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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김수영 기자의 정열

작성자서울|작성시간21.04.23|조회수278 목록 댓글 0

김수영 기자의 정열

 

 

4면의 신문 위에 6호 활자가 몇천 개 박혀 있는지 모르지만 너의 상상에서는 실체의 수십 배는 담겨 있으리라

이 무수한 활자 가운데에

신문기자인 너의 기사도

매일 조금씩은 끼이게 되는데

큰 아름드리나무에 박힌 옹이처럼 너는 네가 한 신문기사를 매일 아침 게시판 위에서 찾아보는 버릇이 너도 모르게 어느덧 생기고 말았다

생각하면 그것은 둥근 옹이같이 어지러웁기만 한 일이지만

거기에는 초점이 없지도 않다

그러나 이 초점을 바라고 보는 것이 아니다

낭만적 위대성을 잊어버린 지 오랜 네가 인류를 위하여 산다는 것도 거짓말에 가까운 것이지만

그래도 누가 읽어줄지 모르는 신문 한구석에 너의 피가 어리어 있는 것이 반가워서 보고 있는 것인가

기사라 하지만 네가 썼다고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가히 무관한 것

그러기에 한결 가벼운 휴식의 마음으로 쓰고 있을 수 있었던 것

 

오랜 피곤도 고통도 인내도 잊어버리고

새 사람 아닌 새 사람이 되어

아무도 모르고 너 혼자만이 아는

네가 쓴 기사 위에

황홀히 너를 찾아보는 아침이여

번개같이 가슴을 울리고 가는 묵은 생명과 새 희망의 무수한 충돌 충돌……

누구의 힘보다 강하다고 믿어 오던

무색(無色)의 생활자가 네가 아니던가

자유여

아니 휴식이여

어려운 휴식이여

부르기 힘든 사람의 이름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너무나 무거운

너의 짐

그리고 일락(逸樂), 안이, 허위……

모두 다 잊어버리고 나와서

태양의 다음가는 자유

자유의 다음가는 게시판

너무나 어려운 휴식이여

눈물이 흘러나올 여유조차 없는

게시판과 너 사이에

오늘의 생활이 있을진대

달관한 신문기자여

생각하지 말아라

<결혼 윤리의 좌절

-행복은 어디에 있나?->

이것이 어제 오후에 써놓은 기사 대목으로

내일 조간분 사회면의 표독한 타이틀이 될 것이라고 해서

네가 이 두 시간의 중간 위에 서 있는 것이라고 해서

어려운 휴식

얻기 어려운 휴식

너의 긴 시간 속에 언제고 내포되어 있는 휴식

그러한 휴식이 찬란한 아침햇빛 비치는 게시판 위에서 떠돌아다니면서

희한한 상상과 무수한 활자들

너에게 눌러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너는 아예 놀라지 말아라

너는 아예 놀라지 말아라

(1956)

 

 

이 시는 기자의 정열이 기사 작성과 기사가 신문에 실리는 시간에도 휴식을 취하지 않고 자신의 기사가 신문의 타이틀이 되는 상상을 하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문의 무수한 활자 가운데에 신문기자인 너의 기사도 매일 조금씩은 끼이게 된다. 매일 아침 너가 쓴 기사를 신문게시판 위에서 찾아보는 버릇이 너도 모르게 어느덧 생기고 말았다. 그 기사에는 초점이 있지만 이 초점을 바라고 보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누가 읽어줄지 모르는 신문 한구석에 너의 피가 어리어 있는 것이 반가워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자의 정열이 없이 쓴 기사라 네가 썼다고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가히 무관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한결 가벼운 휴식의 마음으로 기사를 쓰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자의 정열이 생기자 오랜 피곤도 고통도 인내도 잊어버린 새 사람이 되어 아무도 모르고 너 혼자만이 아는 네가 쓴 기사를 찾아보는 아침이 되면 정열이 없었던 때의 휴식과 너가 쓴 기사가 표독한 타이틀이 되었으면 하는 새 희망이 무수히 충돌을 일으킨다. 너는 누구의 힘보다 강하다고 믿어 오던 다른 사람의 색을 칠할 필요가 없는 무색(無色)의 생활자이다. 그래서 자유를 가졌다. 그러나 회사에 매여 있는 몸이기에 자유를 가졌다고 할 수 없고 자유는 아니고 휴식이다. 그런데 정열을 가진 기자는 휴식을 얻기 힘들다. 너는 회사에 나오기전에는 부르기 힘든 사람의 이름들을 생각한다. 이들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다. 그리고 일락(逸樂), 안이, 허위 등을 생각하다가 아침이 되면 모두 다 잊어버리고 나와서 아침의 태양 아래서 너의 기사를 찾아본다. 눈물이 흘러나올 여유조차 없이 기사를 생각하는 너와 게시판에 걸린 신문 사이에 오늘의 생활이 있다. 어제 오후에 써놓은 기사 대목이 내일 조간분 사회면에 실리는 두 시간의 중간 위에 너는 서 있다. 이 시간 사이에 언제고 내포되어 있는 휴식을 기자의 정열을 가진 너는 취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에 너는 아예 놀라지 말아라. 너의 기사가 사회면의 표독한 타이틀로 기사화 되는 상상과 기사화 될 무수한 활자를 생각하는 너에게 너는 아예 놀라지 말아라. 기자의 정열을 가진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이 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4면의 신문 위에 6호 활자가 몇천 개 박혀 있는지 모르지만 너의 상상에서는 실체의 수십 배는 담겨 있으리라

이 무수한 활자 가운데에

신문기자인 너의 기사도

매일 조금씩은 끼이게 되는데

큰 아름드리나무에 박힌 옹이처럼 너는 네가 한 신문기사를 매일 아침 게시판 위에서 찾아보는 버릇이 너도 모르게 어느덧 생기고 말았다

생각하면 그것은 둥근 옹이같이 어지러웁기만 한 일이지만

거기에는 초점이 없지도 않다

그러나 이 초점을 바라고 보는 것이 아니다

낭만적 위대성을 잊어버린 지 오랜 네가 인류를 위하여 산다는 것도 거짓말에 가까운 것이지만

그래도 누가 읽어줄지 모르는 신문 한구석에 너의 피가 어리어 있는 것이 반가워서 보고 있는 것인가

기사라 하지만 네가 썼다고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가히 무관한 것

그러기에 한결 가벼운 휴식의 마음으로 쓰고 있을 수 있었던 것

 

4면의 신문 위에 6호 활자가 몇천 개 박혀 있는지 모르지만 기자인 너의 상상에서는 실체의 수십 배는 담겨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무수한 활자 가운데에 신문기자인 너의 기사도 매일 조금씩은 끼게 된다. 너는 네가 쓴 신문기사를 매일 아침 게시판 위에서 찾아보는 버릇이 너도 모르게 생겼다. 생각하면 네가 쓴 기사는 둥근 옹이같이 어지럽지만 거기에는 초점이 있다. 그러나 너는 이 초점을 바라고 보는 것이 아니다. 낭만적 위대성을 잊어버린 지 오랜 네가 인류를 위하여 산다는 것도 거짓말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도 누가 읽어줄지 모르는 신문 한구석에 너의 피가 어리어 있는 것이 반가워서 보고 있다. 기사라 하지만 네가 썼다고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가히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한결 가벼운 휴식의 마음으로 쓰고 있을 수 있었다.

이 부분은 화자인 신문기자가 정열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활자화된 기사를 게시판에서 찾아보고 가볍게 휴식을 취하고 있던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 ‘너의 상상에서는 실체의 수십 배는 담겨 있으리라’는 신문에 기사화된 것보다 ‘수십 배’의 기사가 생성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것은 둥근 옹이같이 어지러웁기만 한 일이지만 / 거기에는 초점이 없지도 않다’는 자신의 기사에 대한 자기평가이다. 화자는 ‘낭만적 위대성을 잊어버린 지 오’래 된 상태이다. ‘네가 인류를 위하여 산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오랜 피곤도 고통도 인내도 잊어버리고

새 사람 아닌 새 사람이 되어

아무도 모르고 너 혼자만이 아는

네가 쓴 기사 위에

황홀히 너를 찾아보는 아침이여

번개같이 가슴을 울리고 가는 묵은 생명과 새 희망의 무수한 충돌 충돌……

누구의 힘보다 강하다고 믿어 오던

무색(無色)의 생활자가 네가 아니던가

자유여

아니 휴식이여

어려운 휴식이여

부르기 힘든 사람의 이름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너무나 무거운

너의 짐

그리고 일락(逸樂), 안이, 허위……

모두 다 잊어버리고 나와서

태양의 다음가는 자유

자유의 다음가는 게시판

너무나 어려운 휴식이여

눈물이 흘러나올 여유조차 없는

게시판과 너 사이에

오늘의 생활이 있을진대

달관한 신문기자여

생각하지 말아라

 

너는 이제 오랜 피곤도 고통도 인내도 잊어버리고 정열을 가진 새 사람 아닌 새 사람이 되어

아침이 되면 아무도 모르고 너 혼자만이 아는 네가 쓴 기사 위에 황홀히 너를 찾아본다. 이 순간에 번개같이 가슴을 울리고 가는 묵은 생명과 새 희망의 무수한 충돌 충돌이 생긴다. 너는 누구의 힘보다 강하다고 믿어 오던 무색(無色)의 생활자이다. 누구를 추종하지 않는 너는 자유이다. 아니 휴식이다. 신문사에 매여 있기에 자유가 아니라 휴식이다. 그러나 참으로 얻기 어려운 휴식이다. 아침에 게시판 앞에 오기 전까지는 부르기 힘든 사람의 이름들을 생각한다. 이들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다. 그리고 일락(逸樂), 안이, 허위…… 등을 생각한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모두 다 잊어버리고 나온다. 태양의 다음가는 자유는 얻기 어려운 휴식이다. 이 자유의 다음가는 너의 정열적인 기사가 실린 게시판을 보면 휴식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 눈물이 흘러나올 여유조차 없는 게시판과 너 사이에 너의 오늘의 생활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 달관한 신문기자여. 휴식을 생각하지 말아라.

‘새 사람 아닌 새 사람’은 지금까지 정열이 없는 기자였다가 ‘오랜 피곤도 고통도 인내도 잊어버리고’ 정열을 가진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달라진 것이 없지만 내면은 달라진 ‘신문기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네가 쓴 기사 위에 / 황홀히 너를 찾아보는 아침’은 화자가 ‘아침’에 회사 앞에 와서 자신이 쓴 기사를 보면서 자신의 정열을 찾는 감정이 ‘황홀’하다는 것이다. 이 ‘황홀’한 ‘기사’는 ‘번개같이 가슴을 울리고 가는 묵은 생명과 새 희망의 무수한 충돌 충돌……’을 일으킨다. ‘묵은 생명’은 정열이 없었던 때에 ‘가벼운 휴식의 마음으로’ ‘기사’를 쓰던 때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새 희망’은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편안함을 추구하던 과거의 ‘너’와 ‘정열’을 지닌 ‘새 사람’이 되어 ‘기자의 정열’을 가지고 쓴 기사가 ‘사회면’의 ‘타이틀’이 되는 ‘희망’이 계속해서 ‘무수한 충돌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다. ‘누구의 힘보다 강하다고 믿어 오던 / 무색(無色)의 생활자’이기에 누구도 ‘너’를 억압할 수가 없다. 그래서 ‘너’는 다른 누구의 색깔을 추종해야 할 필요가 없다. ‘무색’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너’는 ‘자유’를 가진 존재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너’는 신문사에서 월급을 받는 신문기자이다. 그렇다면 ‘너’는 진정한 ‘자유’를 가진 존재라고 할 수 없다. ‘너’가 가진 ‘자유’는 ‘휴식이’다. 그런데 ‘너’는 ‘기자의 정열’을 가지고 있어서 ‘휴식’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너’는 ‘참으로’ ‘얻기 어려운 휴식’을 하지 못한다. ‘부르기 힘든 사람의 이름들 / 눈에는 보이지 않는 너무나 무거운 / 너의 짐’은 화자가 아침에 출근하여 ‘게시판’ 앞에 서기 전에 가졌던 것들이다. ‘그리고 일락(逸樂), 안이, 허위……’ 등도 그러하다. 이것들을 아침이면 ‘모두 다 잊어버리고 나와서’ ‘게시판’ 앞에 서기에 ‘태양’을 가장 높은 가치로 여겨 ‘태양의 다음가는 자유 / 자유의 다음가는 게시판’이라 한 것이다. 여기서의 ‘자유’는 ‘휴식’을 말한다. 이 ‘휴식’을 화자는 ‘게시판’에 실린 자신이 쓴 기사보다 더 가치 있게 생각하지만 ‘기자의 정열’을 가진 화자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휴식이’다. 그래서 화자는 ‘눈물이 흘러나올 여유조차 없’다. 오직 ‘게시판과 너 사이에 / 오늘의 생활이 있을’ 뿐이다. ‘너무나 어려운 휴식’에 ‘달관한 신문기자여’ ‘휴식’을 ‘생각하지 말아라’고 하는 것이다.

 

 

<결혼 윤리의 좌절

-행복은 어디에 있나?->

이것이 어제 오후에 써놓은 기사 대목으로

내일 조간분 사회면의 표독한 타이틀이 될 것이라고 해서

네가 이 두 시간의 중간 위에 서 있는 것이라고 해서

어려운 휴식

얻기 어려운 휴식

너의 긴 시간 속에 언제고 내포되어 있는 휴식

그러한 휴식이 찬란한 아침햇빛 비치는 게시판 위에서 떠돌아다니면서

희한한 상상과 무수한 활자들

너에게 눌러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너는 아예 놀라지 말아라

너는 아예 놀라지 말아라

 

<결혼 윤리의 좌절 -행복은 어디에 있나?-> 이것이 어제 오후에 써놓은 기사 대목으로 내일 조간분 사회면의 표독한 타이틀이 될 것이라고 해서, 네가 이 두 시간의 중간 위에 서 있는 것이라고 해서 휴식은 얻기 어렵다. 어제 오후부터 내일 아침까지인 긴 시간 속에 언제고 내포되어 있는 휴식이 있다. 내포되어 있는 휴식이 찬란한 아침 햇빛에 비치는 게시판 위에서 떠돌아다니면서 희한한 상상과 무수한 활자들을 너에게 눌러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너는 아예 놀라지 말아라. 그것은 기자의 정열이 있어야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아예 놀라지 말아라.

‘<결혼 윤리의 좌절 / -행복은 어디에 있나?->’는 화자가 어제 오후에 써놓은 기사 대목이다. ‘결혼’은 ‘행복’을 위해 한 것으로 ‘결혼 윤리’가 무너져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기사 대목’은 ‘내일 조간분 사회면’에 실릴 내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실린다고 해도 ‘표독한 타이틀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화자의 기대를 뛰어넘는 일이 발생한다 해도 ‘놀라지 말아라’고 하는 것이다. ‘이 두 시간의 중간 위’는 ‘어제의 오후’와 ‘내일 조간분’의 ‘중간’인 오늘 아침에 ‘게시판’을 보고 있는 시간을 말한다. ‘너의 긴 시간’은 ‘어제의 오후’와 ‘내일 조간분’이 ‘게시판’에 게시되는 시간을 말한다. ‘언제고 내포되어 있는 휴식’은 화자가 이 시간에는 화자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그러나 ‘기자의 정열’을 가지고 있는 화자는 이 ‘내포’된 ‘휴식’을 취하기 어렵다. 이렇게 ‘얻기’ ‘어려운’ ‘휴식이 찬란한 아침햇빛 비치는 게시판 위에서 떠돌아다니면서 / 희한한 상상과 무수한 활자들’로 채워진다. ‘정열’을 가진 ‘기자’는 겉으로 ‘휴식’으로 보이는 시간에도 ‘휴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희한한 상상’은 자신이 쓴 기사가 ‘내일 조간분 사회면의 표독한 타이틀이’이 되는 상상을 하는 것을 말한다. ‘무수한 활자들’은 신문에 인쇄되는 것을 말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 너는 아예 놀라지 말아라’는 ‘정열’을 가진 ‘기자’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당연한 것이므로 ‘너는 아예 놀라지 말아라’라고 하는 것이다.20210423금전0802전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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