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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과 맛집 소개

‘척척’ 맞는 마음으로 담아내는 남도의 맛

작성자hkjceo|작성시간09.05.28|조회수40 목록 댓글 0

‘척척’ 맞는 마음으로 담아내는 남도의 맛

목소리 높아도 싸우는 일 없는 목포 자매들

전라도 사투리와 목포산 해산물이 생동하는 서울 논현동의 ‘목포자매집’. 바삐 돌아가는 도심의 번다함을 잊고 남도 바다의 진한 갯내에 젖어들 수 있는 곳이다. 해남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자란 세 자매는 서울땅에서 전라도 음식을 판다. 별 양념 없이도 그 자체로 맛난 회처럼 세 자매의 우애는 무엇도 간섭할 수 없는 단단한 힘이다.  


점심 손님을 치르고 다소 한가해진 오후 4시, 목포집 자매들은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콩국수 한 사발씩 앞에 놓고 서로 더 먹으라고 성화다.

“긍게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다니께.”

전남 해남 만석꾼의 9형제 중 맏이로 태어난 백송님(64) 씨의 말이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데, 동생 백송남(53) 씨가 거든다.

“주위 사람들이 다들 부러워하제. 이 집은 우째 장사함서 쌈도 안 허냐고. 언니가 이해심이 많아서 그라제. 우리는 특별나게 잘사는 형제도, 못사는 형제도 없어요. 누가 ‘뭉치자’ 그러면 지금도 잘 뭉쳐부러.”


뭉칠 땐 잘 뭉치지만 일에 있어서는 제 몫에 충실하다. 첫째 백송님 씨와 셋째 백송이(58) 씨는 주방, 다섯째 백송남 씨는 홀을 맡는다. 여덟째 남동생과 그의 부인, 백송이 씨의 딸도 식당 일을 거들고 있다. 가족들은 수시로 백송이 씨의 목포 바닷가 집에 내려가 김치와 젓갈류를 담그고 보관해둔다. 해산물은 백송이 씨의 남편이 목포에서 직매한 것을 당일 오전에 고속버스로 공수해온다.

‘서울에서 식당하면 돈 많이 번다’는 말만 믿고 전업주부였던 백송님 씨와 백송남 씨는 식당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백송이 씨를 담보로 겁도 없이 강남 한가운데 터를 잡았다. 식당 자리를 구하고 식당 근처에 옹기종기 집을 마련했다. 훗날 안 사실이지만 지금의 가게 터에서 성공한 예가 없었단다.

줄줄이 망해나간 터에서 목포자매집은 8년째 승승장구하고 있다. 2002년 문을 연 이후 장사가 잘 돼 한때 분점까지 냈다.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 자매들 대신 단골들이 홍보활동을 해주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제대로 된 남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귀한 식당이라는 후한 평이 줄을 잇는다. 제철을 맞은 민어회 한 상 차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남짓. 백송남 씨가 민어를 썰자 백송님 씨는 바로 옆에서 밑반찬을 담는다. 젊은 조카는 회를 찍어먹을 소스를 만들고, 재빠르게 식탁에 나른다. 곧이어 여덟째 올케가 짱뚱어탕과 공기밥을 내온다. 한 사람인 양 손발이 척척 들어맞다. 

“각자 맡은 역할은 다르지만 우리는 다 할 줄 알아요. 손이 부족하면 서로 도와주니께 금방 금방 하제.”

이제는 ‘조금 덜 벌더라도 조금 더 쉬자’며 돌아가면서 한 달에 열흘은 쉰다는 세 자매에게는 돈보다 사는 재미가 더 중하다. 취재 당일, 곧 환갑을 맞는 남편을 위해 셋째 백송이 씨는 목포에 내려간 상태였다.

“사람들이 이렇게 잘 쉬는 집은 처음 봤다케.(웃음)”

확실한 분업과 철저한 이익 배분으로 목포자매집은 8년째 성업 중이다.


식당과 집만 오가며 살아온 세 자매는 여전히 서울이 낯설다. 사투리도 전혀 고치질 못한다. 가족이 온종일 붙어 있으니 고향에서 살 때랑 다를 바가 없다. 그렇지만 지겨울 새도 없다.

“힘들 때는 고도리 치재.(웃음) 한 번은 누가 신고를 해서 법원까지 갔당께. 판돈 3만3천 원 때문에 즉심에 넘어가부렀어. 그래도 계속 쳐.(웃음)”

동업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원수지간으로 만든다는데, 세 자매는 오히려 우애가 깊어졌다.

“편한 게 더 많애. 남이면 안 해줄 일도 해주고, 남이면 못 맡길 일도 다 맡아주잖애. 우리는 돈 관계가 특히 정확혀. 월말에 딱 계산해서 10원짜리 하나도 확실히 나눈당께. 그니까 서운할 일이 뭐가 있겄어요?(웃음)”

사진 촬영이 시작되자, 배추 속 같은 웃음이 서른 평 가게 안을 꽉 채웠다.

“큰언니. 안 웃을랑가?”

“나가 사진을 안 찍어봐서 그라제.”

“그래도 역시 우리 언니가 제일 예쁘당께.”

세 자매의 우애는 배려의 또 다른 변형이었다. 잘못을 이해하고 입장을 배려하면 싸울 일도 도와줄 거리가 된다는 것을, 3인 4각이지만 발맞추어 나가면 쓰러질 일이 없다는 걸 ‘허벌나게’ 잘 보여주었다.


/ 여성조선
  취재 장세영 기자 | 사진 안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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