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권 지리산 뻐꾹새
여러 산 봉우리에 여러 마리의 뻐꾸기가
울음 울어
떼로 울음 울어
석 석 삼년도 봄을 더 넘겨서야
나는 길 뜬 설움에 맛이 들고
그것이 실상은 한 마리의 뻐꾹새임을
알아냈다.
지리산하
한 봉우리에 숨은 실제의 뻐꾹새가
한 울음을 토해 내면
뒷산 봉우리가 받아 넘기고
또 뒷산 봉우리가 받아 넘기고
그래서 여러 마리의 뻐꾹새로 울음 우는 것을
알았다.
지리산중
저 연연한 산봉우리들이 다 울고나서
오래 남은 추스림 끝에
비로소 한 소리 없는 강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섬진강 섬진강
그 힘센 물줄기가
하동쪽 남해를 흘러들어
남해군도의 여러 작은 섬을 밀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봄 하룻날 그 눈물 다 슬리어서
지리산 하에서 울던 한 마리 뻐꾹새 울음이
이승의 서러운 맨 마지막 빛깔로 남아
이 세석 철쭉꽃밭을 다 태우는 것을 보았다.
이 시는 화자가 쓴 시의 근원적인 힘과 자신의 시가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내용이다.
이 시는 자신의 시의 역사를 지리산과 여기서 발원을 하여 섬진강이 되고 하동을 지나 남해에 이르는 과정으로 비유하여 쓴 것이다. 이 시를 바르게 해석하려면 제목인 ‘지리산 뻐꾸기’의 원관념을 알아야한다. 그런데 이 시에서 ‘지리산 뻐꾸기’는 개인적인 상징임에도 불구하고 원관념이 제시 되어 있지 않다. 그렇지만 내용의 흐름과 관습적 상징인 ‘강’과 ‘섬’의 원관념을 염두에 두고 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지리산 뻐꾸기’의 원관념이 화자인 시인 자신을 의미하고 ‘울음’은 시인이 쓴 시이고 ‘설움’은 시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시의 근원적인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시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리산 아래서 살던 화자가 자신이 사는 곳과 인접한 곳에서 사는 여러 사람들이 모두 서럽게 울며 사는 것을 보았는데 27살이 되고 봄을 지나서 화자는 그 ‘서움’을 알고 좋아하게 되었고 여러 사람들의 설움이라 생각했던 것이 모두 화자의 관념이었고 실제는 자신의 설움이 투영된 것임을 깨달았다. 자신의 설움을 토해내면 ‘뒷산 봉우리가 받아 넘기고 / 또 뒷산 봉우리가 받아’ 메아리로 울려 여러 사람들이 떼로 설움을 토해내는 것처럼 들린다는 것을 알았다. 지리산중에서 자신의 설움이 모두 토해지고 울려퍼진 다음에 오랜 시간에 걸처 설음의 감정을 추슬러 비로소 시로 표현되어 시인으로서 삶이 열렸다. ‘샘물’이 ‘섬진강’이 되듯이 시간을 거쳐 세상에 퍼져 마치 ‘섬진강 섬진강 / 그 힘센 물줄기가 / 하동쪽 남해를 흘러들어 /남해군도의 여러 작은 섬을 밀어 올리’ 듯이는 화자의 시가 외로운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화자의 시와 시에 대한 자세는 죽는 날에도 그 빛깔을 잃지 않고 지리산 세석평전에 핀 불타는 듯한 철쭉꽃밭처럼 남게 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시를 자세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여러 산 봉우리에 여러 마리의 뻐꾸기가 / 울음 울어 / 떼로 울음 울어 / 석 석 삼년도 봄을 더 넘겨서야 / 나는 길 뜬 설움에 맛이 들고 / 그것이 실상은 한 마리의 뻐꾹새임을 / 알아냈다’는 화자가 자신의 마음속에서 설움을 인식하고 그 근원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다.
‘여러 산 봉우리’는 27살까지 지리산 자락에 살고 있는 화자가 사는 삶의 반경을 말하고 있다. ‘여러 마리의 뻐꾸기’는 화자의 관점이 투영된 지리산 자락에서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뻐꾸기’는 ‘설움 속에 사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는 ‘나는 길 뜬 설움에 맛이 들고’에서 ‘뻐꾸기’의 ‘울음’ 소리를 ‘설움’이라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 마리의 뻐꾸기가 / 울음 울어 / 떼로 울음 울어’는 ‘설움 속에 사는 여러 마을 사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석 석 삼년도 봄을 더 넘겨서야 / 나는 길 뜬 설움에 맛이 들고’는 화자가 ‘석 석 삼년도 봄을 더 넘’기기 전에는 ‘설움’을 싫어했다는 것을 말한다.
화자는 ‘설움’을 토로하는 ‘여러 산 봉우리에 여러 마리의 뻐꾸기가’ 토해내는 ‘설움’ / 울음’이 싫어했다. 그렇지만 삼을 세 번 곱한 ‘석 석 삼년도 봄을 더 넘’긴 27년과 봄을 더 넘긴 나이가 되어서야 ‘여러 산 봉우리에 여러 마리의 뻐꾸기가’ 서럽게 운다고 생각한 것이 실상은 여러 마리의 뻐꾸기가 서러운 울음을 운 것이 아니고 ‘한 마리의 뻐꾹새’인 화자 자신이 설움 속에 살고 있으니까 모든 사람들이 설움에 잠겨 울고 있다는 통념에 빠져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서러운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서럽게 보이는 것이다.
‘지리산하 / 한 봉우리에 숨은 실제의 뻐꾹새가 / 한 울음을 토해 내면 / 뒷산 봉우리가 받아 넘기고 / 또 뒷산 봉우리가 받아 넘기고 / 그래서 여러 마리의 뻐꾹새로 울음 우는 것을 알았다.’는 화자의 깨달음을 다시 한번 풀어서 말한 것이다. 1연의 상징을 못 알아채는 독자를 위하여 다시 이 시에서 말하는 ‘한 마리의 뻐꾹새’가 화자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지리산하’는 사람이 사는 곳으로 화자가 거주하는 곳을 말하는 것이다. ‘한 봉우리에 숨은 실제의 뻐꾹새가’에서 ‘실제의 뻐꾹새’라 하여 ‘실제’와 ‘실제’가 아닌 것을 구분하고 있다. 화자인 ‘지리산하 / 한 봉우리에 숨은 실제의 뻐꾹새가 / 한 울음을 토해 내면’ 자신의 울음을 ‘뒷산 봉우리가 받아 넘기고 / 또 뒷산 봉우리가 받아 넘기고 / 그래서’ 메아리가 되어 ‘여러 마리의 뻐꾹새로 울음 우는 것’으로 들리는 것을 ‘알았다.’는 깨달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마리의 뻐꾹새로 울음’은 결국 ‘실제의 뻐꾹새’의 ‘울음’이 확장된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은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지리산중 / 저 연연한 산봉우리들이 다 울고나서 / 오래 남은 추스림 끝에 / 비로소 한 소리 없는 강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는 화자의 설움이 모두 들어나고 설움을 오랜 동안 추슬러 내면에서 곰삭아 발효가 되었을 때에 ‘비로서 한 소리 없는 강’인 ‘시’로 표현 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섬진강 섬진강 / 그 힘센 물줄기가 / 하동쪽 남해를 흘러들어 / 남해군도의 여러 작은 섬을 밀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는 화자의 시가 점점 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산에서 시작된 작은 샘이 흘러 ‘힘센 물줄기’를 지닌 ‘섬진강’이 되듯이 화자의 시가 점점 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섬진강처럼 거센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하동쪽 남해를 흘러들어’는 자신의 시가 지역을 벗어나 더 큰 세상에 알려졌음을 의미한다.그리고 화자의 시가 ‘남해군도의 여러 작은 섬’으로 상징된 외로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외로움을 극복할 힘을, 또는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을 보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봄 하룻날 그 눈물 다 슬리어서 / 지리산 하에서 울던 한 마리 뻐꾹새 울음이 / 이승의 서러운 맨 마지막 빛깔로 남아 / 이 세석 철쭉꽃밭을 다 태우는 것을 보았다.’는 화자의 서러움을 담고 있는 시를 지리산 ‘세석 철쭉꽃밭’의 빛깔로 비유하였고 ‘이승의 서러운 맨 마지막’ 날인 화자가 죽은 날에도 변함없을 것이다는 자신의 태도를 말한 것이다. ‘이 세석 철쭉꽃밭을 다 태우는 것’은 실제로 철쭉꽃밭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철쭉꽃이 활짝 피어 마치 불붙은 것처럼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보았다’는 화자가 현재 지리산 세석평에 핀 철쭉군락을 보면서 자신의 시가 세석평 철쭉꽃밭처럼 죽는 날까지 아름다운 빛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상징을 통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를 화자 개인의 역사가 아닌 민족의 역사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민족의 역사로 보기에는 ‘한 봉우리에 숨은 실제의 뻐꾹새’와 ‘지리산 하에서 울던 한 마리 뻐꾹새 울음’의 ‘실제’와 ‘한 마리’를 설명하기가 어렵고, 민족의 역사가 ‘한 마리’에 근원을 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러므로 민족의 역사로 보기에는 무리한 부분이 있다.20120430월전1115전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