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 5월, 미리 걸어보는 연둣빛 일렁이는 숲길의 서울둘레길 5코스 관악산 코스는 사당역에서 출발하여 관악산, 삼성산을 거쳐 석수역에 이르는 구간이다. 관악산에는 등반을 위한 산행 코스가 많지만 서울둘레길은 관악산 자락을 따라서 걷는 코스로 자연경관이 훌륭하고 곳곳에 역사문화유적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어 볼거리 또한 풍부하다. 대부분의 구간이 숲길로 되어 있어 비교적 난이도가 있는 편이지만 서울의 산림자연환경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코스이기도 하다.
사당역~관음사~무당골~전망대~낙성대공원~새실쉼터~서울대~관악산입구~물레방아~돌산갈림길~보덕사~약수암위 헬기장~삼성산림쉼터~삼성성지~삼거리(관악산둘레길)~호압사~잣나무산림욕장~벽산아파트~호암산폭포~신선길~시흥계곡~불로천약수터~석수역
관악산 관음사다, 관음사는 관악구 남현동 관악산 북동 기슭, 남태령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예로부터 서울 근교 사찰 가운데 영험있는 관음 기도도량 중의 하나였다. 관음사는 1943년 이후에 쓰여진 '봉은사본말사지'에 의하면 신라 진성여왕 9년(895) 도선대사가 세운 비보사찰 중의 하나라고 전한다.
관음사 대웅전이다. 조선 초기에 쓰여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변계량이 관음사의 절경을 읊은 시가 수록되어 있어, 이 무렵까지 관음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영조 때 쓰여진 '여지도서'에도 관음사가 보인다. 예로부터 관음사 아래에 있는 승방벌이라는 마을과 그 앞에 승방교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관음사는 작은 규모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철종 14년(1863) 8월에 행념이 당시 철종의 장인인 영은부원군 김문근의 시주를 받아 다시 고쳐 지었다. 1975년에 중창을 발원하여 7년여 동안 여러 건물을 차례로 중수하였다.
서울둘레길 5코스 관악산 코스는 시작부터 코가 닿을 듯한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무당골이다. 무당골은 무당들의 기도터였다. 무속신앙에서는 우주만물과 그 운행에는 각각 그 존재와 운행질서에 상응하는 기운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무속신앙은 범우주적이고 자연적인 신관과 신앙체계를 갖추고 있다. 무당골은 우리나라 무속신앙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서울둘레길 관악산 구간의 조망대다.
서울 둘레길 길동무를 아시나요. 서울둘레길이 인연이 되어 매주 토요일 함께 동행하는 모임입니다. 제6기 100인 원정대가 끝나면 한번 인연을 맺어 봄이 어떨까요? ☞ http://cafe.daum.net/songjukgil
낙성대다. 관악산 북쪽 기슭 관악구 낙성대동에 위치한 낙성대는 고려시대 명재상이었던 강감찬이 태어난 곳으로, 성역화하고 공원으로 조성하여 시민에게 개방하고 있다. 그런데 강감찬의 본래 출생지는 지금 공원터의 동북쪽 약 100m 정도에 위치한 봉천동 19호 지역이다. 그가 출생할 때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이 생가터를 낙성대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1973년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강감찬 생가 일대를 성역화하여 길이 보전하라는 지시에 따라, 서울시에서 이곳 일대 약 1만평을 물색하여 이듬해 6월 10일에 준공하여 공원으로 지정하였다.
낙성대공원에서 토요일이면 전통혼례 예식을 볼 수 가 있다.
강감찬장군 동상이다. 여기서 조별 단체사진을 남겨 봄이 어떨까?
서울대학교다. 서울대학교는 1946년 10월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종합대학으로 개교, 1975년 이곳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악산을 찾을 때면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는 서울대학교 정문, 20년 전 아들이 공과대학에 합격 통보를 받고 아들과 함께 설례는 마음으로 들어섰던 기억이 있다. 서울대학교 정문 구조물은 국립 서울 대학교에서 각각 ㄱ ㅅ ㄷ 을 따서 조립한 형상이다. 국립서울대학교의 약자, 거대한 세모골의 정문은 국립서울대학교를 가장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조형물이다. 지난 1975년 서울대학교 종합캠퍼스가 신림동 현 위치에 건설되면서 서울대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된 정문은 당시 미술대학 학생의 도안에 기초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국립서울대학교의 머릿글자인 'ㄱ' 'ㅅ' 'ㄷ' 의 형상을 본떠 디자인한 것으로 전체적으로는 열쇠를 상징한다. 지난 2006년 개교 60년주년을 맞아 정문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기존의 개나리색에서 밝은 은회색으로 색을 바꾸고 정문 주변에 밤새 점등되는 조명을 설치하여 공적인 교육공간의 느낌을 표현함과 동시에 24시간 깨어 있는 학문의 전당이라는 서울대의 이미지를 담아냈다.
관악산공원이다. 높이 629m의 관악산은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 중의 하나로 예로부터 수도 서울의 방벽으로 이용되어왔다. 최고봉은 연주봉이며, 서쪽으로 삼성산과 이어진다. 기반암은 화강암이며, 전사면은 비교적 가파르다. 본래 화산이라 하여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화기를 끄기 위해 경복궁 앞에 해태를 만들어 세우고, 이 산의 중턱에 물동이를 묻었다고 한다. 연주암·용마암·자왕암·자운암·불성사 등의 암자가 곳곳에 자리 잡고있다.
관악산 두 번째 스탬프 거치대가 있는 관악산입구다.
서울둘레길 5코스는 삼성산구간으로 들어선다. 높이 481m의 삼성산은 관악구, 금천구와 경기도 안양시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 원효, 의상, 윤필의 세 고승이 677년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수도에 전진하던 곳이 삼막사의 기원이며, 이 세 고승을 지칭해 '삼성산'이라 칭했다는 설에서 산 이름이 유래하였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둘레길 좌우로 장승이 서있다. 장승은 돌이나 나무에 사람의 얼굴을 새겨서 마을 또는 절어귀나 길가에 세운 푯말을 말한다. 주로 10리(약 4km)나 5리 간격으로 설치하여 이정표 구실을 하거나, 마을의 수호신 역활을 하기도 했다고 하며,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나무 기둥이나 돌기둥의 상부에 사람의 얼국 형태를 소박하게 그리거나 조각하여 2개를 한 쌍으로 제작하는데, 한쪽 기둥에는 ‘천하대장군’, 다른 기둥에는 ‘지하여장군’이라고 글씨를 새겨 넣고 남녀가 마주 서 있도록 설치하였다고 한다. 이곳 둘레길에 설치된 장승들은 지난 2011년 7월에 발생한 집중호우로 쓰러진 나무들을 활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관악산둘레길의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관악산을 지키는 든든한 수호신의 역할을 하라는 의미를 담아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한차례 힘겨운 테크 계단길이 이어진다.
그리고 만나는 우수조망명소, 서울대학교와 관악산 정상인 연주봉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다. 이곳에 오르면 잠시 쉬면서 관악산의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여기서 조별 사진을 남겨보자.
돌산갈림길이다.
삼성산 보덕사를 통과하고 있다.
윤길 묘다. 서울대~호압사 구간을 걷다 보면 승정원 좌승지를 지낸 윤길의 묘를 만날 수 있다. 무덤 앞에 그의 일생과 업적을 기록한 비석이 있다.
근처에는 묘지를 지키는 호랑이 바위가 있다. 윤길의 아버지와 4형제가 있는 김포의 천등산을 향하고 있는 이 바위는 400년이 넘도록 윤길의 묘를 보위하고 있다.
서울둘레길 약수암위 헬기장을 통과한다. 조금 벗어나 있는 곳에 약수사가 있다. 약수암은 악수암이라고도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직할 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로 창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어느 때인지는 모르나 김처사라는 사람이 초가삼간을 짓고 수도하던 것이 절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 후 1880년(고종 17년)레 명성황후가 법당을 건립하면서 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솟대구간이다.
삼성산 산림쉼터다. 하늘을 치솟는 메타세콰이어 숲이 더욱 아름답다.
삼성산 성지다. 삼성성지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군문효수의 형을 받고 순교한 앵베르 주교와 모방신부, 샤스턍 신부가 1843부터 묻혀계신 곳이다. 본래부터 삼성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던 이곳은 세 분의 순교성인이 묻힘으로써 명실 공히 삼성산의 품위를 갖추게 되었다. 새남터에서 순교한 세 순교자의 시신은 사흘 동안 버려져 있다가 한강변 모래톱에 묻혔고, 몇몇 교우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유해를 거두는 데 성공해서 임시로 노고산에 매장했다가 4년 후 박 바오로가 자신의 선산인 관악산 줄기 삼성산에 유해를 이장하였고, 그 사실을 아들인 박순집에게 알려 주어 후에 세 순교자의 유해를 명동 성당으로 모실 수 있었다. 1984년 세 순교자가 시성된 후 인근 부지를 매입해 성지를 조성하였고, 1992년 삼성산 본당이 신설되면서 성지를 관리 보존하고 있다.
이곳에서 관악산둘레길이 분기되는 지점이다. 예전에 서울둘레길이 개통되지 않았을 때는 이곳에서 관악산둘레길을 따라 신림동까지 이어 갔었다.
호압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로 1407년(태종 7) 왕명으로 창건되었다. 당시 삼성산의 산세가 호랑이 형국을 하고 있어서 과천과 한양에 호환이 많다는 점술가의 말을 듣고 산세를 누르기 위해 창건하였다고 한다. 호갑사 또는 호암사라고도 하였다. 조선 후기까지의 연혁은 거의 전하지 않고, 다만 1841년(헌종 7) 4월에 의민이 상궁 남씨와 유씨의 시주를 받아서 법당을 중창한 기록이 있다. 1935년 만월이 약사전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약사전과 요사가 있고, 약사전 내에 약사불과 신중탱화가 모셔져 있다.
호암산 삼림욕장이다. 전체크기 50,000㎡에 달하는 호암산 삼림욕장에는 다양한 쉼터와 피크닉장 등이 있어 가족과 함께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나무가 울창한 숲을 걸어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무에게 나오는 방향성 물질인 ‘피톤치드’ 때문이라고 한다. 피톤치드는 인체에는 무해하고 미생물을 죽이는 효과가 있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벽산아파트다. 과거 벽산아파트 일대는 ‘60년대 말 서울역 주변 정비로 이주민이 정착하면서 살던 달동네로 2000년 재개발로 주거환경이 개선되어 현재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호암산인공폭포다.
신선길을 만난다. 신선길은 시흥동 지역에서 기도를 올리던 장소로 유명하다. 우리 민속신앙에서는 하늘의 해와 달과 별, 땅 위에 산과 들, 바다와 계곡, 마을의 우물, 바위와 고목, 집안의 대들보와 부뚜막, 심지어 화장실과 굴뚝에까지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많은 돌탑이 쌓여 있는 신선길은 우리나라 민속신앙의 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길은 한우물과 서울 호암산성으로 연결되어 있다.
시흥계곡이다. 금천구 시흥5동 산77번지 일대 시흥계곡은 300,000㎡로 울창한 산림과 여름철 시원한 계곡이 있어 1980년대 소풍을 가던 장소로 유명 하였다. 2011년에는 자연생태형 계곡으로 복원하여 여름철 물놀이 장소와 생태체험학습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만나는 때죽나무 연리지다. 한나무와 다른 나무의 가지가 서로 붙어서 나무결이 하나로 이어진 것으로 화목한 부부나 남녀의 사이를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는 연리지, 둘레길 바로 옆에 있지만 무심코 지날칠 수 있으니 신선길 지나면서 찾아봄이 어떨까?
석수역이다.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남기며 헤여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