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사퇴의 변
2018년 10월부터 제5기 서울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한 이상희는 2년의 임기를 마치지 못한 채 오늘 사퇴하고자 합니다. 서울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으로서 무책임한 결정을 하여 서울녹색당 3200여명의 당원님들과 서울운영위원님, 그리고 서울녹색당 사무처에 죄송할 따름입니다. 정치인으로서 부족한 사람이 역할을 맡고, 임기도 마치지 못해 죄송합니다.
저는 창당멤버로 녹색당을 만나고, 서울로 삶터를 옮겨 지난 5년간 긴밀하게 녹색당 활동을 했습니다. 개인의 생활과 일의 균형이 없는 저에게 녹색당은 제 삶의 1순위였습니다. 희망이라곤 없는 한국에서 이 작은 정당, 녹색당이 저에겐 희망이었습니다. 녹색당 활동을 하는 것으로 지금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자원이 부족한 정당이지만, 정당이기에 사회적으로 요구받는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많은 활동가들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녹색당에 요구되는 비정기적 사안들에 대응하고, 당의 인지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의제에 대한 토론과 당내 교육체계 마련, 지역당 강화 등은 후순위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원들과, 아니 당직자 내부에서조차 우리가 지향하는 녹색의 정치를 이야기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이 부족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의 부재는 능력이 뛰어난 소수에게 당내 역할이 집중되는 결과로 이어졌고, 시민들의 일상의 정치를 만들겠다는 녹색당의 정치적 지향과 동떨어진 현재였습니다. 저에게 희망의 정치공동체인 녹색당에서 지향한 사회의 변화가 실현되기를 바라며, 작은 역할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개인적으로는 버거운 역할인 서울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겠노라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최근 당내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갈등상황으로 여름이 지나 겨울을 앞둔 지금까지 긴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과달성을 이유로 함께 일하는 사람을 도구로 대하는 위계적 관계, 명백한 물리적 피해에 대한 사과요구에도 오히려 스스로의 명예훼손을 운운하는 일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놓을 수 없는 희망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절망스러웠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녹색의 정치를 말하고 있지만, 약자의 고통에 침묵하는 상황은 지난 5년간 경험하지 못했던 낯선 시간이었습니다.
희망이란 절망보다 힘이 센가 봅니다. 고통과 절망의 목소리는 쉽게 지워지고, 헛된 희망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부풀게 하는데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희망을 말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고통의 목소리는 쉽게 지워졌습니다. 고통의 목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조차 없던 일처럼 대하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일상이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통의 당사자마저 이것은 고통이 아니라고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식사를 할 수 없는 등 신체가 호소하는 증상에도 사람들의 침묵과 가해자에 대한 옹호는 피해자 스스로 고통을 말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녹색당이라는 공동체가 자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선한 마음들이 오히려 고통 받는 사람을 고립시켰습니다. 고통의 목소리를 들었던 당신마저 그 고통을 외면하고, 심지어 사람이 아닌 ‘기술직’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우리가 만들고자 했던 희망이 무엇이었는지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환호하는 이것이 희망이라면 저는 그 희망에 함께할 수 없었습니다.
정당은 지향하는 사회변화를 위해 조직, 홍보, 정책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운영되는 조직입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원외정당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원들과 정책을 논의하고, 정치하는 시민으로 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정당시스템을 구축하기보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적 기획이 우선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조직 내부만이 아니라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요구하고 기대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혹여 균형 있는 조직체로서의 정당운동이 여전히 필요하다면, 지난 몇 개월간 녹색당 주요당직자들과 활동당원들에게 듣고 경험한 세계는 그 기대와 달랐습니다. 저는 서울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직을 맡고 있지만 정당의 생존에 무지한 아마추어였습니다. 정당의 도약을 위한 전략적 기획에 무능하고, 고통 속에서 고립되었던 저는 더 이상 정당활동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피해자로만 저를 규정하지 않겠습니다. 저 역시 이 갈등과정에서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었습니다. 해결을 위한 과정은 보이지 않고, 제가 전하지 않은 말들로 서로를 갈라서게 하는 일은 제가 겪은 고통보다 더 큰 고통으로 전해졌습니다. 저로 인해 고통 받고 괴로움을 겪은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지난 5년간 제가 말과 글로 지은 무거운 업은 제가 할 수 있는 책임을 지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당직을 맡은 후 두 번의 선거를 치르며, 녹색당은 많이 성장했고, 그 어느 때보다 대내외적으로 녹색당의 인지도와 기대가 높아졌습니다. 더욱이 정치의 부재로 고통 받고 있는 현장과 사람들을 생각하면 내년 총선에서 녹색당은 성과를 만들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성과에 대한 몰입만큼이나 함께 일하는 동지들을 돌보고, 잘못된 규정을 바로잡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시기에 녹색당이 말하는 희망의 과정에 서울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으로서 역할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2019년 11월 12일
이상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