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아버지의 사진
아버지의 사진을 보지 않아도
비참은 일찍이 있었던 것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진에는
안경이 걸려 있고
내가 떳떳이 내다볼 수 없는 현실처럼
그의 눈은 깊이 파이어서
그래도 그것은
돌아가신 그날의 푸른 눈은 아니오
나의 기아(飢餓)처럼 그는 서서 나를 보고
나는 모오든 사람을 또한
나의 처(妻)를 피하여
그의 얼굴을 숨어 보는 것이오
영탄(詠嘆)이 아닌 그의 키와
저주가 아닌 나의 얼굴에서
오오 나는 그의 얼굴을 따라
왜 이리 조바심하는 것이오
조바심도 습관이 되고
그의 얼굴도 습관이 되며
나의 무리(無理)하는 생에서
그의 사진도 무리가 아닐 수 없이
그의 사진은 이 맑고 넓은 아침에서
또 하나 나의 팔이 될 수 없는 비참이오
행길에 얼어붙은 유리창들같이
시계의 열두시같이
재차는 다시 보지 않을 편력의 역사.......
나는 모든 사람을 피하여
그의 얼굴을 숨어 보는 버릇이 있소
<1949>
이 시는 화자의 생활고가 아버지 때부터 고착된 것이고 이를 벗어나려고 하나 벗어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화자는 자신의 ‘비참’한 생활이 ‘일찍이 있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사진을 보지 않아도 / 비참은 일찍이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이는 ‘아버지의 사진’은 ‘비참’이라는 말이다. ‘아버지의 사진’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찍은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생존했을 때도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화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진에는 / 안경이 걸려 있고’ ‘그의 눈은 깊이 파이어서’ 있다고 아버지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깊이 파’인 ‘아버지의 사진’ 속의 ‘아버지의 눈’은 ‘돌아가신 그날의 푸른 눈은 아니’라 하여 ‘돌아가신 그날의 푸른 눈은’ ‘아버지의 사진’ 속의 ‘아버지의 눈’보다 더 ‘깊이 파’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아버지의 눈’이 깊이 파인 것은 ‘내가 떳떳이 내다볼 수 없는 현실’과 연관이 있고 ‘나의 기아(飢餓)’와 연관이 있다.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에 아버지는 ‘비참’한 생활로 먹지 못하여 살이 빠져 눈이 쑥 들어간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떳떳이 내다볼 수 없는 현실처럼’과 ‘나의 기아(飢餓)처럼’ 아버지 때에 생활이 매우 어렵고 그 어려운 삶이 화자에게 이어져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서서 나를 보고’는 화자가 ‘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진을 보면서 ‘비참’을 느끼고 있기에 화자는 ‘모오든 사람’과 ‘나의 처(妻)를 피하여’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사진 속의 아버지의 시선을 피해서 ‘숨어 보는 것’은 화자가 아니다. 화자가 피하는 것은 ‘모오든 사람’과 ‘나의 처(妻)를 피하’는 것이다. 이들을 피하여 ‘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있는 것이다. ‘비참’을 보고 있는 것이다.
‘영탄(詠嘆)이 아닌 그의 키’는 ‘영탄’할 수 없는 키로 일반적인 사람의 키를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저주가 아닌 나의 얼굴’은 ‘아버지’의 모습을 닮은 화자의 얼굴이 저주받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화자는 자신의 ‘얼굴에서’ ‘아버지의 사진’ 속에 있는 아버지의 얼굴에 보이는 ‘조바심’을 ‘따라’ ‘조바심’을 내는 것을 자신의 ‘얼굴에서’ 발견을 하고 놀란다. 이를 ‘오오 나는 그의 얼굴을 따라 / 왜 이리 조바심하는 것이오’라고 말하는 것이다.
‘조바심도 습관이 되고 / 그의 얼굴도 습관이 되며’는 아버지의 조바심을 따라하는 자신의 조바심이 습관이 되어 ‘아버지의 사진의 얼굴’처럼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나의 무리(無理)하는 생에서 / 그의 사진도 무리가 아닐 수 없이’는 화자 자신의 ‘생’이 ‘떳떳이 내다볼 수 없는 현실’과 ‘기아(飢餓)’로 인하여 ‘무리하는 생’이고 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화자의 ‘생’과 아버지의 ‘생’도 ‘편력의 역사’에 한 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화자의 ‘생’이 ‘무리(無理)하는 생에서’ 벗어나야만, 즉 화자의 현재의 ‘생’이 어떠하냐에 따라 아버지의 ‘생’도 다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리’의 사전적 의미는 ‘도리나 이치에 맞지 않거나 정도에서 지나치게 벗어남’이다.
‘그의 사진은’ ‘편력의 역사’이다. 시침과 분침이 한 자리에 일치되어 분별되지 않는 ‘시계의 열두시같이’ ‘아버지’와 화자의 ‘생’은 다르지 않다. 모두 생활고로 인해 비참한 삶을 사는 ‘편력의 역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시간적 배경은 ‘행길에 얼어붙은 유리창들같이’에서 알 수 있듯이 겨울이다. 겨울은 절망적인 상황, 힘든 상황을 함유하고 있는 관습적 상징어이다. 화자의 삶의 상황과 연관이 된다. 이러한 겨울이지만 ‘이 맑고 넓은 아침’이다.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때이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또 하나 나의 팔이 될 수 없는 비참이’다라 한다. ‘팔’이란 도움을 의미한다. ‘나의 팔이 될 수 없’다는 것은 화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오히려 ‘비참’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행길에 얼어붙은 유리창들같이’에서 ‘행길에 얼어붙은 유리창’은 시간적 배경을 알려주지만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집이 아니라 ‘행길’에 있는 ‘유리창’은 상점의 유리창일 것이다. 상점 안의 물건을 밖에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얼어붙은’ 상태이다. 얇은 얼음 또는 성에가 낀 유리창이다. 밖에서 안을 볼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시계의 열두시’는 시침과 분침이 함께 있는 시간이다. 이는 아버지의 비참과 화자의 비참이 일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버지와 아들인 화자가 같은 비참한 삶이 일치하는 ‘편력의 역사’인 것이다. 그런데 ‘열두시’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시간이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지는 경계인 것이다. 이전의 시간과 이후의 시간이 다르게 나누어지는 시간인 것이다.
화자는 이전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재차는 다시 보지 않을 편력의 역사’라 하여 ‘편력의 역사’를 ‘재차’와 ‘다시’의 동의어를 사용하여 ‘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화자는 ‘비참’한 ‘편력의 역사’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을 강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는 화자가 자신의 심정은 그렇지만 실제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등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음은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기에.
마지막 연에 ‘나는 모든 사람을 피하여 / 그의 얼굴을 숨어 보는 버릇이 있소’라 하여 ‘비참’에서, ‘나의 기아’에서, ‘무리(無理)하는 생(生)’에서, ‘편력의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앞의 ‘나는 모오든 사람을 또한 / 나의 처(妻)를 피하여 / 그의 얼굴을 숨어 보는 것이’(2연 8-10행)와 달리 ‘버릇이 있소’라 하여 ‘모오든 사람을 또한 / 나의 처(妻)를 피하여 / 그의 얼굴을 숨어 보는 것이’ 반복적으로 행해져서 ‘버릇’으로 굳어져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비참’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화자의 반복된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20200322일후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