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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김수영 눈

작성자서울|작성시간21.04.29|조회수3,064 목록 댓글 0

김수영 눈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1956)

 

 

이 시는 독재 정권이 사라지는 시기에 젊은 시인을 감시하던 독재 정권의 하수인인 눈에게 보라고 외치거나 모욕적인 행동을 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독재 정권이 사라지는 데도 젊은 시인의 마당 위에 떨어진 정권의 하수인인 눈은 살아 있다. 그러므로 젊은 시인이여, 하수인에게 대놓고 보라고 마음 놓고 비판을 하자.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을 가진 독재 정권을 위하여 새로운 세상이 오고 있는데도 하수인인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젊은 시인이여 하수인을 바라보며 기침을 하자. 기침을 못하겠으면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이 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젊은 시인이여, 눈 위에 대고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에서 ‘눈’은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이다. ‘눈’이 ‘떨어진’ 곳이 구체적으로 ‘마당 위’로 제시된다. 그렇다면 ‘마당’ 밖에 ‘떨어진 눈’은 어떤 상태일까? 화자는 ‘젊은 시인’에게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고 한다. ‘눈’에 아주 가까이 가서 ‘기침을 하자’고 한다. 거기에다가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 기침을 하자’고 한다. ‘기침’은 주로 감기에 걸렸을 때 나오는 것으로 기도의 점막이 자극을 받아 갑자기 숨소리를 터트려 내는 일로 목구멍에 걸린 가래를 떼기 위하여 일부러 숨을 터트려 나오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기침’을 상대방인 ‘눈 위에 대고’ ‘보라고’ 하는 것은 ‘눈’에게는 매우 불쾌한 일인 것이다. ‘눈’이 그것도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젊은 시인이여 눈을 바라보며 기침을 하자. 기침을 못하면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는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눈’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는 ‘젊은 시인’인가? 아니면 다른 인물인가? 이를 알기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와 ‘젊은 시인’에게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 마음껏 뱉자’는 화자의 말을 유의 깊게 봐야한다. ‘젊은 시인’은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를 지니고 있다. ‘눈’이 순수함을 나타내는 시어로 보고 ‘가래’를 뱉어서 ‘젊은 시인’이 순수함을 회복한다는 기존의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젊은 시인’이 굳이 ‘새벽이 지’난 시간에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을 이유가 없다. ‘눈’은 밤에도 살아 있고 ‘새벽이 지나’도 살아 있고 아침에도 살아 있고 시간과 때를 가리지 않고 살아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지나도록 살아 있다’에서 ‘-도록’은 ‘새벽이 지’나면 죽어야하는데 예상 외로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발언이 ‘눈’을 순수함이나 다른 긍정적인 의미로 보기 어렵게 한다. 또한 ‘젊은 시인’의 집의 마당에 ‘떨어진 눈’인데 ‘마당’은 남의 눈도 의식할 필요가 없는 장소이므로 ‘밤’에도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래라도’에서 ‘-라도’는 ‘기침을 하’지 못한다면 ‘가래라도’ ‘뱉’으라고 하는 것이다. ‘가래’를 ‘뱉’는 것보다 ‘기침’을 하는 것을 먼저 권하는 것이다. ‘눈을 바라보며’ ‘가래’를 ‘뱉’는 것은 화자가 바라보는 대상인 ‘눈’을 모욕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젊은 시인’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는 ‘젊은 시인’이 아닌 것이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는 부정적 대상인 ‘눈’이 ‘위하’는 존재로 이 시에서는 그 정체를 알려주지 않는다. ‘죽음을 잊어버린’은 자신이 죽는 존재이면서도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존재이다. ‘새벽이 지나’면 죽어야할 존재인 ‘눈’이,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을 위하여 죽지 않고 살아있는 ‘눈’의 정체는 밤과 ‘새벽’의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아야 풀린다. 밤은 암울한, 절망적인 상황을 말하고 ‘새벽’은 이러한 암울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이 이루어진 상황으로 바뀌는 시간이다. 이를 당시 사회 상황으로 보면 이승만 독재 정권의 선거에서 민주당이 부통령 자리에 당선되는 사건이 일어난 때이다. 그래서 화자는 독재 정권이 타도될 때가 왔고 이승만 독재 정권을 위하여 ‘살아 있’는 ‘눈’이 ‘마당 위에 떨어’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눈’은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을 위하여 ‘젊은 시인’의 집안 ‘마당’까지 들어와서 ‘젊은 시인’을 감시하던 독재 정권의 하수인인 ‘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재편집20210429목전1252전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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