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영교일(靈交日)
나는 젊은 사나이의 그 눈초리를 보았다
흔들리는 자동차 속에서 창밖의 풍경이 흔들리듯
그의 가장 깊은 영혼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바람도 불지 않는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듯 나의 마음에서 수
없이 떨어져내리는 휴식의 열매
뒷걸음질치는 것은 분격(憤激)인가 조소인가 회한인가
무수한 궤도여
위안이 되지 않는 시를 쓰는 시인을 건져주기 전에
신이여
그 사나이의 눈초리를 보셨나요
잊어버려야 할 그 눈초리를
굵은 밧줄 밑에 뒹구는
구렁이가 악몽이 될 수 있겠나요
무수한 공허의 밑에 살찌는 공허보다
더 무서운 악몽이 있나요
시내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셨나요
그것보다도 흔적이 더 없는 내어버린 자아도
하하! 우주의 비밀을
아니
비밀은 비밀을 먹는 것인가요
하하하……
(1957.11)
이 시는 영교를 통하여 화자가 흔들리는 영혼을 위로하지 못하는 이유가 자아를 내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젊은 사나이의 그 눈초리에서 그의 가장 깊은 영혼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나의 마음에서 수없이 떨어져 내리는 휴식을 피하여 뒷걸음질치는 이유가 분격(憤激)인가 조소인가 회한인가 알 수 없다. 무수한 궤도의 삶을 생각한다. 위안이 되지 않는 시를 쓰는 시인을 건져주기 전에 젊은 사나이를 신이 구원해 주기를 원한다. 굵은 밧줄 밑에 뒹구는 구렁이로 인하여 놀란 것이 악몽이 된다. 시인에게는 내어버린 자아가 흔적이 없어져서 생기는 무수한 공허가 공허를 키우는 것이 가장 무서운 악몽이다. 영교로 인하여 위안이 되지 않는 시를 쓰는 원인을 알게 되었다. 영교를 하게 하는 우주의 비밀은 비밀은 비밀을 먹는 것이기에 알 수 없는 것인가 생각하면 웃는다. 하하하…….
이 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목 ‘영교일(靈交日)’은 화자가 만든 단어이다. 풀이하면 영혼이 교류하는 날 또는 하는 날이다. 화자는 ‘젊은 사나이의’ ‘흔들리는 영혼’과 교류한 것을 쓴 것이다. ‘젊은 사나이’는 화자와 ‘영교’한 것은 아닌 것 같다. 화자만 ‘젊은 사나이’의 ‘영혼’을 본 것으로 보인다.
나는 젊은 사나이의 그 눈초리를 보았다
흔들리는 자동차 속에서 창밖의 풍경이 흔들리듯
그의 가장 깊은 영혼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바람도 불지 않는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듯 나의 마음에서 수
없이 떨어져내리는 휴식의 열매
뒷걸음질치는 것은 분격(憤激)인가 조소인가 회한인가
무수한 궤도여
나는 흔들리는 자동차 속에서 창밖의 풍경이 흔들리듯 젊은 사나이의 그 눈초리를 통하여 그의 가장 깊은 영혼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바람도 불지 않는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듯 나의 마음에서 휴식의 열매가 수없이 떨어져내린다. 나는 휴식의 열매에서 뒷걸음질친다. 이러한 행동은 휴식에 대한 분격(憤激)인가 조소인가 회한인가. 명확하지 않다. 살아온 무수한 궤도를 생각하는 것이다.
‘젊은 사나이’는 ‘그의 가장 깊은 영혼이 흔들’린다. 화자는 그것을 ‘그의 눈초리’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화자의 영혼이 ‘젊은 사나이’의 ‘영혼’과 교류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는 ‘우주의 비밀’(3연 7행)이다. ‘흔들리는 자동차 속에서 창밖의 풍경이 흔들리듯’은 ‘젊은 사나이’가 ‘자동차’가 ‘흔들리는’ 것을 모르고 ‘창밖의 풍경이 흔들’린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의 ‘깊은 영혼이 흔들리’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원인을 밖에서 찾는 ‘눈초리’인 것이다. ‘바람도 불지 않는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듯’은 ‘나무’의 ‘열매가 떨어지’는 원인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나의 마음에서 수없이 떨어져내리는 휴식의 열매’가 왜 떨어지는지 원인을 모른다. 시인은 ‘수없이 떨어져내리는 휴식의 열매’를 갖지 않고 ‘뒷걸음질’을 친다. 그 이유를 화자는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이유가 ‘분격(憤激)인가 조소인가 회한인가’ 생각할 뿐이다. 화자가 살아온 ‘무수한 궤도’를 생각한다.
위안이 되지 않는 시를 쓰는 시인을 건져주기 전에
신이여
그 사나이의 눈초리를 보셨나요
잊어버려야 할 그 눈초리를
신이여, 위안이 되지 않는 시를 쓰는 시인을 건져주기 전에 그 사나이의 잊어버려야 할 눈초리를 보셨나요.
‘위안이 되지 않는 시를 쓰는 시인’은 화자를 말한다. 화자는 ‘깊은 영혼이 흔들리는’ ‘젊은 사나이’에게 ‘위안’을 주는 시를 쓰지 못한다. ‘시인’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신’에게 ‘건져’져야할 존재이다. 그래서 ‘그 사나이의 눈초리를’ ‘잊어버려야 할 그 눈초리를’ 해결할 수가 없어 ‘신’에게 자신보다 먼저 ‘젊은 사나이’의 ‘흔들리는’ ‘깊은 영혼’을 ‘건져주’기를 부탁한다.
굵은 밧줄 밑에 뒹구는
구렁이가 악몽이 될 수 있겠나요
무수한 공허의 밑에 살찌는 공허보다
더 무서운 악몽이 있나요
시내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셨나요
그것보다도 흔적이 더 없는 내어버린 자아도
하하! 우주의 비밀을
아니
비밀은 비밀을 먹는 것인가요
하하하……
굵은 밧줄 밑에 뒹구는 구렁이가 악몽이 될 수 있고 무수한 공허의 밑에 살찌는 공허보다 더 무서운 악몽은 없다. 시내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것보다도 흔적이 더 없는 내어버린 자아도 공허를 준다. 하하! 영교하는 우주의 비밀을 알 수 없다. 아니 비밀은 비밀을 먹는 것이기에 시인은 알 수 없는 것인가. 하하하…….
화자는 ‘신’에게 묻는다, ‘굵은 밧줄 밑에 뒹구는 / 구렁이’는 ‘굵은 밧줄’가 비슷하여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방심하고 있다가 ‘구렁이’가 발견되면 몹시 놀라 정신적 충격을 받아 ‘악몽이’ 되어 ‘악몽’을 꾼다. ‘무수한 공허의 밑에 살찌는 공허보다 / 더 무서운 악몽’은 없다. ‘무수한 공허’는 ‘흔적이 더 없는 내어버린 자아’로 인한 것이다. ‘자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에 ‘공허’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살찌는 공허’가 된다. 점점 커지는 것이다. ‘자아’없는 삶은 ‘시인’에게는 가장 큰 ‘악몽’이다. ‘자아’가 없기에 화자는 ‘위안이 되지 않는 시를 쓰’는 것이고 ‘신’에게 ‘건져’져야할 존재인 것이다. ‘시내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면 ‘빗방울’의 모습을 잃고 ‘시내’ 속으로 사라진다. ‘시내’가 ‘먹’어 사라진다. 이처럼 ‘내어버린 자아’도 ‘흔적이’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화자는 ‘젊은 사나이’와 ‘영교’를 통하여 그의 ‘가장 깊은 영혼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자신의 시가 ‘젊은 사나이’에게 ‘위안이 되지 않는 시를 쓰는 시인’임을 자각하게 되고 그 원인이 자신의 ‘내어버린 자아’가 ‘흔적이’ 없기 때문임을 알게 된다. ‘영교’를 하게 된 ‘우주의 비밀’은 알 수 없다. 다만 ‘빗방울’을 ‘시내’가 ‘먹’어 버리듯이 ‘아니 / 비밀은 비밀을 먹는 것’이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인가 생각하는 것이다. ‘하하하……’는 어떤 의미의 웃음인지 알 수 없다.2021화후0403전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