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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김수영 푸른 하늘을

작성자서울|작성시간05.08.22|조회수2,519 목록 댓글 0
김수영의 푸른 하늘을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1960. 6. 15> 

   



 이 시는 자유는 이상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고 피의 희생과 고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임을 말한 시이다. 



 화자가 ‘수정되어야 한다’고 말한 ‘어느 시인의 말은’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이다. 이 문장은 ‘노고지리’를 중심으로 둘로 나눌 수 있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관형절과 ‘자유로왔다’는 서술어이다. 화자가 이 둘 중에서 화자가 수정되어야 한다고 하는 말은 ‘제압하는’이거나 ‘자유로왔다’일 것이다. 아니면 둘 다이거나. 이 중에서 화자가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어느 것인지 알아보기로 하자.

 화자는 ‘어느 시인의 말’수정되어야 하는 이유를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라고 하면서 ‘어느 시인의 말’이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없는 ‘사람’의 말이라고 한다. ‘어느 시인’은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봄날 노고지리가 하늘을 날기 위해 치른 이면의 대가는 생각하지 못하고 나는 겉모습만 보고 부러움에 한 말이기 때문에 ‘수정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 말은 ‘노고지리’는 ‘푸른 하늘을 제압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은 하늘을 나는 ‘노고지리’는 ‘무엇을 보고/ 노래한’ 것이지 ‘푸른 하늘을 제압’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제압’이란 ‘위력이나 위엄으로 세력이나 기세 따위를 억눌러서 통제함’이다. 노고지리가 ‘푸른 하늘을 제압’했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독재라는 것이다. 노고지리는 다시 말하면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은 ‘자유’를 쟁취하여 새로운 독재를 하려는 목표로 한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푸른 하늘’로 상징된 자유로운 비행이 가능한 세계를 제압하려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를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어느 시인’의 말은 당연히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노고지리’가 보고 있는 것은 ‘푸른 하늘’이다. 비상이 얼마든지 가능한 ‘푸른 하늘’을 노래하는 것이다. ‘노고지리’는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서 그 사람 중의 한사람인 화자이다. 화자를 ‘어느 시인’과 대립된 시인으로 보면 ‘노래’는 ‘시인의 시’이고 ‘푸른 하늘’은 시인이 꿈꾸고 이루려는 세계를 상징한다. 



 화자는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체험하였다. ‘자유’는 독재에 대한 투쟁이고 이 과정에서 ‘피’를 흘리며 쟁취한 것임을 알았다. 독재를 타도하는 싸움인 ‘혁명’이 ‘왜 고독한 것인가를’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알았다. ‘혁명’은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이다. 사람들은 ‘어느 시인’처럼 겉으로 나타난 현상만 보고 비판하고 부러워한다. 어떤 현상이 있기까지의 과정은 생각하지 않는다. 독재시대에 ‘자유’를 노래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른다. 독재를 타도하고 자유가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얼마만한 희생과 피흘림이 있는지 모른다. 독재 세력의 그 큰 힘에 대항하는 작은 힘이 견뎌야 하는 외로움을 모른다. 나도 혁명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모른다. 다만 일상의 작은 변화에서 오는 소외됨을 통하여 이보다 더 큰 사회적 변화를 꿈꾸는 가운데 오는 외로움의 크기가 얼마나 큰가 상상할 뿐이다. 화자는 독재를 물리는 혁명의 과정에서 ‘피’의 희생보다도 ‘고독’을 뼈져리게 느낀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말한 뒤에 다시 연을 바꿔서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고독한 것’과 ‘고독해야 하는 것’으로 나누어 말하면서 ‘혁명’에 ‘고독’은 뺄래야 뺄 수 없는 필수적인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화자가 ‘어느 시인’의 말 중에서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제압’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에 더하여 화자는 ‘노고지리’를 ‘부러워’하는 ‘어느 시인’의 태도도 수정하고 싶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노고지리’가 푸른 하늘을 나는 과정이 철저한 고독을 이겨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이므로 겉으로 나타난 현상만 보고 ‘제압’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독재적인 성향을 가졌거나 또는 독재적인 사회의 영향을 벋어나지 못한 ‘어느 시인’에게는 진정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노고지리’는 ‘어느 시인’에게는 ‘종다릿과의 새. 몸은 참새보다 조금 크며 붉은 갈색이고 검은색 가로무늬가 있다. 뒷머리의 깃은 길어서 뿔처럼 보인다. 봄에 공중으로 높이 날아오르면서 잘 울며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는 새를 지칭하는 것이고 화자에게는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들을 의미하면서 이 중의 한 사람인 시인인 ‘화자’를 의미한다. 화자가 노고지리를 자유를 누리는 대상으로 상징한 것은 이 새가 봄을 대표하는 생기 때문이다. 봄은 관습적인 상징으로 새벽처럼 새로운 세상, 밝은 세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시는 4.19혁명 두 달 뒤에 쓰여졌다. 그러므로 이 때는 이승만 독재를 물리치고 자유를 얻은 새 시대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 시대를 상징하는 봄을 시간적인 배경으로 하고 노고지리를 대상으로 자유를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 새 시대에 ‘자유를 위하여 비상해 본 적이’ 없으면서 독재적인 잔재를 가지고 있는 ‘어느 시인’의 깊이 없는 말에 반발하여 자유를 얻기 위한 고통과 고독의 과정을 알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시는 푸른 하늘을 나는 노고지리를 보고 푸른 하늘을 제압하며 나는 것으로 보고 부러워한 어느 시인의 말을 부정하면서 자유는 자유를 얻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이 독재세력에 대항하여 자유를 말하고 피를 흘리는 혁명에서 얻는 것이며 그 과정이 몹시 고독함을 말한 시이다. 20050821일 오후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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