떠나라는 농이 석인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05. 07. 23 토요일 오전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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