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채소밭가에서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강바람은 소리도 고웁다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달리아가 움직이지 않게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무성하는 채소밭에 가에서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돌아오는 채소밭 가에서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바람이 너를 마시기 전에
(1957)
이 시는 화자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흔들리지 않게 기운을 달라는 염원을 담은 시이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침 강바람은 소리도 고웁다.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달리아가 움직이지 않게, 무성하는 채소밭에 가에서, 돌아오는 채소밭 가에서, 바람이 너를 마시기 전에, 아침 이슬이여.
이 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강바람은 소리도 고웁다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달리아가 움직이지 않게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무성하는 채소밭에 가에서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돌아오는 채소밭 가에서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바람이 너를 마시기 전에
화자는 누가 무엇에게 ‘기운을 주라’고 반복적이고 주술적으로 말하는 것이까? ‘바람이 너를 마시기 전에’라 하는 것을 보면 누구에 해당하는 것은 ‘너’이다. 이 시에서 나오는 사물은 3개이다. ‘강바람’, ‘달리아’, ‘채소’이다. ‘바람이 너를 마시기 전에’서 ‘바람’은 ‘강바람’일 가능성이 높음으로 제외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채소’는 ‘무성하는 채소밭’이라하여 ‘무성하고 있는 중임으로 ’기운을 주라‘는 대상이라고 하기 어렵다. ’달리아‘는 ’움직이기 않게‘ 해야 한다. ’달리아‘가 ’(강)바람‘에 ’움직이지 않게 /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해당하는 것은 ’달리아‘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누구에 해당하는 ’너‘는 누구일까? ’무성하는 채소밭에 가에서‘ ’돌아오는 채소밭 가에서‘ 말하는 이는 화자로 보인다. 화자는 ’너‘에게 말하고 있는데 ’너‘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구절이 없다. 단지 ’바람이 너를 마시기 전에‘에서 ’바람이‘ ’마시기 전에‘가 ’너‘를 추측할 수 있는 단서이다. ’마시기‘는 ’너‘가 액체임을 말하고 있다. 이 시에서 하루의 시간적 배경이 나타지 않으나 ’강바람은 소리도 고웁다’고 하는 것을 보면 아침일 것으로 생각한다. ‘무성하는 채소밭’이므로 봄은 지난 때로 짐작되고 ‘강바람’을 ‘고웁다’라고 말할 때는 새벽이나 아침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마실 수 있는 액체인 ‘너’는 아침 이슬이 아닐까 한다. ‘달리아’와 ‘채소’를 적시며 매달린 아침 이슬에게 ‘달리아’에게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고 말하는 것이다. ‘달리아’는 ‘채소’와 다르다. ‘채소’는 생활에 필요한 식물이다. 먹을 수 있고 팔아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이다. ‘달리아’는 꽃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다. 먹을 수 없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달리아’를 ‘채소밭가’에 심지 않는다. 그렇다면 ‘달리아’를 비유적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채소’는 생활을 ‘달리아’는 화자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 화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비유하고 있는 ‘달리아’가 흔들리지 않게 아침 이슬에게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고 반복해서 주술적으로 부탁하는 것이다. 아마 화자가 추구하는 ‘달리아’는 시의 정신이 아닐까 한다.20210508화전0810전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