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꽃잎1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줄
모르고 자기가 가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
한 잎의 꽃잎같고
혁명(革命)같고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같고
나중에 떨어져내린 작은 꽃잎같고
*표기는 민음사 1984.4월 판에 따름
이 시는 평범한 것에 고개를 숙이는 바람의 행위는 거룩한 것이고 이 거룩함은 삶의 즐거움을 주고 즐거움은 바람을 꽃처럼 아름다운 존재로 변화시키고 아름다운 존재인 꽃은 계속 평범한 것에 고개를 숙이는 조금의 움직임으로도 혁명을 일으키는 힘을 갖는다는 내용이다.
바람의 고개는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에게 숙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것에 머리를 숙여 평범한 것을 존중한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 머리를 숙인다. 그 숙임은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 잎이 흔들리듯이 그렇게 조금 머리를 숙이는 것이라서 아주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보고도 알 수가 없다.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 줄도 모르고 자기가 가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닿은 뒤에 즐거움을 조금 알게 되었다.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바람의 고개는 그저 평범한 것에 조금 꺼졌다 깨어난다. 바람의 고개가 조금 꺼졌다 깨어나는 모습은 언뜻 보기엔 임종을 맞이한 생명 같고, 다르게 보면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 내릴 한 잎의 꽃잎 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 내린 한 잎의 꽃잎의 모습은 혁명(革命) 같고, 그 모습을 미시적으로 보면 먼저 떨어져 내린 큰 바위 같고, 거시적으로 보면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 같고, 나중에 떨어져 내린 작은 꽃잎 같다.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 많이는 아니고 조금 /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은 바람의 고개가 평범한 것에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조금 머리를 숙인다는 말이다. ‘머리를 숙’이는 주체는 2연의 ‘바람의 고개’이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촉감으로 느끼거나 바람에 의해 흔들리는 사물을 보고 알 수 있는 것이다. ‘바람’은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것에’ 머리를 숙인다. ‘평범한 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제시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평범한 것에’ 머리를 숙이는 행위는 바람 자신도 모르게 2연의 ‘거룩한 산에 가닿’게 되는 원인이 된다. ‘바람’은 ‘평범한 것’에 머리를 이는 정도는 ‘많이는 아니고 조금’만 숙인다. 그 ‘조금’의 정도는 ‘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이다. 눈으로는 느낄 수 없는 정도이다. 화자는 보통사람은 느낄 수 없는 정도의 움직임을 보고 있는 것이다. ‘머리를 숙’이는 행위는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뒤에 나오는 구절인 ‘평범한 것에’로 보면 ‘사람’은 ‘평범한 것’이 아닌 존재임을 알 수 있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은 진심이 아니라 아부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일 것이다.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줄 / 모르고 자기가 가닿는 언덕을 /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닿기 /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는 ‘바람의 고개’는 ‘평범한 것에’ ‘머리를 숙’임으로서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거룩함을 알게 되어 이전에는 모르던 즐거움을 알게 되고 그 즐거움을 알아서 아름다운 꽃이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것에’ 자연스럽게 머리를 숙인다는 말이다.
‘바람의 고개’가 ‘평범한 것에’ ‘머리를 숙’이고 난 뒤에 자신의 움직임을 인식하지 않는 상태에서 ‘언덕’에 가닿고, 더 가서 ‘거룩한 산에 가 닿기’에 이른다. ‘바람’은 단지 ‘평범한 것에’ 단지 ‘머리를’ 누구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조금 숙였을 뿐인데, 이러한 자세가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거룩한 산’에 가 닿아 거룩함이 주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어 ‘바람’은 ‘꽃’이라는 아름다운 존재로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 다른 존재가 된 ‘바람’은 ‘꽃’이 되어도 계속 ‘평범한 것에’ 고개를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는 ‘머리를 숙’인다. 이러한 ‘꽃’의 행위는 자신의 일부인 ‘꽃잎’ 하나로 3연의 ‘혁명(革命)같’은 일을 만드는 것이다.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같고 /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 / 한 잎의 꽃잎같고 / 혁명(革命)같고 /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같고 /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같고’은 ‘꽃’이 된 ‘바람’이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여기에서 ‘꽃’의 일부인 ‘꽃잎’은 이전에 한 번 떨어진 적이 있다. 이에 근거하여 화자는 앞으로 떨어질 ‘꽃잎’을 말하고 있다. ‘꽃’이 된 ‘바람’이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는 모습은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같’이 보이는 것이다. ‘언뜻 보’는 것은 그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꽃’의 움직임은 너무나 미세한 움직임이기 때문에 ‘언뜻 보기엔 임종’의 순간에 있는 ‘생명’의 미세한 움직임 같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 / 한 잎의 꽃잎같’은 것이다. ‘뭉개고 떨어져 내’린 것이 아니라 ‘떨어져내릴’ 것 같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술은 화자가 과거에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같고 /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같고’란 상징으로 표현한 경험을 하였던 것에서 나온 것이다. 과거의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같고 /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같고’는 화자가 경험한 것이지만 ‘먼저 떨어져내린 큰 바위’을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이 ‘뭉개고 떨어져내’린 것은 아니나 화자는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이 ‘뭉개서 아래에 있던 ’큰 바위‘가 ‘먼저 떨어져내’리게 된 것으로 인과관계를 형성하여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꽃’의 일부인 또 다른 ‘꽃잎’이 앞선 ‘꽃잎’처럼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릴 / 한 잎의 꽃잎같’이 ‘혁명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작고 가벼운 ‘꽃잎’이 ‘큰 바위’를 뭉개어 ‘큰 바위’를 떨어지게 한다는 것은 일반 상식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일어나게 하는 것이 ‘혁명’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화자는 이러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었다는 일이 과거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것은 ‘평범한 것’에 고개를 숙이는 눈치 챌 수 없는 아주 작은 ‘바람’이 ‘거룩’함을 접하고 ‘꽃’이 되었고 ‘꽃’이 되고도 ‘평범한 것’에 고개를 숙였기 때문에 혁명같은 일이 과거에 일어났고 앞으로 ‘혁명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큰 바위’와 ‘꽃’의 원관념을 시에서는 찾을 수 없다. ‘꽃’이 된 ‘평범한 것’에 ‘고개’를 숙인 ‘바람’의 원관념이 시에 명시적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과거의 ‘큰 바위’는 ‘이승만 정권’을, ‘꽃잎’은 ‘4·19혁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화자가 말하는 미래의 ‘뭉개질 바위’는 ‘박정희 정권’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평범한 것’에 아주 조금 고개 숙이는 행동이 자신도 모를게 ‘거룩함’을 알게 되어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자신을 ‘꽃’으로 상징되는 ‘아름다운 존재’로 바꾸고, ‘꽃’이 된 자신이 ‘평범한 것’에 아주 조금 고개 숙이는 행동‘을 하게 되면 ’혁명‘을 일으키는 엄청난 힘이 되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떨어져내린 작은 꽃잎같고’는 3연의 6행을 반복하여 강조한 것으로 과거에 일어난 가벼운 ‘꽃잎’이 ‘큰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내린‘ 것을 다시 한 번 더 말한 것이다. 이는 화자가 과거에 일어난 ’혁명같은‘ 일을 강조하여 말하는 것이다.20150618목후0256흐림전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