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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학기

3주차 [SFC 역사] 후기

작성자이지은|작성시간26.06.08|조회수12 목록 댓글 0

고신 교회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는 바로 “신사참배 거부”라 할 수 있다. 나는 고신 교회가 처음부터 뜻이 다른 기존 교단과의 분리에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강의를 들으며 그런 내 생각의 오류를 발견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사실 자발적으로 분리한 것보다 쫓겨난 것에 가까웠다. SFC의 역사에 앞서, 고신 교회의 역사에 관해 배우면서 마주한 충격적 사실이었다. 먼저 이 점을 짚으며 이번 강의를 요약하고자 한다.
신사참배의 실상은 국가를 신으로 섬기는 군국주의 종교의식이다. 역사적으로도 신사참배는 우리나라의 민족성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지탄받았지만, 기독교인으로서 타협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그러나 일제의 총칼 앞에 많은 기독교인들은 무너졌고, 각 교단의 총회에서 신사참배는 국가 의식이라며 정당화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신 교회 선배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이런 과오를 뒤로 하고, 해방 이후 한국 교회는 조직을 재건하는 등 재정비 기간을 거쳤다. 그러나 신앙적 잘못에 대한 회개는 배제된 상태였다. 이에, 감옥에 갇혔던 출옥 성도들은 신사참배에 대해 회개할 것을 장려하며 교회 재신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등장한 ‘고려파 운동’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회개를 요구하고, 미래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신학교를 설립하자는 신학 운동이었다. 하지만 출옥 성도 중 일부는 배교한 사람들과 함께 갈 수 없다며 아예 따로 교회를 만들었다. 이들이 ‘재건파’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으나, 예수님은 베드로가 스스로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한 것처럼 교회도 죄를 회개하고 함께 가도록 해야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회개할 것을 요청했으나, 신사참배를 가결했던 사람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고, “절차상 무효”를 주장했다. “절차상 하자가 있기 때문에”로 치부하며 회개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문제 제기를 하자 기성교회는 이들을 축출하기에 이르렀다. 쫓겨난 사람들이 1952년에 진주 성남교회에 모여 새로운 노회를 조직한 것이 바로 고신 교단의 뿌리이다. 이것이 고신 교회의 출발이고, 한국 교단의 첫 분열이다. 이것은 분리주의가 아니라 엄밀히 말하자면 끊임없는 회개 요청에 결국 쫓겨난 것이다.

나는 처음에 고신 교단의 뿌리에는 “우리는 신사참배에 거부했고, 그것에 동의했던 사람들과 함께 갈 수 없어”라는 재건파적 면모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깊이 살펴보니, 고신 교회의 선배들은 끊임없이 교회의 과오에 대한 회개를 요구하며 함께 가기를 원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우리가 지금까지도 시대의 아픔을 두고 회개해야할 이유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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