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의 풀잎 단장(斷章)
무너진 성터 아래 오랜 세월을 풍설(風雪)에 깎여 온 바위가 있다.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 가는 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노라.
아 우리들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여기 태어나
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 나직히 웃으며 얘기하노니
때의 흐름이 조용히 물결치는 곳에 그윽히 피어오르는 한 떨기 영혼이여.
<풀잎단장, 창조사, 1952>
<풀잎 단장(斷章)>은 시 제목이 묘하다. ‘단장(斷章)’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렵다. 단장의 사전적 의미는 ‘단장12(斷章)[단ː-] ꃃ①한 체계로 묶지 아니하고 몇 줄씩의 산문체로 토막을 지어 적은 글’이다. 이러한 사전적 의미로는 이 시의 제목에 쓰인 ‘단장(斷章)’의 의미를 밝히기 어렵다. 결국 이 단어의 의미는 시 자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시를 자세히 살펴보면 4연으로 되어 있는데 1연의 ‘바위’와 2,3,4연의 ‘풀잎’이 대(對)를 이루고 있다. ‘오랜 세월을 풍설(風雪)에 깎여 온 바위’는 2,3,4연과 연관성이 없이 보인다. 배경으로 제시된 듯하다. 그런데 1연을 단지 배경의 제시로 보면 1연에서 ‘바위’가 나올 이유가 없다, 시에서 불필요한 부분이다. 시인이 이러한 사실을 몰랐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시인은 ‘오랜 세월을 풍설(風雪)에 깎여’ 오면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위’와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대비하려 한 것이다. 그이를 대비하려면 ‘바위’를 형상화한 부분과 ‘풀잎’을 형상화한 부분이 비슷한 크기가 되어야 한다. ‘풀잎’ 부분이 세 연으로 형상화 되어 있듯이 ‘바위’ 부분도 세 연으로 형상화 되어야 한다. 그런데 ‘바위’ 부분은 한 연으로 형상화 되어 있다. 그리고 화자와의 관계도 ‘풀잎’과 달리 제시 되어 있지 않다.
시인은 자신이 제목에서 제시한 그대로 ‘풀잎’에 대하여 형상화하려 하면서 ‘단장’이라 한 것은 처음 시를 쓸 때는 ‘바위’와 ‘풀잎’을 대비하려 했으나 의도한 형상화에 실패하고 ‘바위’에 대한 형상화는 말 그대로 ‘장(章)’을 ‘단(斷)’했다는 ‘단장(斷章)’을 제목에 붙임으로서 ‘형상화’하지 못했음을 나타낸 것으로 생각된다.
‘무너진 성터’는 단순한 배경일 수도 있으나 역사적 접근을 하면 ‘무너진 나라’로 또는 이 시집이 나온 때가 전쟁 중이었으므로 ‘무너진 터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아무런 단서가 없으므로 ‘무너진 터전’으로 보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가 ‘고달픈 얼굴’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달픈 시대 상황’을 의미한다고 할 수는 있다. 이런 상황 ‘아래 오랜 세월을 풍설(風雪)에 깎여 온 바위가 있다’. ‘풍설’을 삶의 과정에서 오는 외부적 시련과 고난이라 한다면 ‘풍설’에게 ‘오랜 세월을’ ‘깎여’ 오면서 굳건히 흔들리지 않고 있는 ‘바위’는 지사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화자는 ‘바위’를 바라보고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 가는 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 본다. 조찰이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조찰1(照察)[조ː-] ꃃ사정이나 형편 따위를 비추어 보아 잘잘못을 살핌.
조찰2(嘲哳) ꃃ악기 소리가 번거롭고 자질구레함.
조찰3(澡擦) ꃃ〖가톨릭〗 죄를 씻고 닦음.
사전적 의미에서는 이 시의 상황에 적합한 의미가 없다. ‘바람’이 ‘풀잎’을 ‘조찰히’ ‘씻기’고 있다. 따라서 ‘풀잎’을 씻는 ‘바람’이 시에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느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화자는 ‘풀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린다고 말한다. 화자와 ‘풀잎’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몸이 흔드리는 것이 아니라 ‘몸가짐’이 흔들린다고 한다. ‘몸-가짐’은 ‘ꃃ몸의 움직임. 또는 몸을 거두는 일’이다. ‘몸의 움직임’이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린다는 것은 실제로는 있기 어려운 일이다. 또한 ‘풀잎’과 화자가 똑같이 ‘고달픈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마음의 흔들림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위에서 논한 ‘조찰히’의 의미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화자는 ‘풀잎’과 자신을 ‘우리들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여기고 있다. ‘풀잎’과의 일체감,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둘은 ‘여기 태어나/ 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 나직히 웃으며 얘기’한다. 정신적 교감이다. 둘 이 서 있는 언덕은 ‘때의 흐름이 조용히 물결치는 곳’이다. 서로가 둘의 만남과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며 정신적인 대화를 나누는 기쁨의 시간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이러한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그윽히 피어오르는 한 떨기 영혼이’ 생성되는 것이다.
‘한 떨기 영혼’에서 ‘떨기’는 ‘ꃃ①식물의 한 뿌리에서 여러 개의 줄기가 나와 더부룩하게 된 무더기. ②『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 무더기가 된 꽃이나 풀 따위를 세는 단위’이다. ‘떨기’는 식물에 쓰이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한 떨기 영혼’은 문법에 어긋난다. ‘한 떨기 영혼’을 문법에 맞게 바로 잡으면 ‘한 떨기 꽃’이 될 것이다. ‘풀잎’은 화자와의 정신적인 교감의 과정을 거쳐서 ‘고달픈’ 삶 속에서 그윽히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대신에 ‘영혼’을 쓴 것은 화자가 ‘풀잎’을 식물이 아닌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고 ‘풀잎’ 뿐만 아니라 화자 또한 ‘고달픈’ 삶에서 ‘풀잎’과의 교감을 통하여 ‘영혼’의 아름다움을 ‘그윽히’ 피우기 때문이다. 이러한 둘의 고달픈 삶을 승화시킴을 한 어구에 담아서 ‘한 떨기 영혼’으로 압축시킨 것이다.
<풀잎 단장>은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화자와 ‘풀잎’이 만나 서로 영적교류를 이루므로 삶의 고달픔을 극복하고 영혼의 성숙을 이룬다는 내용의 시이다.
2004. 07.08. 오후 3:46
무너진 성터 아래 오랜 세월을 풍설(風雪)에 깎여 온 바위가 있다.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 가는 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노라.
아 우리들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여기 태어나
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 나직히 웃으며 얘기하노니
때의 흐름이 조용히 물결치는 곳에 그윽히 피어오르는 한 떨기 영혼이여.
<풀잎단장, 창조사, 1952>
<풀잎 단장(斷章)>은 시 제목이 묘하다. ‘단장(斷章)’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렵다. 단장의 사전적 의미는 ‘단장12(斷章)[단ː-] ꃃ①한 체계로 묶지 아니하고 몇 줄씩의 산문체로 토막을 지어 적은 글’이다. 이러한 사전적 의미로는 이 시의 제목에 쓰인 ‘단장(斷章)’의 의미를 밝히기 어렵다. 결국 이 단어의 의미는 시 자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시를 자세히 살펴보면 4연으로 되어 있는데 1연의 ‘바위’와 2,3,4연의 ‘풀잎’이 대(對)를 이루고 있다. ‘오랜 세월을 풍설(風雪)에 깎여 온 바위’는 2,3,4연과 연관성이 없이 보인다. 배경으로 제시된 듯하다. 그런데 1연을 단지 배경의 제시로 보면 1연에서 ‘바위’가 나올 이유가 없다, 시에서 불필요한 부분이다. 시인이 이러한 사실을 몰랐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시인은 ‘오랜 세월을 풍설(風雪)에 깎여’ 오면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위’와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대비하려 한 것이다. 그이를 대비하려면 ‘바위’를 형상화한 부분과 ‘풀잎’을 형상화한 부분이 비슷한 크기가 되어야 한다. ‘풀잎’ 부분이 세 연으로 형상화 되어 있듯이 ‘바위’ 부분도 세 연으로 형상화 되어야 한다. 그런데 ‘바위’ 부분은 한 연으로 형상화 되어 있다. 그리고 화자와의 관계도 ‘풀잎’과 달리 제시 되어 있지 않다.
시인은 자신이 제목에서 제시한 그대로 ‘풀잎’에 대하여 형상화하려 하면서 ‘단장’이라 한 것은 처음 시를 쓸 때는 ‘바위’와 ‘풀잎’을 대비하려 했으나 의도한 형상화에 실패하고 ‘바위’에 대한 형상화는 말 그대로 ‘장(章)’을 ‘단(斷)’했다는 ‘단장(斷章)’을 제목에 붙임으로서 ‘형상화’하지 못했음을 나타낸 것으로 생각된다.
‘무너진 성터’는 단순한 배경일 수도 있으나 역사적 접근을 하면 ‘무너진 나라’로 또는 이 시집이 나온 때가 전쟁 중이었으므로 ‘무너진 터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아무런 단서가 없으므로 ‘무너진 터전’으로 보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가 ‘고달픈 얼굴’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달픈 시대 상황’을 의미한다고 할 수는 있다. 이런 상황 ‘아래 오랜 세월을 풍설(風雪)에 깎여 온 바위가 있다’. ‘풍설’을 삶의 과정에서 오는 외부적 시련과 고난이라 한다면 ‘풍설’에게 ‘오랜 세월을’ ‘깎여’ 오면서 굳건히 흔들리지 않고 있는 ‘바위’는 지사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화자는 ‘바위’를 바라보고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 가는 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 본다. 조찰이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조찰1(照察)[조ː-] ꃃ사정이나 형편 따위를 비추어 보아 잘잘못을 살핌.
조찰2(嘲哳) ꃃ악기 소리가 번거롭고 자질구레함.
조찰3(澡擦) ꃃ〖가톨릭〗 죄를 씻고 닦음.
사전적 의미에서는 이 시의 상황에 적합한 의미가 없다. ‘바람’이 ‘풀잎’을 ‘조찰히’ ‘씻기’고 있다. 따라서 ‘풀잎’을 씻는 ‘바람’이 시에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느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화자는 ‘풀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린다고 말한다. 화자와 ‘풀잎’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몸이 흔드리는 것이 아니라 ‘몸가짐’이 흔들린다고 한다. ‘몸-가짐’은 ‘ꃃ몸의 움직임. 또는 몸을 거두는 일’이다. ‘몸의 움직임’이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린다는 것은 실제로는 있기 어려운 일이다. 또한 ‘풀잎’과 화자가 똑같이 ‘고달픈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마음의 흔들림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위에서 논한 ‘조찰히’의 의미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화자는 ‘풀잎’과 자신을 ‘우리들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여기고 있다. ‘풀잎’과의 일체감,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둘은 ‘여기 태어나/ 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 나직히 웃으며 얘기’한다. 정신적 교감이다. 둘 이 서 있는 언덕은 ‘때의 흐름이 조용히 물결치는 곳’이다. 서로가 둘의 만남과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며 정신적인 대화를 나누는 기쁨의 시간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이러한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그윽히 피어오르는 한 떨기 영혼이’ 생성되는 것이다.
‘한 떨기 영혼’에서 ‘떨기’는 ‘ꃃ①식물의 한 뿌리에서 여러 개의 줄기가 나와 더부룩하게 된 무더기. ②『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 무더기가 된 꽃이나 풀 따위를 세는 단위’이다. ‘떨기’는 식물에 쓰이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한 떨기 영혼’은 문법에 어긋난다. ‘한 떨기 영혼’을 문법에 맞게 바로 잡으면 ‘한 떨기 꽃’이 될 것이다. ‘풀잎’은 화자와의 정신적인 교감의 과정을 거쳐서 ‘고달픈’ 삶 속에서 그윽히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대신에 ‘영혼’을 쓴 것은 화자가 ‘풀잎’을 식물이 아닌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고 ‘풀잎’ 뿐만 아니라 화자 또한 ‘고달픈’ 삶에서 ‘풀잎’과의 교감을 통하여 ‘영혼’의 아름다움을 ‘그윽히’ 피우기 때문이다. 이러한 둘의 고달픈 삶을 승화시킴을 한 어구에 담아서 ‘한 떨기 영혼’으로 압축시킨 것이다.
<풀잎 단장>은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화자와 ‘풀잎’이 만나 서로 영적교류를 이루므로 삶의 고달픔을 극복하고 영혼의 성숙을 이룬다는 내용의 시이다.
2004. 07.08. 오후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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