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화. 석작, 기어이 대의멸친하는가.
정나라 공자 여(呂)는 송군이 장갈로 떠나버리자, 정군을 양 숲속에
매복시켜 놓고는, 태연히 창을 들고 신정 성문을 열고 나갔다.
위군의 대장 석후야! 어서 나오너라!
나. 정나라 공자 여와 한번 겨뤄 보자!
허 허. 이 많은 연합군에 덤벼들다니?
아주 겁도 없구나!
석후야. 너는 출중한 무예가로 소문났더구나!
우리 단둘이서만 무예를 겨뤄 보면 어떻겠느냐?
좋다. 단신이라면 더욱 좋다.
어서 가까이 오라!
공자 여(呂)는 수십 합을 겨뤄도 승부가 나지 않자, 유인할 목적으로,
말을 돌려 매복조가 있는 쪽으로 후퇴했다. 그때 석후(石厚)가
따라오지 않자, 그만 신정(新鄭) 성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공자 여가 패하고 달아났다!
자! 승전고를 울려라 !
이때 주우는 갑자기 승전고를 울리는 뜻을 알지 못해, 급히 석후에
다가가 물어보았다.
상 대부 석후는 대승을 거두지도 못했는데
어찌 서둘러 승전고를 울리는가?
주공, 송나라가 저렇게 말도 없이 떠나버렸으니
나머지 네 나라 군사력은 너무나 약합니다.
정나라 군사는 원래 강군입니다.
마침, 정나라 공자 여가 달아났습니다.
이 정도의 승리로 만족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주공, 지금 국내 사정이 불안하온바,
주공께서 자리를 너무 오래 비우게 되면,
내란이 일어날까 두렵사옵니다.
아 하. 깜박 잊을 뻔했구나!
자 빨리, 서둘러 귀국하도록 하자!
위군은 더욱 힘차게 승전고를 울려라!
석후가 스스로 공을 세웠다면서 승전고를 울리자, 주우는 송나라가
떠나 불안했으므로 회군 명령을 내렸다. 이에 바깥이 소란하더니
노(魯), 진(陳), 채(蔡) 3국의 장수들이 쫓아왔다.
위군(衛軍)의 승전을 축하합니다!
이번에 정장공도 많이 혼났을 겁니다.
송(宋)나라도 떠났는데 어떻겠습니까?
우리도 돌아가도 괜찮겠는지요?
노, 진, 채는 체면상 참전했으므로, 찾아온 3국 장수들이 칭찬하며
돌아가길 원하자, 주우도 회군할 마음이었으므로 쾌히 승낙했다.
그렇게들 하시지요!
귀국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이번 전쟁은 불과 5일 만에 끝났다. 석후는 위군의 군사들에게 모두
의기양양하게 힘차게 개선가를 부르면서 귀국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주우가 민심을 달래기 위해 전쟁까지 일으켰다는 걸 알게 된
위나라 백성들은 더욱 인정하지 않으면서 따르지도 않는 것이었다.
이거 정말, 큰일이로다!
우리가 정나라를 굴복시켰다는 것을
백성들이 믿지 않으며 따르지도 않다니?
상 대부 석후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주공. 백성들은 저의 부친이신 석작을
예전부터 모두 믿고 잘 따르고 있습니다.
상경 석작께서 도와준다면 얼마나 좋겠소!
석작을 불러낼 방법이 있겠소?
주우는 귀한 백옥 한 쌍과 함께, 쌀 500석을 석작(石綽)에 보내면서,
조례에 나와 달라면서, 간곡하게 부탁했다.
아버님! 소자를 좀 도와주십시오!
많은 예물을 왜 거절하십니까?
몸이 아파 조례에 나가지 못하니
돌려보내는 건 당연하지 않으냐?
주우는 나라를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버님. 어찌해야 백성에게 인정받겠습니까?
좀처럼 민심이 가라앉지, 안 사 오니!
아버님께서 좀 도와주셔야 하겠습니다.
집을 도망쳐 나간 놈이 어디서 큰소리냐?
주우는 형을 죽인 나쁜 놈이다!
앞으로 아버님을 잘 모시겠사오니
소자의 낯을 봐서라도 재상직을 맡아주십시오.
나는 이미 많이 늙어버렸다!
더욱이 불편한 몸으로 어찌 정사를 보겠느냐?
아버님, 그러시다면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이라도
한 말씀 꼭 부탁드립니다.
백성들로부터 꼭 인정받아야 하겠느냐?
아버님, 그래야 국정을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그때 석작은 하루빨리 주우를 몰아내고, 새로운 군주를 세워야만,
위(衛) 나라가 안정된다면서, 이를 위해 계책을 고심하던 중이었다.
석작은 아들 석후가 찾아오는 것도 거절했었으나, 이제 여러 생각을
정리하다가, 백성에게 인정받을 방안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어느 나라든 군위를 이어받아 인정받으려면,
왕실의 승인을 받는 것이 의례란 걸 아느냐?
예에, 그건 알고 있사옵니다.
왕을 알현하면, 왕께서는 제후의 예복과
면류관과 수레를 하사하신다.
그리되면, 왕명으로 인정받은 제후가 되었는데
백성인들 어찌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아버님, 좋은 말씀을 해주시어 고맙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상을 알현할 수 있겠습니까?
허 어, 그런 것까지 알려줘야겠느냐?
아버님, 기왕이면 자세히 가르쳐주십시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버님, 무슨 말씀인지요?
주우는 형을 죽이고 군위에 올랐다.
만일 왕께서 선군이 어떻게 세상을 떠났냐고
물으신다면, 난감해질 수 있지 않겠느냐?
이를 잘 넘겨야, 왕실의 인증을 받을 수 있도다.
아버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으음, 그렇다면 가까운, 진나라를 찾아가거라.
진나라는 원래부터 왕실과 사이가 좋으니
진환공(陳桓公)을 찾아가 부탁해 보아라.
이 말을 전해 들은 주우는 진환공이 연합군으로 가담해 주었으므로,
믿을 수 있다면서, 구슬과 비단 등의 많은 예물을 싣고 찾아갔다.
석작은 주우가 떠나자, 진나라 재상 자겸(子鎌)에, 진환공의 결심을
반드시 받아내, 시행해 주길 바란다는 뜻을 혈서로 썼으며, 이를
단단히 밀봉하고, 가신 누양견(獳羊肩)을 시켜 급하게 떠나보냈다.
자겸께 꼭 부탁하는 바이오!
주우와 석후는 주군을 시해한 반역자들이오 !
반드시 붙잡아 처형해 주길 간곡히 부탁하오 ?
진나라 재상 자겸은 어릴 적부터 석작과 함께 동문수학하며, 서로
막역한 사이가 되어있었다. 자겸은 석작의 서신을 받자, 신중히
생각해 보고는, 진환공과 의논해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자겸! 석작의 말이 사실이겠소?
주공, 석작이 혈서로 쓴 편지이오며
석작은 꾸미거나 거짓말할 사람이 아닙니다.
주공, 가까운 위(衛)나라의 악행을 그대로 넘기면
장차, 우리 진(陳)나라에도 번질 수 있사옵니다!
주공, 위나라 상경 석작의 말대로 반드시 죽여!
천하의 본보기로 삼아야 합니다!
두 사람이 우리 진(陳)나라로 이미 오고 있습니다.
어찌 죄를 묻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진(陳)나라 조상은 하(夏) 왕조의 순(舜)임금이었으나, 나쁜 아들
상균(商均)으로 인해 제사가 끊기면서 상(商) 왕조까지 이르렀었다.
주무왕이 주나라를 세우면서, 순(舜)임금의 후손 중에 호공(胡公)
규만(嬀滿)을 찾아내, 순(舜)임금의 제사를 잇도록 해주었다.
호공 규만은 도공(陶工)으로 그가 만든 도자기 그릇은
백성들의 생활에 아주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이에 주무왕(周武王)은 호공 규만을 치하하면서, 딸 읍강(邑姜)을
아내로 맞이하게 해주고, 후작(侯爵) 작위까지 내려주면서,
완구(宛丘) 일대를 봉지로 삼아, 진(陳) 나라를 세우게 했었다.
진환공(陳桓公)의 동생 공자 타(佗)는 주우와 석후가 찾아오자,
반갑게 맞이해 객관에 머무르도록 공손하게 안내했다.
안녕히 잘 주무셨습니까?
친절히 보살펴 주시어 고맙소이다.
진공(陳公)께서 태묘에서 뵙자고 합니다.
아니, 어찌 조상의 위패(位牌)를 모시는
태묘(太廟)에서 만나자는 것입니까?
하하, 우리 태묘(太廟)에는 선조들의 많은
도자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지요!
또한, 주요한 분과 이야기 나눌 때는
비밀(祕密)스럽게 태묘(太廟)에서 접견하십니다.
주우와 석후가 공자 타(佗)의 안내를 받아 태묘에 당도하자, 그때
재상 자겸(子鎌)이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이하며 인사했다.
두 분께선 어서 오십시오!
이제부터는 이 자겸이 안내하겠습니다.
자겸임! 아니, 이 큰 팻말은 왜 서 있습니까?
충성치 못한 자와 불효한 자는
이 태묘에 들어가지 말라니요?
이 팻말을 세운 뜻이 무엇입니까?
그저 우리 선군께서 남기신 교훈입니다.
우리 선군께서 충성과 효도를 잊지 않기 위해
이곳에 큰 팻말을 세우시고 제사를 올렸습니다.
진(陳)나라 공자 타佗)는 따라온 위군(衛軍)을 자연스럽게 태묘 밖에
머무르도록 분리해 놓고, 두 사람만 태묘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주우와 석후는 태묘에 들어가자, 아름답고 기묘한 도자기들을 한동안
구경하다가, 손님 자리에 앉아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이때 진환공이 들어오자, 주우는 예물 목록을 바치면서, 홀(笏)을
손에 들고 예를 올리면서 조용히 무릎을 꿇으며 절을 올렸다.
진나라 태묘는 신성한 곳이다!
어찌 불충한 자가 이곳에 들어왔느냐?
이때 별안간 자겸이 고함지르자, 숨어있던 힘센 갑사들이 몰려나와
일순간에 주우(洲吁)와 석후(石厚)를 결박 지었다. 이에 두 사람은
엉겁결에 반항도 못 하고. 묶인 채 꿇어앉게 되었다.
하늘이 두 사람에게 벌을 내리게 했노라!
위나라 군사들은 그냥 돌아가도록 하라!
주우와 석후는 그제야, 석작이 진나라에 의뢰해 처벌하려는 계책을
짐작하게 되었다. 자겸은 편지를 사자에게 주면서, 밤낮으로
달려가 석작(石綽)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주게 했다.
석작께선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이, 자겸이 오랜만에 소식 전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주우는 복읍(濮邑)에 가둬놨으며
석후는 도성 안의 옥에 있소이다!
위군(衛軍)은 살려 보냈으며, 석후는 귀공의 하나뿐인
아들인바, 둘 다 죽이지 못하고 있소이다!
석작은 진나라 재상 자겸의 편지를 받자, 대부 우재(右宰) 추(丑)와
가신 누양견(獳羊肩)을 진나라 완구(宛丘) 성에 보내면서, 반드시
참수 장면을 지켜보고 돌아오게 했다.
두 사람은 진나라 도성인 완구에 당도하자,
먼저 진환공을 알현하고, 반란자들을 대신
체포해 준 일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렸다.
대부 우재(右宰) 추(丑)가 복읍(濮邑)에 이르러 주우(洲吁)를 시정의
한가운데로 끌고 나오게 하며, 목을 치려는 순간이었다.
아니, 너는 나의 신하가 아니더냐?
어찌 감히 너의 주군을 범하려 드느냐?
내가 자기 군주를 시해한 자를 모르겠느냐?
내가 그를 본받아 죽이려 하는 것이다!
주우가 큰소리쳤으나, 대부 우재 추의 커다란 답변에 주우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면서, 머리 숙여 참수당했다. 그때 완구성(宛丘城)
옥에서 석후를 끌어내, 참수를 집행하는 자리에 누양견이 참석했다.
누양견! 나의 죄는 죽어 마땅하나?
부친을 꼭 한 번 뵙고 형을 받으면 안 되겠소?
부친의 명을 받들어 반역도를 죽이러 왔도다!
기어이 부친을 뵙고자 한다면
너의 목을 가져가 상면시켜 주마!
석후가 아저씨처럼 따르던 가신 누양견에 말했으나, 그는 주저하지
않고, 허리에 차고 있던 자신의 긴 칼을 뽑았다.
대부 우재 추와 가신 누양견은 진환공과 재상 자겸에,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돌아왔다.
대부 우재 추는 수고하셨소!
조당의 신료들을 만나러 갑시다.
모든 대부는 잘 들어주시오!
이것이 진나라 재상 자겸의 편지요!
이제 주우와 석후는 참수당했소!
이 모두 위나라 종묘사직을 위하는 일이었소!
상경님, 석후는 재상의 하나뿐인 아들이라!
살려 둘 수도 있었지 않았겠습니까?
허나, 주우의 반역은 모두 내 자식이 꾸민 일이었소!
이 석작도 반역을 막지 못한 무능함을 한탄하오.
그저 위환공의 혼령께 사죄할 따름이오!
중신들의 뜻을 모은 석작은 형(邢) 나라에 망명해 있던 공자 진(晉)을
모셔 오게 했다. 공자 진(晉)은 비명에 죽어간 형 위환공(衛桓公)을
위해 제사 올리고, 보위에 올라 제15대 위선공(衛宣公)이 되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쓴 좌구명(左丘明)은 공(公)과 사(私)를 잘
구분한 석작(石綽)에 크게 감명받으면서, 대의(大義)를 위해 자식도
돌보지 않은 대의멸친(大義滅親)이란 말로,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야욕만으로 형을 죽이며 군주가 된, 주우(洲吁는
백성들이 인정해 주지 않음으로써 죽임을 당했다.
큰일에는 대의(大義)와 인덕(仁德)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