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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자님 만찬 [75]

[성찬 44회 앞두고 2] 마 26,26-30 / 예수님의 낮아지심 / 2000.6.25

작성자큰뜻|작성시간26.06.06|조회수8 목록 댓글 0

[선포 적바림]

[성찬 44회 앞두고 2] 마 26, 26-30 / 예수님의 낮아지심 2000. 6. 25 오전

 

* 인성의 피살 지니신 성육신부터 비하 비롯함-주체는 신격! 위격이 고난 감수!

보기> 내가 목마르다-신적 인격이 말함, 새언약 제정 말씀도!

 

* 사람의 모든 죄 아래 사심-질고를 아는분, 흠모할 외모 아니고, 체휼하심

 

* 세례 요한에게 회개의 세례 받음으로 죄인처럼 죄를 전가 받음

세상 죄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한 처음엔 구속주로서 예수님을 모름

하늘이 열리며 성령님이 형체로 비둘기처럼 그분 위에 내려옴-신국 왕직 임직

 

성령님을 한량없이 주사 죽 머무심-전무후무! CF. 우리도 성령님의 집

부활 뒤에는 성령님을 보내심! 성령님은 성부에게서 나오고 성자께서 보냄

요 1, 33 요 15, 26; 행 2, 33 오순절 벌생[CF. 요즘 성령강림절 올해 6, 18]

 

눅 3, 16 불과 성령님으로 세례주심, 믿음으로 성령님을 받음-기름부음!

 

* 시험받으심-두째 아담으로 공생애 시작과 광야시험, CF. 에덴 동산

고난으로 순종 배워 오롯하개 되심-대제사장으로 의를 전가시킴

율법 지킴과 십자가에서 대리 죽음으로 구속 이름

 

* 새언약 체결하심-그리스도 피로써 마지막 언약 CF 구약은 짐승피로

언약의 중보자되심, 궁극 영원한 그리스도의 언약-옛언약의 성취

효과가 구약 백성들에게게도 적용됨!-X께서 언약의 보증이심

 

새언약은 X께서 피 흘리심으로죄 용서받아 성령님의 임재로 성취

하나님은 언제나 역사의 실제 인간 대표와 언약[유언] 체결함

CF. 은혜 언약, 영원한 언약

 

세례는 새언약에 가담 의식, 성찬은 새언약 백성으로서 존속방식

새언약의 목적-택자들의 구원의 창시자 되사 백성들을 확실하게 회복시키심

 

구속은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같은 X의 보배로운 피로

θ께서 제게속한 피로 δια 획득하신 περιποιειν 하나님의 교회를 치는 사역자

 

신격의 인성과 연합-세례의 영적 상징과 실제를 성욱신 삶 온통에서 배우라

세례도 하나요 주도 하나다! 두 요품과 제 몸의 인격을 어떻게 해야하나?

 

두 본성은 위격의 전달로, 신성 일도 예수님의 일로, 인성 일도 하나님 일로 봄

공재설[짱뽕 속성으로], 화체설[신비주의], 재침례[참인성부인]

 

고전 11, 23-32

두 가지 26, 27 주님의 죽으심을 오시기까지 잘알림과

주님 몸과 피에 관하여 벌받음-마땅하지않게 이 떡과 주님의 잔을 먹고 마시면

 

* 우리는 어떤 살과 피를 먹고마시는가? 어떤 기독론으로 참여해야 하는가?

숱한 이단, 더러움들, 불경건들, 우상숭배들, 성육신 나아가 부활, X와 연합을!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면서 또 성찬에 참여하게하시니 그분 임재외 인격의 사귐

 

하늘에 계신 부활의 몸으로 먹이시니 우리 속이 날로 그리스도로 충만해야

주님의 마음을 품어야-몸으로 산제사를 드리자!!! 순교의 피가 차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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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 44회 앞두고 2] / 마 26,26-30 / 예수님의 낮아지심 / 2000.6.25 아침

 

 

빛남 빌기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푸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셧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영원하신 구주님으로 또한 믿고 알고 확신하게 하셧사오며 지금 부터 영원토록 일체 모든 것에 대해서 오직 성령님께 의탁하고 살도록 해주시오니 감사하옵나이다.

이렇게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삼위로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서 기이한 일들을 펼치신 결과로서 땅 위에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새롭게 세우셧사옵나이다.

바른 교회를 계계승승하도록 하시면서 이 때 이 교회를 세우시고 사방에서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고 복음의 영광을 드높이도록 하시오니 감사하옵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우리 하나님께서 편재하실지라도 영광 가운데 군림하시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중보직을 새 광명 가운데서 운영하시면서 우리를 어거하시고

또한 보혜사 신께서 예수를 그리스도의 도리를 우리에게 날마다 깨우치시고 그 말씀을 확증하게 하시오니 어찌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거나 이성을 앞세워서 섣불리 하나님을 판단하겟사옵나이가?

이 시간도 오직 하나님께서 이끄셔서 창세 전에 예정하신 일을 통해서 섭리 가운데 오늘을 잇도록 하셧사오니

만왕의 왕이시여, 우리 경배를 받으시고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해내시사 하나님의 것으로 여겨주시고 과연 이 한 날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 신령한 사귐과 하늘의 잔치가 어떤 것인지를 우리 모두가 깊이 깨달아 알도록 하시옵소서.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엄위로우심을 생각해볼 때 큰 허물 가운데 잇음을 먼저 고백하옵나이다.

주여, 우리 모든 죄악을 생각나게 하시고 토죄하게 하사 사유의 확신을 간직하고 주 앞에 서게 하시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수 잇도록 주장하시옵소서.

오직 하나님께서 영이신고로 우리가 신령한 자로서 주 앞에 설 밖에 없사옵고 또한 주님과 한 몸 돼엇음을 말씀하셧사오니 홀로 멋대로 방자하게 경배를 또한 드릴 수가 없사옵나이다.

우리를 정결하게 하사 하나님께서 흠양하시는 것 되게 하시고 우리에게 고백하게 하신 것을 좇아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만을 바라게 하시고 하나님의 지극한 영광 가운데 이끌어올리사 다함 없는 경배가 이뤄지도록 하시옵소서.

이 좋은 날로 부터 영원토록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약속하신 대로 배운 것들을 배려하시니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감사드리옵나이다.

이 교회 가운데 우리 구주님께서 또한 왕림하시고 우리를 어여삐보시고 우리 심사를 통촉하시오니 주여, 우리가 모든 것을 주 앞에 내맡기게 하시고 주님의 전권 가운데 살기도 하고 죽도록 하시되 이 경배로 부터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펼치시는 거룩하고 장엄한 력사에 참여하도록 은혜베푸시옵소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드림 빌기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구주님께서 단번에 그 몸을 드려서 하나님을 만족하게하셧고 그 율법의 모든 의를 이루셧으며 우리의 모든 질고를 온전히 다 걸머지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숙제를 이루셧사옵나이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새로운 이스라엘로서 주 앞에 섯사옵나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말씀과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신 그 말씀의 범위 앞에서 먼저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다 거룩히 구별해서 다 내맡겨드리는 다시 이 시간 거치도록 은혜를 베푸시오니 감사하옵나이다.

먼저 주 앞에 모든 것을 다 맡기지 않고 무엇을 생각하고 경영하며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할만한 것을 우리 스스로 해낼 것이 잇겟사옵나이가. 우리 허물이 많고 게으름으로 말미암은 무지와 배은망덕이 하늘 까지 닿앗을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용납하셔서 다시 이 시간 우리를 불러모으셧사오니 참으로 두렵사옵고 또한 감사하옵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몸된 교회가 어떤 것인지 점점 잘 알아가게 해주시고

거기에 걸맞게 우리가 주 앞에 바쳐야 되는데 우리 믿음의 분수를 살피시고 믿음이 적다면 하나님께서 경책하사 큰 믿음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방도를 힘입게 하시고 또한 개혁할 것을 개혁하게 하사 무엇보다 주님의 말씀과 거룩하신 규례를 좇아서 주님의 것답게 하시옵소서.

단순히 물질 몇 푼으로 형식치레 해서 대표하지 않게 하시고

적어도 전체에 대한 의식이 날마다 풍성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왕국이, 또한 그 나라의 백성다움이 무엇인지를 점점 배워 확신에 이르게 하사 주님의 쓰심에 합당한 사람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에게 거룩한 믿음의 고백을 주류의 신학 가운데 계승받도록 해주시니 감사하옵나이다.

그 신앙고백에 걸맞는 삶의 자태를 거룩한 능력을 기필코 내보이는, 끊임없이 내보이는 교회가 될 수 잇도록 주여, 우리 드림을 거룩히 여기시고 주님께서 받으신 첫째 증거로 우리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며 거룩한 다짐이 잇도록 하시옵소서.

우리 드림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화로움이 풍성하게 하시고 우리 남은 동안 주님과 더불어 사귐이 점점 넓어지며 깊어지고 신령해지도록 하시옵소서.

마침내 우리는 성령님의 력사로 말미암은 드림의 열매로서 주님을 찬송하는 데 까지 우리 모두가 다다르도록 하시옵소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마 26,26-30

26 그런데 그들이 먹어대고잇는데 그 예수스님은 그 떡을 붙잡으시고나서 복베푸시고나서 떼셧고 그 배움꾼들에게 주고계셧으며 말하셧느니라 “너희는 붙잡거라 너희는 먹거라 이것은 내 그 몸이로다”.

27 또 그 잔을 붙잡으시고나서 고마워하시고나서 그분은 그들에게 주셧느니라 “너희 모두들은 그것한테서 마시거라”

28 왜냐하면 이것은 내 그 피이노라, 그 새맺기 많은이들에 대하여 빗나감들의 삯침을 위하여 그 내리쏟고잇는것.

29 하지만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이제부터 그 포도나무의 이 새끼한테서 도무지 마시지 않겟노라 내가 그것을 너희와 함께 내 그 아버지의 그 나라 안에서 새것으로 마실 적에 저 날 까지”.

30 그리고 그들은 기리고나서 그 자이트들의 그 뫼 안으로 나갓더라.

 

 

지난 수요일 날 드린 말씀을 전제로 하고 오늘 말씀 계속 이어서 받으시길 바라겟습니다. 우리 지난 수요일에 예수님의 피와 살, 고 말씀을 주님의 인격에 속해 잇는 인성에 관련한 부분으로 생각해서 우리 잠시 살폇는데요. 준비한 거에 반 밖에 말씀 못드렷는데 오늘은 여기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주님께서 그 낮추신 것이 바로 흔히 말하는 성육신 부터 해서 지상생활 깡그리, 그러니까 부활하시기 직전 까지, 그 전체를 우리 보통 신학적으로 예수님의 낮아지심, 한문으로 비하 이런 말을 쓰는 게예요. 다 이게 우리와 똑같은 성질의 피와 살을 지니신, 사람과는 똑같은 인격은 아니시지만 똑같은 인성을 지니신 신께서 땅 위에 삼십 여년 간 계셧던 게예요. 그런 면에서 복음서에서 주님의 행동거지 하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사람의 차원만으로 그 죄진 인생의 수준에서 그 말을 햇다간 지옥갈 자가 되고 말아요. 우리와 접촉점을 마련하시려고 온전한 구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그대로 정말로 겪으시기 위해서 입으신 정돈데 그분은 본성에서는 신이시잖아요 신. 현하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된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따르는 중이예요.

 

개혁자들의 글을, 이름난 사람들의 글을 가만히 살펴보세요. 그 당시 정말 어떤 그 스승도 없을 정도로 타락한 로만 캐톨맄을 깨부시고 진리를 다시 드러내기 위한 그네들의 삶, 진리의 표현은 오직 하나님의 신께서 력사하지 않으셧으면 불가능한 게예요. 그 유산을, 그네들의 어떤 신앙의 삶을 우리가 전수 받고 잇다면 예수님의 피와 살에 대해서 비록 지금 우리가 땅 위에 계시는 동안에 그분을 만져보진 못햇을지라도 지금은 그런 몸 정도가 아니고 영화로운 몸, 부활하신 뒤에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그 신령한 몸을 믿음으로 받고 손으로 만질 때보다 더 신령한 접촉을 하는 가운데 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말씀을 받고 이 한 세대를 풍미해야 할 것인가? 가면 갈 수록 예수 그리스도다움을 주님의 형상을 이뤄가면서 나타내야 정상의 신앙이죠.

 

근데 우리 한번 돌아보세요. 과연 그러햇나? ‘야 이 사람 보니까, 이 사람 하는 거 보니깐 예수님 같다’ 뭐 이런 호가 날 정도로 돼야 되잖아요. 물론 사람의 평가가 늘 맞대거나 평가를 의식할 필요는 없지만 그러한 자세를 갖추도록 하시는 게예요. 그래서 우리가 급기야 두 요품으로 주님께서 딱 마련하신, 제정하신 떡, 포도술, 주, 이걸 갖다 우리가 먹는 거 아니예요. 화학변화를 따져보더라도 우리 완전히 몸이 그냥 그리스도의 몸과 합이다 하는 거를 영적으로 그냥 각인시키시는 거 아닙니가? 근데 그만 우리가 무지하고 교만하고 세상이 가만두지 않으니까 마음은 구 만리인데 범죄할 때가 많고 적그리스도와 방불한 태세를 취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참. 다시 한번 우리가 성찬을 앞에 놓고 쭉 한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야 이분이 정말 사람이 되셔가지고 낮아지신 상태에서 해내신 그 모든 것이 나를 위해서 하셧다는데 과연 내가 그걸 어떻게 믿고 잇나, 어떻게 믿어야 하나?’ 이걸 우리가 다시 한번 돌아봐야 되겟죠.

 

좌우간 우리 첫째도 겸손, 두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 아니예요. 참 그 말이 이게 쉬운 건 아니지만. 왜? 예수님을 본받는다는 말씀이 그거 아니예요? 낮추고, 근데 뭘 알아야 낮출 거 아니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속에서 약동해야 낮추고 자시고 할 거 아니예요? 다른 방도는 없어요. 자기 힘으로 낮출 수 잇는 자도 없고 오직 전적인 은혜로 구원하셧으니 그 온유한 겸손의 상태도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는 거죠. 만약 그러한 각오와 다짐과 실질을 점점 주 앞에 드러냄이 없다면 주님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지 어떻게 알겟어요? 택정한 사람 지옥은 보내지 않는다 하나 주님의 징벌이 왜 없겟습니가? “야 이 친구 않 되겟다” 뭐 빨랑 데려가는 수도 생길 수 잇고, “야 이놈 않 되겟다” 병들게 할 수도 잇겟죠. 그게 겁나서가 아니라. 우리의 소위와 우리의 상태가 어떻게 참 지극히 변화돼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같이 형제라고도 하고, 또 우리를 또 하나님의 아들 삼앗다고 하잖아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잖아요. 그러면 이걸 필두로 해서 파생되는 모든 방면에 우리의 그 자세랑 심리과 과연 어떠해야 하나? 뭐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을 게예요.

 

사람의 성품에 속한 것을 대표로 해서 피와 살로 주님이 참 대표해서 새로운 언약을 체결하신 력사적인 장면을 우리가 오늘 몇 절 읽엇어요. 마태 씨는 여기 앞에 보게되면 패역무도한 캄캄함이 잇는데 고 사이에 요 아주 성찬 제정의 신비한 말씀, 아주 놀라운 말씀을 적어주고 잇어요. 그러니까 이게 물론 이 제정한 때도 밤이지만 영적으로도 정말 무지와 도전이 깜깜한 그런 때에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으로서 언약을 완전히 그냥 새롭게 종결지는, 완성짓는 그러한 아주 사건을 계시를 선물해주신 사건이예요.

 

피 살을 상징해서 떡과 포도주로 “아버지의 나라에서 쌤삥으로 마실 적 전에 까지 내가 다시 마시지 않겟다” 그러니까 이후에 뭐 다른 언약도 없어요 이젠. 딱 요거로 그냥 구약에 모든 피에 언약, 거기에 물론 관련된 무슨 제사니 뭐니 많은 가르침을 아주 완전히 이 밤, 이 자리에서 그냥 끝장낸 거예요. 어떤 친구들은 그래서 좀 문자주의자들은 요걸 꼭 목요일날 밤에 행해야 된다고 고집하는 자들도 잇어. 이건 또 신약계시를 모르는 자들 아니예요? 또 어떤 종자는 요기 두 요품에 대해서 깊이 주님의 인격과 관련해서 새기지 못하는 가운데 자기네 멋대로 편리주의로 한 자도 잇어요. 않 되죠 그것도. 그래서 개혁자들이 예배 개혁이 굉장히 중요하고 그 가운데 성찬을 아주 굉장히 높이 둿어요. 그러니까 우리의 배지라고 하는 거잖아요 그렇죠? 말로만 뭐 기독교인, 어느 교회 다니면서 이런 게 아니고 이 성찬을 딱 묶어볼 때 세상 앞에서 분명한 표식이라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우리가 거듭 말씀드리지만 성경을 대할 때, 특히 복음서 대할 때 사람, 나랑 맞장트는 인간 예수님을 절대로 생각하지 마세요. 흔히 주일 학교에서, 교회 학교에서 예수님의 이야기랍시고 그냥 아이들 수준에서 소리한답시고 사람 차원에 엑센트를 두고 가르치는 수가 왕왕 잇는데 이단이예요 그거는. 요 두 요품만 따지래도 너무 지나치게 여겨서 로마 캐톨맄 같이 우상숭배하지 말고. 또 이걸 너무 얕봐서 이 성찬에 참여하고 먹고 마실 때 마다 더 깊이 그리스도를 깨닫고 배워야 되는데 너무 그냥 간단히 그냥 기념식, 이런 차원에 머물러도 무식쟁이 될 수 밖에 없는 거죠. 하물며 신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선 어떻겟어요? 그분의 가르침이 신구약성경 전체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되겟냐 말이예요. 어떤 교회는 뭐 올해의 표어, 그래서 ‘예수님 처럼 살자 예수님 처럼 뭐 하자’ 쫙 해서 주보에다가 예수 예수 예수 예수 천박한 차원이죠 그거.

 

예수님의 양성, 동일하게 신앙하고 동일하게 알아야 돼요 우리가. 예를 들어서 “아 목마르다” 주님이 십자가틀에 매달렷을 때 하신 말씀 중에 이 말씀도 잇죠 그렇죠? “목마르다” 이건 참 우리가 뭐 조금 목마를 때 목마른 정도를 생각하면 유치하죠. 물론 신성으로서는 목마르고 자시고 이런 거는 없지만 몸을 지니고 잇는 육신의 한계 가운데서 신성이 고난당햇다고 이렇게 직설적으론 못할지라도 그분의 신적 위격께서도 그 상황에 인성을 지니신 채로 겪으신 게예요 그게. 인격이 당하신 거지 그러면 신적 권세가 무한하단 말이예요? “목마르다” 그러니 이 십자가 달리시기 전에 그 한 마디 한 마디 이걸 아주 깊이 사색해야 돼요 깊이. 철학적인 사색이 아니라 계시 의존 사색으로 우리가 신령한 사귐 가운데 성숙 가운데 주님께서 걸어가신 거 같은 방불한 걸음 가운데서 깨달아나가야 된다니깐요. 그냥 무슨 신학적으로 무슨 씨뿌리는 비유는 어쩌구 저쩌구 이렇게 아는 것만이 능이 아니고 인격적인 것 가운데 그 연합 가운데 그 모든 추이에 함께 해야 된다니깐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우리와 똑같은 피와 살을 지니고 오셧을 뿐더러 삼십 여년 간을 땅 위에 사셧다는 사실이 중요해요. 제일 많이 살앗던 969살 사람 대가 중 세상 모든 사람들, 앞으로 태어날 모든 사람들의 나이를 깡그리 다 더해도 그 삼십 삼 년을 남짓한 것을 넘어설 수가 없어요 그렇잖아요? 모든 인간들이 수백 년 산, 수 많은 셀 수 없는 그 많은 사람들이 산 걸 다 합쳐도 이 땅위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낮아짐의 삶을 감당할 수가 없다니까. 죄 없는 분께서 말이예요.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말이예요. 우리 좀 앞으로 양심 좀 청결하게 해야 되겟죠. 믿는 건지 않 믿는 건지, 크리스챤인지 아닌지 명백히 해야 되겟어요.

 

주님께서 오시기 700여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도 우리의 질고를 아시는 분이라고 햇죠. 그 질고는 히브리 원문엔 병이죠 병. 병 그러면 꼭 어떤 한가지 병을 가르치는 거보다 온갖 것을 말하는 거겟죠. 꼭 주님이 뭐 병을 걸렷다 않 걸렷다 그 말하는 게 아니죠? 뭐 병걸렷을지라도 주님은 죄로 말미암아 걸린 것도 아니고 좌우간 우리의 모든 병, 그걸 아는, 여기 안다고 하는 건 아주 깊이 체득한 거예요. 암을 않 걸리셧을지라도 암 걸린 사람의 그걸 뛰어넘은 모든 걸 다 이미 아시는 분이라니까. 아니 우리 정말 믿음 그 이후에 어떤 곤경을 겪어보셧어요? 생색내지 마세요. 교만하지 말고 괜히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신도 낭비하고 다른 사람 까지 망가뜨리질 말고. 어떤 경우를 당할지라도. 예수님을 척하니 믿고 따르는 사람은 감히 그럴 수가 없어요. 물론 때로는 우리 마음이 정말 약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참 우리가 맘먹은 대로 되지 않아서 죄를 범할 수도 잇을지라도 이내 그냥 파딱 그냥 회개하고 돌이키면 돼요.

 

특별히 우리가 말씀 대할 때, 아니 성찬에 참여 전에 아주 중요한 자세예요. 믿음의 회개랑 ‘내가 앞으로 정말 그리스도를 사랑하리라, 형제를 사랑하리라’ 이런 아주 각오가 없이는 참여하면 않 돼요. 주님의 피와 살을 범하는 죄가 되니까......좌우간 삶이 그러하신 거예요. 구약의 모든 참된 백성도 메시야를, 신인이신 그분을 믿는 거잖아요 그렇죠? 주님께서 이 겪으신 모든 것이 역으로 구약에 모든 백성들에게 아주 효과가 풍성히 임하도록 하시는 거 아니예요. 좌우간 우리가 지은 모든 인간들의 모든 죄 아래서 그분이 땅에 살앗다는 사실을 언제든지 기억하세요. 참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삶이죠. 흔한 말로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또 그 중에 대표적인 사건은 뭐 그분이 겪으신 모든 사건, 모든 가르침을 다 빼놓을 수 없이 다 동일하게 강조해야 되겟지만 자기 그 친척이, 어떤 여섯 달 먼저 왓던 세례베푸는이 요한한테 요단강에서 받은 물세례, 력사적인 사건이고 비하에 아주 대표할만한 거예요. 뒤에 십자가에 죽음 못지않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세례받은 석상에선 뭐 첨엔 잘 몰랏는지 몰라도 많은 시간 지나지 않앗겟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 요한이가 선포하는 그 장면 가운데 잇어요. 바로 우리의 모든 죄를 죄인인 것처럼 여기셔서 그 몸에 다 그냥 전가받으신 사건 아니예요?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어린양이시니까. 고 낱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참 삼삼한 말씀이지만. 세례요한은 우리보다 단수가 깊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도리를 깨닫지 못햇어요. 그런데도 하여간에 그렇게 선포한 그 장면에서 엄청난 사건이예요.

 

아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엇습니가? 아니 함께 세례받앗습니가? 진정한 그 연합 가운데 잇는 걸 여기고 잇습니가 우리? 그러면 죄에 대해서 어떠해야 하는가? 바울도 여기 저기서 말씀하지 않습니가? 세례가 그냥 무슨 뭐 어떤 그 형식치레에서 폼잡는 게 아니예요. 내가 정말 죄인인 것을, 아니 그 이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모든 죄를 걸머지고 세례받으셧으니 나 또한 그 사실을 진정으로 참 통렬하게 신령하게 고백하는 것이 세례 아니예요? 성찬을 앞두고 언제든지 우리는 세례를 생각하지 않습니가? ‘야 지금 내 모습이 어떤가?’ 통회가 잇는 거죠. 그분을 더 그냥 믿는 거죠. 난 어쩔 수 없는 무능한 자고 부패한 자니까. 이거 없이는 성찬이 성립이 되질 않아요. 우스꽝스러운 거죠.

 

첨엔 구속주인 것을 잘 몰랏을지라도 이 요한의 선포 가운데서 구주임을, 또 하늘이 열리면서 이제 그 물가에서 올라오셧을 때 성령님께서 비둘기 처럼 그분에게 강림한 사건 잇잖아요 그렇죠? 봣죠 그걸 세례 요한이가. 놀라운 사건 아니예요 이게. 좌우간 그걸 또 뒤에서 말하기를 “한량없이” 여기 한량없다는 말이 그러니까 에크 메트루[εκ μετρου] 그래서 미터는 측정하는 거잖아요. 그런 것으로 부터 잴 수 없는 상황, 한글번역에 “한량없이 예수 그리스도께 성령님을 주셧다” 고 그랫어요. 이건 인성을 지니시기에 가능한 표현이예요 그렇죠? 예수님의 신성께 제 3위신인 성령님을 부어주시는 거 없어요 그렇죠? 좌우간 신격이신데 하여간에 동시에 사람의 인성을 갖고 계시기 땜에 거기에 보혜사 성령님, 하나님께로 부터 나오시는 그 성령님을 한량없이 주신 것으로, 성부님이 주신 것으로 하늘 아버지께서 바꿔 말하면 구약에서 말하는 기름부음인데 대권을, 왕권을 허락하셧다는 거 아니예요.

 

그러니까 그 땅 위에 사역을 지금은 이미 벌써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왓느니라” 이 선포를 할 수 잇는 위치로 부름받으신 분이예요 이미.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꼭 뭐 부활하신 뒤에만 왕이 되신 게 아니고. 그러니 그 땅에 계신 예수님을 바리새인들이 똑바로 알 턱이 없고 쫄랭이 같이 좇아다니던 열두 명의 제자들과 많은 사람이 알 수가 없엇던 게예요. 왜? 성령님을 받은 사람만이 아니까 충만하게. 그러니까 제자들도 이미 기본적인 성령을 받앗을지라도 맨날 사고뭉치짓거리햇던 게예요. 온전히 알 수가 없으니까 그분을. 인간 예수, 땅위에 왕국을 새롭게 할 그 정치적인 메시야 정도로 유치하게 아니깐 어떤 엄마는 좇아와서 ‘아 우리 아들 두 명 중에 하나는 우편, 하나는 하늘 아래 좀 좌편에다가 앉혀줫으면’ 이따위 소리가 나오는 게예요.

 

아니 우린 예수 그리스도를 똑바로 알고 잇죠? 그래서 똑바로 믿고 잇죠 우리는? 왕이시며 구주이시고. 그 뭐 삼중직, 그 중보자로서 구실을 깊이 론하지 않을지라도 말이예요. 정말 그렇습니가? 최고의 지식을 갖추고 잇는 사람들입니가 우리? 나는 그 신학자라는 사람들이, 목사들이 그 신학박사 학위에, 유학에 그 네때루에 전전긍긍하는 거 보게되면 정말 한심하더라구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게” 바울 씨는 말하기를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 뭐 이렇게 한글번역엔 나오잖아요. 좌우간 최고봉이라고 말햇어요. 아니 정말 우리 그렇게 확언할 만합니가 우리는? 학교 세상 지식을 가지고 마귀의 속임을 아십니가 우리? 이성주의 심각해요.

 

그러니까 아주 그 낮추고 낮추신 가운데에도 부활하실 때 만큼 그렇게 까지 또 새로운 단계로 높이시진 않으셧을지라도 그 한계 가운데서 굉장하신 분이예요. 우리랑은 처지가 달라요. 다만 우리 또한 마찬가지잖아요. 비록 우리 이런 껍데기 썩어문들어진 껍데기를 지금 겉사람은 견지하고 잇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예요.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니깐요. 아니 이런 영광스런 자태를 뽐내고 살고 잇습니가 우리? 여기에 못 미치면 또 이거 역시 무지고 죄악이예요. 외식하게 돼요 이거를 모르는 사람은. 한 마디로 인간미가 없죠.

 

지난 번에 어느 신학교 가서 거기 한번 좀 담당자들이랑 만낫는데 목사들이지. 아 근데 그 얘기하는 그 품, 말 야 이 사람들 참 사업군인가? 분명히 그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목사를 키워낸다는 그 인가받은 신학교인데 그 무슨 소파 의리 의리한 데 딱 앉아서 뭐 그냥 ‘야 누가 어쩌구 저쩌구’. ‘야 내가 지금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 이거’ 어 하마터면 병이날 뻔한 거예요 너무 아주 피곤해서. 야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아 신학박사면 뭐고 이사장이면 뭐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정말 어떻게 알고 어떻게 믿고 그분과 참 가까이 다정다감하게 살고 잇습니가? 멀리계신 분이 아니예요 그분은. 물론 그 영화로운 몸은 멀리 계시지만 또 우리에게 아주 먹고 마시는 걸 통해서도 아주 신령하게 그 믿으라고, 아니 그 몸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거 아니예요. 더 이상 가까울 수가 없어요 이 이상은요.

 

좌우간 전무후무하게 성령님을 주님께 베푸셔서 우리에게 까지 그 성령 하나님께서 내주하셔서 우리를 보통 성령님의 집, 이런 말을 쓴다고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렷잖아요. 바로 그분이시기 땜에 부활하신 뒤에 아버지께로 부터 성령님을 받아서 우리한테 보내시기 땜에 그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 딴 일 하시질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거 생각나게 하는 거 아니예요? 진리로 거룩하게 하고 진리 안에 자유롭게 해주고. 무슨 뭐 성령 받은 게 방언하고 이따위 하는 게 아니고 예수님을 더 잘 믿게, 예수님을 사랑하게 예수님의 가르침이 뭔지를 배워서 알게하는 게 유일한 최고의 력사라니까. 딴 건 모든 건 잇다 없는 하나의 방편에 지나지 않는 게예요 다.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의 형상을 점점 본받아가게 하시는 거로 성령님의 사역에 핵심이 잇어요.

 

그러니까 이미 다 우리는 물 세례와 아울러 성령님의 세례라고 일컬어지는 이러한 성령님의 력사가 잇는 사람들이예요. 또 받는 것도 아니고. 충만이지 그건 이제. 회개하기도 하고 빌기도 하고 말씀 상고도 하고 그래서 주님께서 겪으신 이 낮은 차원에서 고난, 즉 십자가를 같이 걸머지게 하시려고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는 게예요. 딴 게 아니라. 그럴라니까 이 주님을 알아야 어떻게 뭐 닮아가든가 하지. 사람 본받을 사람 없어요.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 한 건 그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방불한 것으로 나타난 그 방면을 이야기한 거죠. 결국은 자기가 한 게 아니예요. 성령님의 열매지.

 

이런 말씀들이 복음서, 사도행전, 특히 신약 전체에 여기 저기 많이 깔려잇어요. 올해는 4월 30일이 소위 뭐 부활주일이엇나요? 그리고 뭐 지난 주가 성령강림주일이예요? 우리 꼬마 땐 그런 말도 없엇어요. 부활절도 잇다 이런 식도 없엇는데 요즘 신교에서 하여간에 자꾸만 날짜를 그 신격화시키는 우상놀음들이 많아지고 잇어요. 성령강림절 없어요. 세례와 성찬 밖에 없어요 신약교회에서는. 성탄절 부활절도 없어요 그런 식으로 하는 거. 세례와 성찬, 이건 아주 새언약에 아주 중요한 계시를 담고 잇는 모습이예요. 지난 시간 말씀드렷지만 수요일 날 이 성찬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만사가 뒤틀린다고.

 

근데 땅 위에 사는 가운데 이렇게 참 영광스러운 직분을 견지하셧을지라도 육신의 한계에 봉착해 계시는지라 처음 부터 마지막 까지 시험에서 시험으로 끝난 분이예요. 상상이 않 되는 거죠. 시험 그러면 우리에게는 죄로 말미암은 건데. 물론하나님께서 훈련용으로 쓰시는 것도 잇지만 우리는 죄가 잇기 땜에 겪는 건데 주님은 죄도 없으신데도 인성을 갖고 잇다는, 피와 살을 지니셧다는 것 때문에. 공생애 이제 선전포고 나가시기 위한 준비할 때 광야에서 시험당하신 거, 또 마지막 십자가 앞두고 감람산인지 겟세마네 동산에서 또 이것 또 당하신 시험, 굉장한 시험이예요 이게. 그 안에 물론 많은 크고 작은 게 잇는데. 주님은 근데 완벽하게 이기셧어요. 참 아주 엄청난 일이예요. 물론 성령님의 돌보심이 잇죠. 또한 그분 자신이 신이시고. 그럴지라도 몸을 갖고 계신 걸 우리가 꼭 잊지 않아야 돼요. 쇼맨 쉽을 발휘하신 것이 결코 아니라고 그랫잖아요. 정말 아주 아슬아슬한 게예요. 마귀의 시험 부터 해서 뭐 바리새인, 심지어 제자들도 보세요 많이 따라다닌 거 같지만 결국은 결정적인 땐 홀로 계셧어요.

 

성찬, 세례 이게 세상 사람들 앞에서 유쾌한 게 아니라니깐요. 세상과 구별을 선전포고하는 거예요. ‘난 앞으로 이렇게 산다, 난 이 편에 속한 사람이다, 이 가르침을 따른다’ 이게 세례요 이걸 다시 굳히는 게, 왜? 우리는 연약하니까 힘을 더 베푸시려고 피와 살에 참여시키시는 거예요. 이 정도 까지 낮추시고 배려하시는데 어찌 우리 믿음이 약해서 되겟습니가? 말도 않 되지 그러니까. 아예 그런 사람은 지옥 보내달라고 강청을 하세요.

 

이런 고난이 잇엇기에 예수님의 인성을 가지시고 성부 하나님께 순종을 배워서 오롯하게 되셧다 그랫죠? 어 이거 참 아주 굉장히 어려운 말이예요. 주님은 불순종이 없죠 그렇죠? 죄를 모르시는, 근데 이러한 온갖 시험, 뭐 때로는 심한 통곡도 하셧다 그러는데 순종을 배웟다 그랫어요 순종을.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의를 이루셧다는 건데. 그래서 아주 완전한 신분이 된 거예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속죄와 화목을 위해서 교회의 길, 예수님께 접붙임된 사람들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거예요 순종. 순종 그러면 이게 참 우린 뭐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잇죠.

 

마침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죽음을, 우리의 형벌을 대리 해서 죽으심으로 아주 극치죠. 바로 이 모든 것을 우리와 똑같은 피와 살을 지니시면서 보여주신 거예요. 우리는 물론 주님의 신성을 갖고 잇지 않지만 성령님께서 내주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생명이 잇고 신분이 변화 받은 상태에서, 아니 또 이 피와 살을 직접 먹고 마시는 은혜 가운데 잇다면 우리 삶이 어때야 되겟어요?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람들은 정과 육을 십자가에 못박앗다” 그거 뭐 강조하지 않더래도 마땅한 선언이죠.

 

그래서 오늘 말씀 볼 때 새맺기, 그렇죠? 여기선 뭐 피라고 그 앞에 잇는 떡 까지 다 이제 합치는 거죠. 몸과 피를 갖다 새언약, 새맺기라고. 무슨 뭐 쌤삥, 헌삥이 잇어서가 아니라 모든 것에 아주 결정판으로 이제 아주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앞두고 영원한 성격이 잇는, 완전한 다시 어떤 이런 체결이 없는 성격으로서 이 유언의 형식으로 이 말씀을 남기신 거예요. 디아쎄케[διαθηκη] 라틴말로 테스타멘툼[].

 

다른 거로 하지 않고 피, 이건 바로 구약 보세요 아브라함도 피의 제사 그렇죠? 모쉐도 역시 피로 언약을 체결한 것에 궁극적인 실체로서 예수님 자신의 몸을 피흘려드리셧다는 거예요. 단번에 완전하게. 이제는 다른 방도가 없어요. 아 그분이 친히 아버지를 대리해서 거기 잇는 열두 명의 제자들도 새롭게 언약을 완성하신 력사적인 자리예요. 우리 언약에 대한 거 잇잖아요? 그대로 하면 복, 하지 않으면 벌.

 

언약의 중보자로서 좌우간 쭉 모든 구약 전체를 쫙 이 자리에서 이 성찬 예식을 제정하시는 가운데서 아주 종결졋다는 게예요. 그러니 율법주의는 무슨 말이고 반복음주의는 무슨 말이냐? 세례 성찬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참여하고 생각해야 되겟는가 자명한 사실 아닙니가? 교회에서 이거 강조하지 않고 뭐를 강조하겟어요? 이거 아주 똑바로 가르치고 똑바로 힘입으면 바른 교회예요. 그런 교회에서 복음의 말씀이 똑바로 전파되지 않을 까닭이 없어요. 무슨 침례예요 침례는? 루터교는 뭐고 로만 캐톨맄은 어떤 거예요? 신교 일각에서도 무슨 뭐 발 닦아준다는 건 또 뭐예요?

 

요 이 세례와 성찬 요 두 가지 요 방식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교회 안팎에서 없어요. 예배드리는 이 예식에 속한 거 외에는 성찬 세례 빼면 아무 것도 없대니깐요. 잇을 필요도 없고. 다만 조직교회로서 우리가 연약과 죄성을 지니고 잇기 땜에 정치적인 조례로 몇몇을 규정해나가는 것 혹시 잇을 수 잇어도 그것 조차 라도 우리가 점점 성숙해서 성문법을 줄이고 왜? 이미 여기 신구약성경이 성문법이니깐. 그런 교회, 그런 삶을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돼요.

 

그리스도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인성 신성을 외곡하면 교회가 복잡해져요. 이 건물 치장, 사람 치장하는 거 부터 그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복잡다단해요 하여간에. 우리 무당 굿하는데 저쪽 절간에 이렇게 한번 가보셧나요? 옛날 저쪽 계룡산이니 무학산이니 이런 산에 사이비종파들이 그 해놓은 거 보게되면 완전히 그냥 지저분하고 더럽고 가장 유일한 말끔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지 않으면 지극히 당연한 모습들이예요. 깨끗해야 돼요 좌우간 하여간에. 저는 그래서 우리 교회 아주 물론 우리 뭐 마음먹은 대로 아직 정말로 1퍼센트 다 갖추지 못햇을지라도 아주 감사하죠. 간단 명료하고 신령하고 아주 분명하고 아주 풍성해야 돼요. 진리와 진리 앞세운 삶의 자세가 말이예요.

 

어쨋든지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받앗고 그 다음 성령님께서 임재하심으로 성취된 거죠. 그래서 이 성격이 은혜의 성격을 담고 잇고 우리가 사람의 힘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또 이것이 영원한 효과를 갖고 잇기 땜에 영원한 성격을 갖고 잇는 언약이라고 교리에서 말들을 하고 잇는 거죠. 따라서 우리 세례는 바로 새 언약에 가담하는 식이죠? 나가서 성찬은 새 언약의 백성으로서 존재하는 방식으로서 아주 중요한 게예요 세례 성찬. 아브라함이 우리를 흠모해야 되고 다윗이 우리를 흠모해야 돼요. 우리가 새 언약 백성으로서 지금 위치와 누리는 분복이 가히 어느 정도인가? 아셔야 한다구요. 더군다나 우린 지금 개혁신앙이라고 하잖아요? 많은 종교개혁 유파 가운데 주류 정통으로 서신 그 줄에 서잇어요. 믿습니가 이거 우리?

 

바로 그래서 우리 이 새 언약의 목적이라고 그 할 수 잇는 거는 택함받은 사람들의 구원의 창시자가 되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아주 확실하게 회복시키시는 것을 담고 잇는 거죠. 우리 이거 참 아주 굉장한 사건이예요. 그러니까 에덴 동산에서 체결한 그런 언약 정도가 아니예요. 그거 소위 뭐 행위언약이라고 말들 하는데 아주 완벽하게. 사실 그 첫 아담 당시 보게되면 여자, 하와는 신약에서 말하면 신부로서 교회라고 할 수 잇잖아요? 이 언약 체결을 또 이 모든 시험이기고 하는데 잇어서 교회가 감히 어떤 그 예수님 행사에 수종든 게 없어요. 홀로 단독으로 완전히 모든 것들을 다 완성하신 분이예요. 실패라고 하는 건 더 이상 상상할 수 없엇던 거예요. 완벽한 피, 완벽한 살을 지니시고.

 

첫 아담이 못한 거 두째 아담으로 오셔서 완전무결하게 하셧어요. 구원의 구 자라도 흔들릴 수 없어요 우리는. 아주 확고부동이죠. 날마다 아주 더욱 힘차 가고 오늘도 우리에게 약속하신 대로 주님의 피, 주님의 살에 참여시키시잖아요. 분명히 그 몸은 지금 하나님의 우편에 계세요 그렇죠? 우리 눈으로 볼 수가 없어요. 우리 손으로 만질 수 잇는 그 신령한 몸이 아니예요. 그런데 이 피와 살에 먹고 마심은 그 이상 가는 것으로 효과잇게 여겨주신다니깐요. 아니 우리가 식인종이예요? 이 보통 상징이 아니예요. 보통 표지가 아니예요. 허깨비신앙으로 전락할 수도 없고.

 

그러니까 주님과 나와의 인격 관계, 신비한 사귐, 이거만 정말 확고부동하다면 땅 위에 모든 대인관계, 거기에서 발생한 모든 일, 넉넉하게 감당하고도 남지 않겟습니가? 주님과 우리가 한 몸이 돼버렷는데 이미.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를 구속하셧다 그랫죠? 좀 말이 길어요. 보배로운 피, 아니 우리가 이따가 그 피를 마신다니깐요. 인성을 지닌 그 피 정도가 아니고 영화로운 그 몸을 구성하는.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 양 같은. 글쎄 아직 제가 어린 양 고기를 아직 못 먹어봣는데 글쎄 맛잇다 그러더라구요. 글쎄 그걸 않 먹엇어도.

 

또 이 피를 또 교회랑 관련해 설명하는 대목이 잇죠 누가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속한, 그러니까 “하나님 스스로에게 속한 피를 통하여, 획득하신” 한글번역엔 ‘사신’ 그래서 좀 뉘앙스가 그런데. “획득하신 하나님의 교회를 치는 사역자” 해서 그 사역자의 자세 위치가 어떤 건지를 아주 중요하게 말해놧어요. 사도행전 20장 28절에 그 에베소 사역을 마치면서 아주 멋진 휘날레 선포 가운데 잇는 게예요 떠나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속한 피를 통하여 획득하신 하나님의 교회” 여기 획득햇다는 말은 집사직을 잘할 때 믿음의 담력을 휙득한다 하는 고기에 잇는 딱 두 차례만 잇는 헬라말이예요. 낱말이 좀 어려운데. 그러니까 이 피흘리심으로 말미암아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를 구속하신 것을 깊이 생각하셔야 된다니깐요. 깊이 생각해야 돼요 우리. 그냥 무슨 단순한 구구단공식 정도가 아니예요. 그렇게 깊이 사색하고 깨달아지고 가능하면 오래도록 이 땅에 삶을 누릴 때 그야말로 참 엄청난 하늘의 기업 가운데서 사귐을 누리게 되겟죠.

 

이렇게 참 신격의 인성과 우리가 분명한 연합을 이루고 잇음을 다시 한번 확신하고 기뻐해야 되겟고 이제 세례도 하나고 주님도 하나 라고 그러는데 이 피와 살에 참여하는 인격체로서 우리가 이 몸을 앞으로 어떻게 할가? 산 제사로 바쳐야죠. 주님께서 정말 기뻐하시는. 그래서 새사람이 날마다 돼야 되잖아요. 그건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깨달음으로 증명해보일 수 잇는 건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말로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이 피와 살을 바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겟어요? 그러면 내 맘대로 생각한다는 거 아니야. 내 맘대로 이 몸과 마음을 쓴다는 거 아니예요? 우리는 전적으로 부패해서 무엇 하나 똑바로 기쁨을 드릴만한 행위를 할 수 잇는 것이 전혀 없음을 고백하고 세례받앗잖아요? 이런 세례 성찬은 개혁교회 밖에 없어요. 알미니안파, 루터파, 같은 신교 선상에 잇지만 하나님의 예정을 믿지 않아요 우리 같이.

 

우리 믿음의 고백을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 점고하실텐데 어떻게 우리 정말 성찬에 참여하실 거예요? 전지전능하신, 그 무한한 그 작정이 예정 가운데서 완전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서 망가져버린 우릴 갖다가 주님의 사람이 되셔서 이렇게 완전히 지극히 낮추셔서 찢기시고 흘리시고 해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도말하셧잖아요 단번에. 그 임금님께서 그 중보자께서. 아니 그래서 우리가 나음을 입은 걸 확신한다면 이 몸을 가지고 이제 어떻게 살가?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햇잖아. 이 신령한 몸을 가지고 어떻게 할가?

 

성찬에서 이런 뭐 루터교회 공제설 같은 건 짬뽕 속성이예요. 떡과 포도주가 고개 진짜 예수님의 피와 살이 살로 바뀐대는 거 아닙니가? 공동으로 거기 임재하신다는 거, 이 새빨간 거짓말이죠. 그러니까 그 뒤 말로 후손들이 어떻게 되겟어요? 로만 캐톨맄의 화체설은 이건 더 이상 말도 않 되는 거고. 포도주는 신부님들이 꿀떡 꿀떡 ‘야 니네들은 떡이나 받아라’ 요거 받기 전에 고해성사 잇나요? 몇 시간 동안 완전히 그냥 그 최고의 고문하는 거 아니야. 너 무슨 죄냐 이거 다 토로하고 뭐 믿음의 확증받은 뒤에야 떡 하나 먹으라고 메스가 그런 거 아니예요? 우상놀음이죠. 그리스도의 몸을 완전히 그냥 난도질해버리는 거예요. 그런 종자들이랑 우리 상대를 해요? 마귀새끼들보다 더한 자들과 어떻게 한 성찬을 나눌 수가 잇어요 다른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데.

 

똑바로 처신하셔야 돼요 우리. 비록 우리가 정말로 때론 범죄하고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지 못할지라도 우리가 믿는 고백, 배운 바 이것 땜에 이름 모를 수백 만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이 피흘려죽엇어요. 교회 원수들한테. 근데 오늘날은 교리 부정하는 시대예요. 꿩잡는 게 매인 시대예요. 성경을,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떠하심을 배우고 따르려고 하지 않고 어떤 사람, 어떤 교회 외형을, 세상과 그 안에 잇는 것을 사랑하는 그런 추세로다가. 우리 그러한 심리 잇엇다면 통회의 은혜를 구해서 참 완전히 다 사함받고 확신을 가지고 영광스러운 몸, 영광스러운 피에 참여해서 주께서 정말로 펼쳐나가시는 하나님 나라 일에 힘찬 일꾼들이 되길 바라겟어요.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키라 그랫죠? 이제 우리가 정녕 주님과 한 몸을 이뤗다면 바울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말 처럼 우리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지니고 잇나 살펴보세요. 그 흔적, 스티그마[στιγμα] 는 지워지지 않아요 이거는요. 다시 무슨 뭐 정형외과 수술한다고 그 팍 찍어버린 이건 없어지지가 않아요.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이미 우리 다 몸에 지니고 잇잖아요? 그 숱한 이단, 그 숱한 더러움들, 불경건, 우상숭배, 이 모두가 성육신, 부활, 이 예수 그리스도와 참된 연합을 모르는 데서 발생하는 궁극들이예요.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부활하신 뒤에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들려주신 말씀 잇잖아요? “세상 끝날 까지 함께하시겟다” 지금도 물론 말씀들을 때 함께 하시지만 피와 살에 참여하는 것 가운데 함께하신다니깐요. 우리가 무슨 뭐 부부가 연합한 비밀이 크다고 말햇잖아요? 그건 그림자 같은 이야기고. 남녀 합일된 이런 건 정말 헛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성도와 그 연합을 본질로 말한 거 아니예요? 바로 이게 성찬에서 다시 한번 맛보게 하신다니깐요. 기도드리겟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신격과 성찬 가운데 임재하시며 우리에게 베푸시는 새 언약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도리를 우리가 다 어찌 알겟사옵나이가?

주님의 말씀을 배움과 주님의 뒤를 좇는 가운데 점점 알아가게 하시고 확신에 이를 수 잇도록 하시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벗어나서 망상 가운데 빠지지 않도록 하시고 주님의 말씀의 제정에 범위를 넘어서서 그 사람들이 획책해놓은 것에 영합하지 않도록 또한 지켜주시옵소서.

말씀이 머무는 곳에 머물고 말씀이 가는 곳 까지 가게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앙망하게 하시고 더욱 사랑하도록 하시옵소서.

이 교회 가운데 오늘 마흔 네 번째 성찬에 주님께서 마련하신 것을 앞두고 우리가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신 것에 대해서 몇 가지 살펴보앗습니다.

이 도리에 대해서 우리 점점 깊이 알아가도록 해주시고

또한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목표는 얼마나 높고 험난한지 알게하사 이번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과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으로 말미암아 힘을 베풀어주시고

이 교회가 더욱 영화롭게 되게 하시며 주님과 사귀는 기쁨과 풍성한 능력이 어떤 것인지를 피차 나눌 수 잇도록 하시옵소서.

주여, 이 교회에게 참된 이 표지를 두신 것을 정말 감사하옵나이다.

형식이 되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우리 몸으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하시옵소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임자님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그 사랑과 거룩하신 그 신의 그 사귐이 우리 모두와 함께. 아멘.

 

[장운철 입력 / 20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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