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절망(絶望)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1965. 8. 28)
이 시는 상황은 변함이 없는 절망 상태이나 희망과 구원은 다른 곳에서 오고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온다는 화자의 믿음을 담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풍경과 곰팡과 여름과 속도가 졸렬하고 수치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지 않는 절망적인 상태가 계속되고 있고 끝없이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희망과 구원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러나 희망은 화자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다른 곳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 시를 구절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시의 제목 <절망(絶望)>은 현재 화자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화자에게 주는 감정을 말한다. 이 시는 모두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은 풍경과 곰팡과 여름과 속도가 변함이 없는 상태라는 것을 말한다. ‘반성하지 않’으면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화자를 둘러싼 풍경도 변함이 없고 방안 또는 건물 안에 피어난 곰팡이가 변함없이 사라지지 않고 계절인 여름도 변화가 없고 속도를 추구하는 현대의 속성도 변한 것이 없다. ‘반성’이란 잘못한 일을 하거나 잘못된 결과가 나올 때에 하는 행위이다. 이전의 상태나 이전에 행한 일을 다시 하지 않기 위하여 ‘반성’을 하는 것이다. 이전과 달리 변화하는 것이다. 풍경과 곰팡과 여름과 속도가 무엇을 말하는 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부정적 대상인 ‘곰팡’과 뒤에 ‘졸렬과 수치’가 나오는 것을 볼 때에 부정적인 것들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는 위에서 말한 풍경과 곰팡과 여름과 속도가 반성하지 않는 것은 ‘졸렬과 수치’라는 것이다. 위의 4행은 화자를 둘러싼 외부적 환경과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이고, 이들의 반성 없는 태도를 ‘졸렬과 수치’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를 앞의 이 부분을 위의 행처럼 쓰면 ‘졸렬이 졸렬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수치가 수치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이 된다. 그런데 화자는 이 둘을 나누워 쓰지 않고 함께 씀으로 리듬의 변화를 주면서 앞의 1~4행의 행위 모두에 ‘졸렬과 수치’를 생략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한다.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는 ‘절망’이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절망’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그러나 화자는 ‘절망’에 빠져 있지 않는다. 내부적 요인이 변하지 않기에 스스로 ‘절망’에서 빠져 나올 수는 없지만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화자가 원하는 ‘바람’과 ‘구원’이 올 수는 있는 것이다. 바람과 구원은 내부에서 올 수 없고 외부에서 올 것이라는 말이다. ‘바람’과 ‘구원’은 ‘딴 데에서’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때가 되기 전에는 화자는 ‘절망’ 속에 있는 것이다.
‘바람’은 소망을 의미하는 ‘바람’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현재의 환경을 변화시킬 ‘바람’이고, ‘바람’으로 인한 환경의 변화로 ‘절망’에서 벗어날 ‘구원’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이렀게 ‘바람’이 불고 ‘구원’이 올 때는 아무도 모른다. 그 때는 조금 후가 될 수도 있고 먼 훗날이 될 수도 있다. 화자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올 것이라고 화자는 생각한다. 희마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는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뒤에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가 와야 시간적 순서에 맞는다. 그런데도 화자가 이를 위와 같이 배열한 것은 화자가 있는 현재 상황이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20150603수후0559전한성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