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박영(韓國의 匠人들(2)/ 弓矢匠 김박영 氏 ; 활-先祖 숨결 깃든 3500番의 손질 ; 다듬고 붙이고 풀어주고…ꡒ野生馬 길들이 듯 精誠 들여야 名弓 誕生ꡓ) [記事] : 대개 인간이 만들어낸 물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보하지만, 어떤 물건은 진보가 필요없을 만큼 애초 완벽하다. 우리 활이 그렇다. 고구려 안시성 성주 양만춘(梁萬春)이 당 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을 패퇴시킨 그 활, 맹렬히 날아가 적장(敵將) 왼쪽 눈을 관통한 화살을 잉태한 모체(母體)가 어찌 더 정확하고 빠를 수 있으랴. 그토록 완벽한 모양새와 쓰임새를 유지하는 것만도 쉽지 않은 일. 궁시장(弓矢匠) 김박영(71) 씨는 그 활을 오늘날까지 만들어내는 장인(匠人)이다. 그 스승 김장환(85년 작고) 선생, 증조부 때부터 5대째 내리 물려받은 기술이다. 동이(東夷)라는 말에서 보 듯 우리 민족은 활 잘 쏘는 민족이다. 올림픽 때마다ꡐ전 종목 석권ꡑ하는 양궁 금메달 소식은 괜한 게 아니다. 그러나 활은 이제 무기로서의 수명을 다했다. 서울 사직공원 뒤편 황학정에서ꡐ건강 레포츠ꡑ로 쏘는 활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일요일 낮마다ꡒ준비하시고… 쏘세요!ꡓ하는 되바라진 구령에 동원되는 것도 활이다. 옛날 불덩이를 달고 날던 화살이 이젠 일확천금을 달고 색색깔로 빙글빙글 도는 과녁을 향해 날아간다. 궁시장 김씨에게 처음 연락한 건 화요일이었다. 그런데 그는,ꡒ토요일에야 만날 수 있다ꡓ고 했다.ꡒ어딜 다녀오실 계획이냐ꡓ했더니, ꡒ주중에는 너무 바빠 손님을 들이지 않는다ꡓ고 했다.ꡒ찬바람 불 때 활을 붙여야 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무척 바쁘다ꡓ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찾아간 게 토요일이었다. [각궁은 사정거리 300m나] : 공방은 경기 부천 심곡동 산자락에 있었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좁은 비탈길을 오르니ꡐ성무정(聖武亭)ꡑ이란 활터가 나왔다. 활터 한 켠에 세 평 남짓한 그의ꡐ부천 공방ꡑ이 있었다. 공방 안에 들어섰을 때 그는 다 만든 것 같은 활을 무릎으로 누른 채 두 손으로 구부렸다 폈다 씨름하고 있었다.ꡒ모양을 다 갖춘 활에다가 숨을 불어넣는 겁니다. 야생마를 길들이는 것과 같은 작업이지요. 균형도 맞춰야 하고, 모양도 잡아야 하고….ꡓ그는 이 작업을ꡐ해궁(解弓)ꡑ이라고 가르쳐주었다. 활(弓) 모양을 갖췄다고 다 된 게 아니라, 풀어줘야(解) 비로소 활이 된다는 설명이다.ꡐ활을 어른다ꡑ고도 한다.ꡒ왜 우리 활이 세계 최고인데 수출이 안되는 줄 아세요? 보관했다가 쏘려고 꺼낼 때마다 해궁을 해줘야 하는데, 외국 사람들은 그 걸 할 수 없는 기라. 대만 사람들도 사가더만은 얼러서 쓰질 못하더라구요.ꡓ김씨가 만드는 우리 활 이름은ꡐ각궁(角弓)ꡑ이다.ꡐ맥궁(貊弓)ꡑ이라고도 한다. 물소뿔이 들어갔다고 해서 각궁이라 하고 맥족, 즉 고구려 민족의 활이라고 해서 맥궁이다.ꡐ국궁ꡑ이란 말은 양궁(洋弓)이 들어오면서 생긴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기록상 각궁은 삼국시대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당서(唐書)에ꡐ각궁ꡑ이란 말이 나오고, 고구려 산상왕 26년(서기 222년)부터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첨단 소재로 만든 양궁에 비해 사거리가 훨씬 길다. 양궁에서 사대(射臺)와 과녁 거리는 최대 90m인데, 국궁은 145m로 55m나 멀다. 게다가 화살이 날아간 뒤 잔여 충격을 활이 전부 흡수해, 손에 전달되는 충격이 거의 없는 활이다.ꡒ각궁 특징이 힘이 좋고 멀리 날아간다는 겁니다. 각도까지 조절해서 쏘면 300m까지도 날아갑니다.ꡓ사람이 손으로 잡아당겨 쏘는 화살이 300m까지 날아간다니, 정말 그럴까 싶었다. 박세리가 티샷한 골프공이 굴러가는 것까지 평균 260야드(234m)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거리다. 그런 딴 생각을 하고 있는데 김씨가 표정을 읽었는지ꡒ옛날엔 1000m 가까이 쏠 수 있는 활도 있었다ꡓ면서ꡐ옛날 이야기ꡑ를 한 토막 들려줬다.ꡒ신라 문무왕 때 구진천(仇珍川)이란 사람이 있었어요. 이 사람이 만든 활이 천보대궁(千步大弓)입니다. 천보나 날아간다는 거지요. 그래서 당 고종이 구진천을 당 나라로 불러 천보대궁을 만들라 했는데,ꡐ재료가 다르다ꡑ면서 30보짜리를 만들었어요. 신라에서 재료를 갖다줬더니ꡐ바다 건너오면서 재료가 상했다ꡑ면서 60보짜리를 내놓았어요. 그래서 당 고종이 목을 쳐죽였답니다.ꡓ활 만드는 이는 함부로 손을 놀릴 수 없다는 뜻도 담고 있는 것 같다. 그는,ꡒ아무리 기록을 찾아봐도 활 잘 쏘는ꡐ명궁ꡑ은 많은데, 활 만드는 사람은ꡐ구진천ꡑ과 삼국시대ꡐ내마신득(奈麻身得)ꡑ이란 사람 밖에 없습니다.ꡓ내마신득은 포궁(砲弓)을 만들어 성곽에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무형문화재 김장환 씨가 스승] : 김씨는 1929년 경북 예천군 예천읍 왕신동에서 태어났다.ꡒ당시 예천에서는 집집마다 활을 만들다시피 했다ꡓ는 게 김씨 설명이다. 선친도 활을 만들었기 때문에 어깨 너머로 자연스레 활과 친해졌다. 그러나 선친은 45년 해방과 함께 활 만드는 일을 접었고, 48년 작고해 활 만드는 일을 더 배울 기회가 없었다.ꡒ한 동안 셔츠 만든다고 옷감 짜는 기계 일을 했지요. 그 때 서울 서대문에 있는 공장에도 왔다갔다 했는데, 활이 항상 눈에 선합디다. 어려서 보고 자란 게 그 거여서인지는 몰라도…. 그러다가 김장환이란 분을 알게 됐지요.ꡓ김장환 선생은 71년 국가에서 궁시장 첫 지정 때 무형문화재로 뽑힌 사람이다. 65년 여름, 김씨는,ꡒ부천에서 활 만드는 사람을 구한다더라ꡓ는 소리를 듣고 서울에 올라왔다.ꡒ밤차 타고 물어물어 부천까지 왔는데 아침 10시가 넘었어요. 그 땐 여기가 다 복숭아밭이었지. 내 얼굴 보자마자 대뜸ꡐ밥 먹었느냐ꡑ고 하기에ꡐ못 먹었다‘ 하니까 밥 한 그릇 주고는 그 때부터 일을 시키는 거야.ꡓ스승 김씨는 처음부터 줄톱으로 물소뿔 켜는 일부터 시키더란다.ꡒ활 만들어 본 적 있다고 했더니, 아마 시험해 본 모양이더라ꡓ고 했다. 한 달을 그 밑에서 일하는데 몇몇 이상한 일들도 벌어졌다. 스승 김씨는 김박영 씨 일하는 방에 마이크를 설치해 놓고, 일하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ꡐ도청ꡑ을 했다. 집안에 일부러 돈을 흘려놓고 어떻게 하나 보기도 했단다.ꡒ뭐라고 푸념을 하니까 다들 마이크를 가리키면서 입술을 가려요. 그래서 내가ꡐ××하고 있네ꡑ하고 마이크에다 대고 욕을 했지요. 돈도 떨어져 있기에 다 주워서 갖다 줬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제자 자질이 있나 없나 시험해 본 거 같애.ꡓ그렇게 한 달 꼬박 일하니까,ꡐ마이크ꡑ도 없어지고 스승 김씨가,ꡒ뭐든 자네가 알아서 하게ꡓ하면서 모든 걸 맡기더란다. 선생이 작고한 뒤로는 그 아들 기원 씨와 김박영 씨, 그리고 김씨 수제자 김기원 씨 셋이 각궁을 만들었는데, 묘하게도 김 선생 아들 기원 씨는 88년, 김씨 수제자 김기원 씨는 98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김박영 씨만 지난 96년 중요무형문화재 47호로 지정돼 우리 활 맥을 잇고 있다. 김씨는 궁시장이지만 화살은 못 만든다. 무형문화재 지정을ꡐ궁장ꡑ과ꡐ시장ꡑ으로 나누지 않기 때문에ꡐ궁시장ꡑ칭호를 얻었다. 대신 화살만 30년 넘게 만들어온 나기완(46) 씨와 함께 20여 년 일했다. 인하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막내아들 윤경(29) 씨가 최근 가업을 잇겠다고 아버지를 돕고 있다. 얼핏 대나무를 깎아 휘어놓은 게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각궁은 8가지 재료로 만들어진다. 활의 가운데 부분은 대나무, 줌통(손잡이) 부분은 참나무, 양쪽 끝에는 뽕나무를 이어 붙인다. 활 안쪽에는 소 힘줄을, 활 바깥에는 물소뿔을 붙인다. 화피(樺皮․벚나무 껍질)는 모양을 다듬고 방수 역할을 하는 마감재이고, 시위가 닿는 부분에는 쇠가죽을 덧댄다. 이 모든 재료를 붙이는 풀은 민어부레를 세 시간 넘게 끓여 만든 천연 접착제다. 소 척추에서 빼내는 힘줄과 민어부레는 그리 많이 나오는 재료가 아니어서ꡒ활 하나에 소 세 마리, 민어 수 십 마리ꡓ라는 말도 있다. 1년에 70장(張)쯤 만드는데, 한 장 만드는데 3500번 정도 손길이 간다고 한다. 풀칠만 해도 같은 자리에 15번쯤 하는데, 워낙 풀칠하는 곳도 많고 깎고 다듬는 일도 잦기 때문이다. 한 장만 집중해서 만든다 해도 서너 달은 걸린다는 설명이다. 옛날 방법으로 하다 보니 한꺼번에 여러 장을 만들 수는 있어도 절대 시간은 줄이기 어렵다. 그는ꡒ붓으로 물 10되를 발라 마를 정도가 돼야 활 하나가 완성된다ꡓ고 했다. [전통 재료보다 나은 것 없어] :ꡒFRP인지 그 강화플라스틱이란 거 있잖아요. 그거 못써요. 접착제도 그렇고. 더 나은 게 있으면 재료를 바꿀 텐데 전통 재료보다 나은 게 없으니 옛날 방식대로 만드는 게지요.ꡓ깎고 다듬는 도구들도 전부 구식이다. 궁창(활을 대고 모양 만드는 도구), 디짐(활을 둥글게 하는 나무틀), 두루자(활 모양을 고정할 때 쓰는 나무토막) 같은 도구들이 모두 생소했다. 끌 비슷한 자구(활 깎는데 사용)와 줄칼 모양 환(활 다듬을 때 사용)도 모두 쇠막대를 사다가 직접 만든 도구다. 쇠뿔을 녹여 펼 때 쓰는 구형 전기화로가 제일 ꡐ신식ꡑ이었다.ꡒ힘든 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정신적으로 고통을 많이 받지요. 활 하나를 만들어도 깎고 풀칠하는 일을 수 십 수 백 번씩 반복하고 기다리고 해야 하니까요.ꡓ이렇게 만든 활은 펴놓은 길이가 122~123cm 밖에 안될 만큼 짧다. 폭은 2.5cm, 무게는 50g 정도로 아주 가볍다.ꡒ취미 삼아 국궁하려고ꡓ 많이 사간다는데,ꡐ보통ꡑ은 하나에 50만 원,ꡐ작품ꡑ은 최하 100만 원이다. 94년인가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 넘긴 활은 길이 165cm로 큰 활이었는데 300만 원 받았다. 1년 내내 재료 구입하고, 겨우내 만든 활은 3월부터 새 주인을 찾기 시작한다.ꡒ돈은 못 벌어요. 돈 벌려고 하는 일도 아이고.ꡓ그는,ꡒ막내아들이 대를 이어 궁시장이 됐으면 하느냐ꡓ는 물음에 아들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ꡒ지가 안한다면 안시켜요. 하기 싫으면 절대 못해요. 누구라도 배울 사람 있으면 오라고 하세요.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다 됩니다.ꡓꡐ射有似平君子 失諸正鵠 反求諸其身(활쏘는 것은 군자의 도리와 같으니 정곡을 맞히지 못하면 돌이켜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구하라).ꡑ 중용(中庸)에서 이른 말이다. 활과 평생을 살아온 김씨의 마음가짐이 늘 그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한현우 週刊部 記者 週刊朝鮮 2000.01.27 62~64쪽)
김박영(無形文化財ꡐ弓矢匠ꡑ김박영 氏) [記事] : 중국 고문헌에 따르면, 우리 민족은 옛부터ꡐ동이(東夷)ꡑ라 일컬어졌다 한다.ꡐ동쪽의 활 잘 쏘는 민족ꡑ이란 뜻이다. 문명과 이기(利器)가 발달하면서 활의 쓸모는 자리를 잃고 말았지만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오는 이가 있으니, 부천의 궁시장(弓矢匠) 김박영(71) 씨가 그 주인공이다.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을 일컫는ꡐ궁시장ꡑ은 전국에 3명 뿐인데, 그 중에서도 활 전문가(弓匠)로는 김씨가 유일한ꡐ적자(嫡子)ꡑ다. 본래 고향이 경북 예천인 김씨가 복사골에서 활의 맥을 잇게 된 데는 사연이 있었다.ꡒ선친도 궁장이었지만, 난 서른이 다 될 때까지도 다른 사업에 손을 댔어요. 그런데 무슨 일을 해도 취미에 맞지 않는 거야. 결국 6.25 직후에 활 만드는 친척 형님 일을 돕다가 부천(당시 소사읍)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 자원했지요. ꡓ당시 이 곳에서는 고(故) 김장환 궁장이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그 덕택에 71년 궁시장은 국가로부터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받기에 이르렀지만, 그는 84년 75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설상가상으로 전수자이던 아들도 88년 교통사고로 횡사해, 결국 김박영 씨가 대를 잇게 됐다. 김씨가 만드는 것은 우리 활 중에서도 유일하게 부천에서 제작․계승되고 있는 각궁(角弓). 쇠뿔을 써서 만드는 각궁은 고구려 산상왕 26년(서기 197~220년)때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ꡒ곧게 펴진 양궁(洋弓)과는 달리 우리 활은 둥그렇게 말려들어간 모양의 반곡궁이예요. 활을 쏘지 않을 때는 시위를 풀어놓아 탄력이 죽지 않도록 하는 비결이지요.ꡓ김씨는 그래서 우리 활은 죽은 물건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했다. 대회 규정에 나와있는 사(射)거리만 보더라도 양궁이 90m인데 반해, 국궁은 145m에 이를 정도로ꡐ성능ꡑ이 월등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ꡐ천하의 명물ꡑ답게 재료만도 동식물성 8가지가 절묘하게 섞여 들어간다. 뽕나무, 참나무, 대나무, 쇠뿔, 소의 힘줄이 한데 어울려 활의 몸체를 이루고, 접착제로는 민어 부레를 끓인 풀을 쓴다. 그리고 방수 효과와 미관을 위해 화피(벚나무 껍질)로 마무리한다.ꡒ활 한 장에 소 3마리가 들어가는 셈이죠. 활 양쪽에 쇠뿔 두 개가 나란히 들어가고, 또 안쪽에는 소 등심줄 두 개를 덧대야 하니까 말이지요.ꡓ활을 만드는 데는 1년 4계절을 고스란히 바쳐야 한다. 봄에 갖은 재료들을 장만한 뒤, 여름 내내 이 것들을 자르고 불에 구부리고 삶는 과정을 거친다. 추석이 지난 후 찬바람이 일고서야 본격적인 공정에 들어가는 활 만들기는 이듬해 정월 말쯤 끝이 난다. 매일 아침 공방에 나와 활 재료를 매만지는 김씨는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정좌한 채로 일에 몰두한다. 한창 때는 숙식을 공방에서 해결하기 일쑤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불을 밝혀야 할 때도 있다.ꡒ눈으로 가늠하고 손으로만 다듬는 작업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사심없이 일에만 몰두할 수 있는 정신력이 필요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서는 그만한 인내력을 찾아보기 힘들지요.ꡓ
그래선지 김씨로서는 누구라도 배우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가르쳐 줄 생각이지만 지원자가 드물다. 지금은 부산 출신의 전수 장학생 1명과 막내아들이 문하에서 활만들기의 맥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을 뿐.ꡒ천직이라 생각합니다. 활과 씨름하고부터 지금껏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으니까.ꡓ40년 외길 인생을 회고하는 김씨의 목소리에서는 오랜 세월을 이기고 난 대가 특유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묻어났다.(전병근 記者 朝鮮日報 2001-05-18)
김박영(ꡐ弓矢匠ꡑ無形文化財 47號 김박영 氏) [記事] : 2005년 5월 5일 경기 부천시 소사구 심곡본동 성주산 기슭의 활터인 ꡐ성무정ꡑ(聖武亭). 일제시대부터 궁사(弓士)들이 활쏘기를 즐겨온 이 곳에는 마디 굵은 손으로 40년 동안 묵묵히 전통 활을 만들고 있는 장인이 있다. 국내 유일의 궁시장(弓矢匠)인 중요 무형문화재 제47호 김박영(金博榮․76) 씨. 김 씨는 이 날도 11일부터 열릴 경기도 체전에 참가하는 부천시 국궁 대표선수 한광인(54) 씨의 활을 수리해주고 있었다. 한 씨의 활 몸체에 민어 부레(접착제)로 붙여놓은 소 힘줄(등심)의 이상 유무를 꼼꼼히 살펴본 뒤 활을 180도로 접었다가 펴는 동작을 반복했다.ꡒ동물 및 식물성 재료로만 만드는 전통 활은 충격을 스스로 흡수하기 때문에 인간의 몸에 전혀 무리를 주지 않아요. 활 쏘는 사람 치고 허리 굽은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ꡓ성무정 1층에 자리 잡은 5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활 수리를 마친 김씨가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전통 활 칭찬을 시작했다. 그는 ꡒ화학 물질로 만든 양궁은ꡐ죽은 활ꡑ이어서 전통 활보다 사(射) 거리가 짧다ꡓ며,ꡒ시위를 당겨보지 못한 사람은 연하고 부드러운 국궁의 맛을 도저히 알 수 없다ꡓ고 말했다. 전통 활의 사 거리가 140m인데 반해 일본의 대나무 활은 30m, 양궁은 70m에 불과하다는 것. 그가 만드는 각궁(角弓․뿔 재료가 들어가는 전통 활의 한 종류)의 재료는 대나무, 참나무, 뽕나무, 벗나무 껍질(화피), 물소 뿔, 소 힘줄, 민어 부레, 쇠가죽 등 8가지다. 1개의 활이 탄생하려면 이들 재료를 깎고, 다듬고, 말리는 6개월 과정을 거쳐야 하며 3000번 이상의 손길이 간다고 한다. 그는 고구려시대 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이같은 활 제작법을 사용하고 있다. 활의 품질을 위해 찬바람이 돌 때만 만드는데 보통 1년에 50여 개를 제작한다. 이렇게 만든 활은 60만 원~200만 원에 팔린다. 활 제작 철이 아닐 때는 외부 강연에 나선다. 7, 8일엔 활박물관(부천시 원미구 춘의동)에서 제작 시연을 펼칠 예정이다. 2004년 12월 개관한 이 곳엔 그가 만든 예궁(궁중에서 사용되던 것), 정양궁(과거시험 용), 고궁(말 위에서 쏘는 활) 등 여러 형태의 활이 전시돼 있다. 그는 고향인 경북 예천에서 올라와 부천에 정착한 1965년부터 성무정을 떠나지 않고 있다. 궁시장으로서 첫 중요 무형문화재(1971년 지정)로 지정됐으며 그의 스승인 고(故) 김장환 선생도 일제시대부터 이 곳에서 활을 만들었다. 아버지 대에 이어 활을 만들고 있는 김씨는 막내아들을 전수 장학생으로 삼고 있어 3대째 가업을 이끌고 있다. 김씨는,ꡒ끈기 있는 사람이 활을 배우기 위해 공방에 찾아오면 언제든 제작 기술을 무료로 가르쳐주고 싶다ꡓ고 말했다.(박희제 記者 東亞日報 2005.5.6 (금) 21:52)
김박영(金博榮) : 공예가/ 출생 1929년 12월 20일 (만81세) | 뱀띠, 사수자리/ 출생지 경북 예천군/ 경력 : 1996 ~ 중요무형문화재 47호 궁시장 궁장기능보유자 지정, 1993 ~ 대만 국제전통공예전 출품/태국 국제공예대전 출품, 1965 ~ 故 김장환 선생께 궁시장 사사, 1959 ~ 궁시장 전수입문(daum 2011)
김박영 : 문화재 뉴스 - 궁시장 김박영/ 자연스럽게 활 만드는 일도 별 볼일 없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활 만들기 외길로 40여 년을 살아온 궁시장 김박영 옹에게 활은 생명이었고 단순한 기술 이상의 자기 수양과정이었다. ‘궁시장’은 나의 천직이요… 경기 부천시.../ blog.naver.com(daum 2011)
김박영 : 활을 만드는 重要 無形 文化財. 김박영 翁. 1년간 季節別 作業 거쳐야 활.../ 2009/05/27 07:26 | 조회수 183/ 김진수 통합검색/ ★ 50년째 활을 만드는 重要 無形 文化財. 김박영 翁. 1년간 季節別 作業 거쳐야 활 誕生" ▲50년째 활 만드는 김박영 할아버지여름엔 대나무 굽고 가을·겨울엔 살 붙이고 1개에.../ club.paran.com(daum 2011)
김박영 : 김박영 씨의 활 제작/ 김박영 씨의 활 제작/ 내용 김박영 씨(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의 활 제작 목록 | Copyright 2000-2006 Korean Overseas.../ photo.korea.net(daum 2011)
김박영 [專門資料] : 심가래를 짓는 김박영 보유자/ 국립문화재연구소 | 국립문화재연구소(daum 2011)
김박영 [專門資料] : 부천 성무정 공방에 있는 김박영 보유자의 점화장/ 국립문화재연구소 | 국립문화재연구소(daum 2011)
김박영 [專門資料] : 대림목을 밟으며 해궁을 하는 김박영 보유자/ 국립문화재연구소 | 국립문화재연구소(daum 2011)
김박영 [專門資料] : 완성된 각궁을 잡아 당겨 보는 김박영 보유자/ 국립문화재연구소 | 국립문화재연구소(daum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