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 어덕에 바로 누워
어덕에 바로 누워
아슬한 푸른하늘 뜻없이 바래다가
나는 이젔습네 눈물 도는 노래를
그하늘 아슬하야 너무도 아슬하야
이몸이 서러운줄 어덕이야 아시련만
마음이 가는웃음 한때라도 없더라냐
아슬한 하늘아래 귀여운맘 질기운맘
내눈은 감기였데 감기였데
이 시는 높은 하늘을 보니 눈물의 노래를 잊고 즐거운 마음이 생겼다는 내용이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언덕에 바로 누워 높고 높은 푸른 하늘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다가 그 하늘이 너무도 높아 눈물이 핑도는 노래를 잊었다. 내 몸이 서러운 줄을 언덕은 알 것이지만 마음에 가는 웃음은 항상 있었다. 높은 하늘 아래서 귀여운 마음과 즐거운 마음에 내 눈은 저절로 감기였다.
이 시를 구절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덕에 바로 누워 / 아슬한 푸른하늘 뜻없이 바래다가 / 나는 이젔습네 눈물 도는 노래를 / 그하늘 아슬하야 너무도 아슬하야’는 언덕에 누어 높은 푸른 하늘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다가 하늘이 너무도 높아서 눈물이 도는 노래를 잊었다는 것이다.
‘어덕’은 사투리로 언덕을 말한다. ‘아슬한’은 정확한 뜻을 알 수 없다. ‘아슬아슬’의 ‘아슬’로 보면 ‘소름이 끼치도록 조금 위태롭거나 두려운 모양을 나타내는 말’로 보면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아슬한 푸른하늘’로 인하여 ‘눈물 도는 노래를’를 잊는다는 내용으로 보아서 ‘아슬’은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 단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아슬한’은 ‘높고 높은’의 의미로 보인다. 가을 하늘처럼 높은 하늘을 가르키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시에서 ‘푸른 하늘’은 ‘이상, 희망, 꿈’을 의미하는 관습적 상징으로 쓰인다. 그러므로 ‘아슬한 푸른하늘’은 높으며 선명한 희망, 꿈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언덕에 누워서 선명한 희망, 꿈을 ‘뜻없이 바래다가’ ‘눈물 도는 노래’를 잊은 것이다.
‘뜻없이’는 아무 생각 없이 무심한 상태라고 생각된다. ‘바래다가’는 ‘바라보다가’의 의미로 보인다. 이를 ‘바래다’로 ‘원하다’의 의미로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뜻없이’와 충돌을 일으키는 단점이 있다.
‘눈물 도는 노래’는 슬픈 노래라는 의미로 그 내용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슬다만 2연에 ‘이몸이 서러운줄’을 통하여 화자를 둘러싼 상황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그하늘’의 ‘그’는 ‘푸른하늘’의 ‘푸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이 시가 ‘어덕’에서 쓴 것이 아니라 ‘어덕’을 내려와 과거를 회상하면서 쓴 것으로 볼 수 있다. 2연에 마지막 4행에 ‘-였데’가 과거를 말하는 것이므로 과거를 회상하면서 쓴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슬하야 너무도 아슬하야’는 화자가 ‘눈물 도는 노래’를 잊게 만드는 원인이다. 그러므로 ‘아슬’한 것은 긍정의 의미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슬’함의 심도가 깊을수록 더 좋은 것이다. 화자가 무척이나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슬픔을 잊게 되는 것이니 하늘은 아슬할수록 좋은 것이다.
‘이몸이 서러운줄 어덕이야 아시련만 / 마음이 가는웃음 한때라도 없더라냐 / 아슬한 하늘아래 귀여운맘 질기운맘 / 내눈은 감기였데 감기였데’는 내 몸이 서럽지만 아슬한 하늘 아래에서는 마음에 작은 웃음이 한 때라도 없었던 적이 없고 귀여운 마음과 즐거운 마음이 생겨나서 내 눈을 감기게 한다는 것이다.
‘이몸이 서러운줄’은 화자가 자신의 몸을 서럽다고 하는 것이다. ‘서러’움 원인을 이 시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보통 몸이 서럽다는 표현은 신분의 차별을 받거나 시대적 상황에 의해 차별을 당하거나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할 때 쓰는 경향이 높다. 그래서 일제강점으로 인한 시대상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닌가 한다.
‘어덕이야 아시련만’은 추측이면선 ‘어덕’을 의인화한 표현이다. ‘-ㄴ만’은 앞의 내용인 ‘서러운줄’과 반대되는 내용이 뒤에 올 것임을 나타낸다. ‘-ㄴ만’의 내용이 부정적이므로 ‘마음이 가는웃음 한때라도 없더라냐’는 긍정적인 내용으로 보는 것이 문맥상 맞다.
‘마음이 가는웃음’에서 ‘가는’은 ‘가늘다’ 또는 ‘가다’로 볼 수 있는데 어느 것이나 다 통한다. 그러나 ‘눈물 도는 노래’와 ‘이몸이 서러운줄’로 보아 화자는 항상 슬프거나 서러운 상태에 있으므로 ‘가는’의 의미를 ‘가늘다’로 보아 ‘작은’으로 풀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한때라도 없더라냐’는 ‘없다’로 볼 수도 있고 ‘있다’고 볼 수도 있으나 ‘가는웃음’과 ‘귀여운맘 질기운맘’으로 볼 때에 ‘있다’로 보아 ‘한 때라도 없었던 적이 없다’의 의미로 본다. 화자가 ‘아슬한 푸른하늘’을 볼 때마다 ‘가는웃음’이 있었다는 말이다.
‘귀여운맘’을 어떤 의도로 썼는지 알 수 없다. 화자가 자신의 마음을 귀엽다고 표현한 것이 어색하다. 아마도 ‘가는웃음’을 객관적으로 보면서 귀엽다고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한다. 지금 화자는 ‘푸른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웃음’은 ‘푸른하늘’이 짓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어떤가? 화자가 보는 하늘의 웃음은 화자의 마음이 가는 ‘웃음’인 것이다. 화자는 그 ‘웃음’을 귀엽게 보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즐거운 마음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웃음 한때라도 없더라냐’는 화자가 작은 웃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푸른 하늘의 웃음이 항상 있었다는 표현인 것이다.
‘질기운맘’의 ‘질기운’은 ‘질기다’로 보이지만 내용상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즐거운’의 사투리로 보는 것이 앞에 긍정적으로 쓰인 ‘귀여운맘’과 통한다.
‘내눈은 감기였데 감기였데’에서 ‘-였-’은 ‘-이었-’의 준말로 ‘-이-’는 사동 또는 피동의 의로 쓰인 것으로 화자의 눈이 화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감기었다는 것을 말한다.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 도는 노래’를 잊고 ‘가는웃음’인 ‘귀여운맘 질기운맘’이 화자의 눈을 감게 만들어 이를 음미하게 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느낌
그래.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있어도 꿈을 잊지 않고 혼자서 고요히 꿈을 달성하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 ‘그러함에 눈을 감고 생각할 수밖에’20180216금전0257설날모두복많이밭으세요전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