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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김수영 거미

작성자서울|작성시간21.03.19|조회수1,350 목록 댓글 0

김수영 거미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1954. 10.5)

 

이 시는 몸이 탈 정도로 바라는 것이 있었으나 바랄 수도 없어 모든 것이 싫어진다는 내용이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설움에 몸을 태웠지만 이제 바라는 것 마져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그 으스러진 설움을 둘러싼 풍경마저 싫어진다.

 

 

이 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거미’를 어미를 근거로 시간순서로 배열하면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로 정리된다.

화자는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운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에 ‘몸을 태’웠기 때문에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그래서 ‘나는 그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울 수가 없다. 이러한 상황이 ‘싫어진다’. ‘바라는 것이’ 없는 현실이 싫다는 것이다.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결과와 원인을 말하고 있다. 화자는 ‘바라는 것이 있’다. 그래서 화자는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이다. 화자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시에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화자가 ‘바라는 것’을 위해서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고통을 감내할 정도로 매우 간절하게 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설움’은 ‘서럽게 느껴지는 마음’이고 ‘서럽다’는 ‘원통하고 슬프다’(다음 한국어 사전)이다. ‘설움’은 마음이므로 불처럼 실제로 ‘몸을 태’울 수는 없‘으나 ’애간장‘이 끊어질 정도로 ’몸‘에 영향을 준다. 그 결과 피부의 색깔이 검어진다. 이를 ’몸을 태우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현재 화자의 몸은 ’설움‘에 의하여 ’으스러진‘ 상태이다. 그 이유는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까맣게 타버렸‘(3연)기 때문이다.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의 ’-ㄴ다‘는 ’싫어진‘ 마음이 현재 마음의 상태임을 나타낸다.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는 ’설움‘ 뿐만 아니라 ’설움‘이 아닌 ’설움‘을 둘러싼 ’풍경마저 싫어진다‘는 것으로 모든 것이 싫어진다는 의미이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다는 것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조바심을 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결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다 타서 더 이상 탈 수 없게 된 것이다. ’몸‘은 완전히 ’이스러지‘고 타서 바랄 것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설움‘ 뿐만 아니라 ’설움‘을 둘러쌓고 있는 ’설움의 배경‘마저 싫어지는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가 되가는 것이다.

’설움과 입을 맞추‘는 것은 고통스러워도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을 비유로 말한 것이다.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는 ’몸‘의 색이 ’까맣게‘ 변한다. 화자의 몸 상태가 가을 거미처럼 ’설움‘에 의하여 병이 들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화자는 가을에 몸이 까맣게 변한 거미를 보고 자신과 대비하여 시를 쓴 것 같다.

 

화자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 시에서는 나와 있지 않다. 그러므로 화자인 작가의 연보를 참작해서 풀어보면 이 시가 쓰여진 1954년에 ’서울로 돌아온다. 주간 《태평양》에 근무. 신당동에서 다른 가족과 함께 살다가, 피난지에서 아내가 돌아오자 성북동에 분가를 해 나간다‘는 내용을 근거로 삼으면 ’아내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한다.20210309금후0147전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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