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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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의 강천산 기슭에 자리한 강천사는 신라 진성여왕 때인 887년, 풍수지리로 이름을 떨친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큰 사찰이다. 옛날에는 불전이 3개, 승방이 12개, 암자가 12개나 있었던 사찰로 특히 수도승이 많았던 절이라 한다. 그러나 6.25 때 완전히 소실되었고 1959년부터 복원이 이루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
| 개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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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있는 개암사는 나라에서 보물로 지정한 대웅전이 있는 절이다. 불끈 솟은 울금바위 아래 자리잡고 있는데다 단아한 산사의 풍치를 잘 간직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특히 시문에 능했던 기생 매창이 즐겨 찾았던 곳이라는 개암사는, 산문 밖 일주문에서 절로 오르는 길이 아름다워 가을 여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변한의 왕궁터였다는 곳답게 풍수도 제법 좋아 보인다. 부안에서 23번 국도를 타고 고창 쪽으로 9.5km 달리다 감교리 봉은마을에서 우회전해 2.4km 더 들어가면 아홉 번 굽는다는 "개암죽염"을 만드는 곳과 시원한 개암 저수지를 지나 "개암사"에 이르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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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화강암으로 받침거북을 삼고 십이지상으로 공포를 장식해놓아 절 분위기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일주문을 지나 200m 가량을 더 오르면 개암사 초입에 해당하는 부도밭에 이른다. 마땅한 주차장이 없어 부도밭 한켠에 세워둔 차량 몇 대를 지나 단풍나무가 주조를 이루고 있는 절길로 접어들자 환상적인 나무터널이 객을 반긴다. 굵은 냇돌이 박혀있는 절길은 짧지만 단숨에 절마당으로 이어지지 않고 느긋하게 허리를 틀 듯 굽어 있어 사람들에게 "여유"의 참멋을 일깨워준다. "절이 아름다운 곳은 산문 밖 일주문으로 오르는 길도 아름답다"던 누군가의 명언을 새삼 감탄하며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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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입구의 작은 돌다리를 지나 절 마당에 이르면 파란 하늘과 그 아래 우뚝 솟아 있는 울금바위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원하면서도 장중한 멋이 느껴지는 울금바위 아래로는 대웅보 전의 경쾌하면서도 날렵한 처마도 함께 보인다. 마치 두 팔을 벌리고 객을 반기는 듯 밝고 소박한 산사의 풍경에 취해 토담의 쪽문을 밀치고 들어가면 작설차를 끓이는 노승을 금방이라도 만날 것 같은 기분에 쉬 도취되고 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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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개암사는 백제 무왕 35년(634년)에 묘련왕사가 변한에 있는 궁전을 절로 고쳐 지을 때 묘암의 궁전을 묘암사, 개암의 궁전을 개암사라 부른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 후 40여 년 후인 통일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이곳에 들어와 중창했으며, 고려 충숙왕 원년(1313년)에는 원감국사가 순천 송광사에서 이곳으로 들어와 중창하면서 황금전, 청련각 등 30여동의 건물을 지어 대규모의 사찰을 이루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규모가 많이 축소돼, 가운데 축대가 가로놓여 있는 절안에 대웅보전, 응진전, 요사채, 그리고 역시 요사로 쓰이는 월성대 정도만 있어 한적한 편이다. 이 중 개암사의 본전인 대웅보전(보물 제292호)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각지붕 다포식 건물로, 건물 규모에 비해 우람한 기둥을 사용하고 있어 안정감을 주며, 공포의 외부조각이 힘있게 처리되어 있어 장중하다. 또 건물 내외부의 용두 및 봉화 등의 조각과 불단 위의 보개 등이 매우 화려해 세련된 느낌도 준다. 동시에 단청을 쓰지 않은데다 주변의 자연과 잘 어울려 개암사는 소박한 자연미까지 풍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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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개암사에서는 대웅보전 좌측에 있는 응진전의 부처님과 16나한의 재밌는 표정, 연화문로 장식을 한 동종(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6호),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는 지장보살 의 형상을 한 청림리 석불좌상(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3호), 보물 제1269호인 영산회쾌불탱도 빼놓지 말고 들러보아야 한다. 또 개암사 뒤에 있는, 옛날 변한의 유민들이 우진암이라 불렀던 울금바위도 볼 만하다. 개암사 뒤편 산길을 따라 30여 분쯤 걸어 올라가면 닿게 되는 울금바위에는 모두 세 개의 동굴이 있는데, 그 가운데 원효방이라는 굴밑 조그만 웅덩이에는 물이 괴어 신기하다. 전설에 의하면 원래 물이 없었으나 원효가 이곳에 수도하기 위하여 오면서부터 샘이 솟아났다고 하는데, 그곳에 서면 산아래 경치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 좋다. 이 울금바위를 중심으로 한 울금산성(지방기념물 제20호)도 백제 부흥운동을 폈던 사적지로로 유명해 들러보면 좋을 만한 곳이다. 입장료 : 없음 주차료 : 없음 문의 : 변산반도국립공원 관리사무소 (063)582-7808, 개암사(063)583-3871 |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 서울에서 승용차를 이용해 갈 때는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태인I.C로 진입한 뒤, 30번 국도를 타고 부안으로 접어든다. 개암사는 부안읍에서 변산 쪽으로 접어들지 말고 신기리, 가오리, 영전리를 거치는 고창 방면 23번 도로를 타면 된다. 가오리를 지나 십여 분쯤 달리면 오른쪽으로 개암사로 가는 길이 나타나는데, 이 길을 2.4km 정도 달리면 개암저수지를 지나 개암사에 닿게 된다. 절입구까지 도로포장이 잘 되어 있으나, 마땅한 주차장이 없어 일주문 앞 도로나 부도밭 앞 한켠에 차를 세워두고 올라가야 한다. | |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 호남선 기차를 이용한다면 신태인이나 김제역에 내려 부안행 시외버스를 타면 되고, 버스를 이용해 변산반도로 갈 때는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02-782-5551)에서 오전 6시 5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50분 정도 간격으로 운행되는 부안행 고속버스(3시간 30분 소요)를 타면 된다. 부안에서 줄포, 곰소를 거쳐 격포로 가는 군내버스를 이용, 개암사 진입로 입구에서 하차해 30분 정도를 걸어 들어가면 된다. 부안에서 개암사 진입로 입구까지 15분 정도 소요. 버스배차 간격은 30여 분. | |
| Comment | |
| 죽염의 기원지로 유명한 개암사는 사찰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조용해 누구에게나 정감을 준다. | |
| 귀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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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김제의 귀신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한다. 창건 당시에는 절 주변에 7~8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임진란 때는 이곳 귀신사에서 승병을 양성했다는 말도 있다. 귀신사에는 보물 제826호로 지정된 대웅전 외에 명부전 및 연화대석 장대석 등 유물들이 남아 있다. |
| 금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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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산사(金山寺)는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김제가 자랑하는 전북의 명산인 모악산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백제 때 창건된 사찰로, 후백제 때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해 유폐되었던 곳이고, 임진왜란 때는 대규모 승병 활동이 있어, 정유재란 때 큰 화를 당하기도 했던 곳이다. 최근 1986년 화재로 대적광전이 불탔으나 현재는 모두 복원되어 있다. 방등계단이 크게 조성되어 방등계단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이 있고, 국내 최대의 삼층 목조건물인 미륵전이 있을 만큼 유명한 미륵도량이기도 하다. 또 특이한 고목 벚꽃이 있어 봄이면 벚꽃 나들이를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주차장에서 금산사까지의 진입로는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또 정비도 잘 되어 있으며, 이 길이 모악산 등산의 초입이라 계절에 관계없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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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를 지나면서 금산사까지 이어지는 1km 남짓한 거리의 진입로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길이다. 곧게 뻗은 나무들이 보기에도 시원하고, 길 옆으로 "우리꽃길"을 조성해 벌개미취, 노랑꽃창포 등 우리 야생화 30여 종을 식재해 놓았다. 특히 길가에 드문드문 벚나무들이 있고 또 금산사 경내에도 벚나무들이 있는데, 다른 곳의 벚나무와는 사뭇 다르다. 이곳의 벚나무들은 워낙 오래된 고목들이라 형태가 특이한 것도 많고, 고목 중간중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곁가지에서 벚꽃이 피기 때문에 마치 커다란 분재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다른 벚꽃 명소들처럼 울창한 벚꽃을 볼 수는 없지만, 고목에서 피어나는 벚꽃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나름대로의 매력을 한껏 풍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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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따라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보제루를 차례로 지나면 미륵전 앞 넓은 공간을 만난다. 이곳이 금산사의 중심공간이다. 보제루를 지나면 정면으로 대웅전 격인 대적광전이 있고, 그 오른쪽으로 커다란 삼층건물인 미륵전이 있다. 미륵전과 대적광전 사이에 높게 조성된 방등계단이 보이고, 대적광전 왼쪽으로는 대장전이 있으며, 대적광전 앞으로 노주, 육각다층석탑, 석련대 등의 보물들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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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미륵전이다. 커다란 삼층 목조건물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삼층 법당이 아닌가 싶다. 내부는 층 구분 없이 통층으로 열려 있으며, 그 높은 공간을 거대한 미륵보살상 세 기가 꽉 채우고 있다. 가운데 자리한 불상이 가장 크고, 양쪽의 불상은 조금 작다. 높이는 약 8~9m 정도는 되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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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대적광전을 보고 방등계단에 오르게 된다. 대적광전 뒤편 계단을 오르면 되는데, 방등계단에는 오층석탑과 사리탑 그리고 적멸보궁이 있다. 사리탑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들어 있다고 하며, 이 연유로 사리탑 옆의 적멸보궁에는 다른 곳의 적멸보궁과 마찬가지로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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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광전 앞의 보물들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석련대(石蓮臺)와 육각다층석탑이다. 석련대는 그 위에 불상을 놓던 불상 좌대로 추정되는데, 규모도 크고 조각 수법이 화려하다. 육각다층석탑은 규모는 작지만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형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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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는 또 후백제의 시조인 견훤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패권을 꿈꾸던 견훤은 안동 싸움에서 왕건에게 크게 패한 뒤, 넷째 아들인 금강에서 왕위를 물려주려 하다가 큰 아들인 신검의 쿠데타를 맞는다. 신검은 아버지인 견훤을 이곳 금산사에 가두고 스스로 왕위에 올라 동생 금강마저 죽여 버린다. 견훤은 이곳 금산사에 갇혀 있다가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하여 왕건을 찾아가 항복하고, 아들 신검을 칠 것을 부탁해, 결국 후백제는 왕건의 손에 최후를 맞게 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이 아들에게 ?겨나고 결국 자신이 세운 나라를 파멸로 몰아가야 했던 견훤의 아픔이 이곳 금산사에 서려 있는 것이다. |
| 금산사에는 미륵전(국보 제62호)을 비롯하여 노주(보물 제22호), 석련대(보물 제23호), 혜덕왕사진응탑비(보물 제24호), 오층석탑(보물 제25호), 석종(보물 제26호), 육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 당간지주(보물 제28호) 등이 각각 보물과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입장료는 어른 2600원, 청소년 1700원, 어린이 1000원이며, 주차료가 2000원이다. | |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 금산사로 가려면 호남고속도로 금산사 나들목을 나서면 된다. 금산사 나들목을 나서면 바로 만나게 되는 712번 지방도로에서 좌회전한다. 이 712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곧 1번 국도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우회전하자마자 비스듬히 갈라지는 좌측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신호등이 없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좌측길로 접어들어 금산사 이정표를 따라가면 원평이라는 마을을 지나게 되는데, 이 마을을 지나 금산파출소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이 길이 전주까지 이어지는 712번 지방도로이다. 이 도로를 달리다가 금산사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해 들어가면 금산사 주차장이다.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경부고속도로 서울 궁내동 톨게이트에서 약 3시간 30분~4시간 정도 거리이다. | |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 금산사로 가려면 전주나 김제까지 가야 한다. 그러나 전주로 가는 것이 시간도 단축되고 편하다. 전주에서 금산사행 버스를 타면 약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김제에서는 약 50분 정도 소요. | |
| Comment | |
| 진입로가 아름답고, 사찰 내에도 방등계단을 비롯한 국보급 문화재가 많다. 시간을 내서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 |
| 내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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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관음봉 아래 자락에 안기 듯 자리한 능가산(봉래산) 내소사는 진입로 양쪽 전나무 숲이 아주 운치있는 가람으로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두타가 소래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그 후 중건중수를 거듭하다 조선 인조 11년(1633)에 청민선사가 중창하였는데 지금의 대웅보전은 그때 지어진 건물이다. 그후 1902년 관해선사가 중수하고, 만허선사가 보수하였으며, 1983년 혜산스님의 중창으로 지금의 대가람을 이루었고, 1986년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반경 500m 일원이 문화재보호구역(전라북도 기념물 제 78호)으로 지정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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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내소사가 간직하고 있는 문화재로는 대웅보전(보물 제 291호), 백의관음보살좌상, 고려동종 등이 있는데, 이 중 대웅보전은 빼어난 단청솜씨와 연꽃을 연속문양으로 조각한 화사한 꽃문살로 유명하다. 국내 제일의 후불벽화인 백의관음보살좌상과 고려동종(보물 제227호), 법화경 절본사본(보물 제278호), 영산회괘불탱(보물 제 1268호), 설선당과 요사(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 내소사 3층석탑(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124호) 등도 내소사에서 빼놓지 말고 들러 보아야 할 문화재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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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에서 30번 국도를 따라가다 격포, 모항을 지나 석포리 진서농협 특산물판매장 앞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2km 들어가면 내소사 입구인 일주문에 닿게 된다. 절 안 할아버지 당산과 한 짝을 이룬다는 할머니 당산(일주문 오른쪽)의 위용을 감상한 후, 일주문을 들어서면 천왕문에 이르기까지 600m 가량의 전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잘 자라 터널을 이룬 전나무 숲길에선 침엽수 특유의 맑은 향이 뿜어져 나와 속 시끄러웠던 도시의 번뇌를 잊게 한다. 빨리 걷기가 아까울 만큼 기분을 좋게 하는 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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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숲길이 끝나는 지점부터 천왕문 바로 앞까지 이어져 있는 왕벚나무 터널도 부처의 세계로 가는 마음을 가다듬게 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벚꽃이 필 무렵이면 환상적인벚꽃터널을 이뤄 사천왕문으로 드는 길이 피안으로 드는 길처럼 아름다워진다. 사천왕상이 있는 천왕문을 지나 세봉 등 능가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뒤를 둘러싼 경내로 들어서면 절 안은 야트막한 축대와 계단이 몇 차례 거듭되면서 조금씩 높아진다. 두 번째 계단을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만나게 되는 수령 1천년 된 나무는 입압마을의 할아버지 당산으로 거대하고 품격있다. 당산나무가 절 안으로 들어온 드문 예 중 하나로 눈길을 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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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경내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고려 시대의 동종이 걸린 범종각과 봉래루다. 보물 제277호인 고려 동종은 종신에 삼존상이 양각되어 있는 뛰어난 작품이고 봉래루의 주춧돌들은 있는 그대로에 꼭 필요한 손질만을 가해 천연덕스럽다. 또 봉래루를 지나 만나게 되는 대웅보전에선 화려한 공포와 퇴락한 단청, 연꽃과 국화꽃으로 가득 수놓인 화사한 꽃밭을 연상케 할 만큼 정교하고 단아한 꽃살문이 돋보이고, 절 안 한 쪽 구석에 있는 대숲으로 둘러싸인 해우소도 멋스럽다. 넉넉잡아 2시간쯤만 둘러보면 구석구석 정성이 밴, 고색창연하면서도 화려한 내소사의 아름다운 가람 풍경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입장료 : 어른 2,600원, 청소년.군인 1,300원, 어린이 700원 주차료 : 승용차 4,000원(당일), 이륜차 900원 문의 : 변산반도국립공원 관리사무소 (063)582-7807, 내소사 분소 (063)581-3082, 내소사 (063)583-7281 |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 서울에서 승용차를 이용해 갈 때는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태인I.C로 진입한 뒤, 30번 국도를 타고 부안으로 접어든다. 내소사는 부안에서 고창방면으로 23번 국도를 타고 15.2km를 가다 영전사거리에서 우회전, 30번 국도(10km)로 갈아탄 다음, 석포리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2km 달리면 닿게 된다. 또 부안에서 30번 국도를 타고 가다 변산, 격포, 모항을 지나 진서면 석포리 삼거리 내소사 입구에서 좌회전해 들어가도 된다. | |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 호남선 기차를 이용한다면 신태인이나 김제역에 내려 부안행 시외버스를 타면 되고, 버스를 이용해 변산반도로 갈 때는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02-782-5551)에서 오전 6시 5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50분 정도 간격으로 운행되는 부안행 고속버스(3시간 30분 소요)를 타면 된다. 내소사는 부안 시내버스터미널에서 곰소를 경유, 내소사로 가는 격포행 버스를 타도 되고, 격포 버스터미널에서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되는 내소사행 버스를 타도 된다. 또 부안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소사행 직행버스(오전 10시 15분 한 차례 운행)를 타도 된다. 부안에서 곰소를 거쳐 격포로 가는 버스는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내소사까지는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 |
| Comment | |
| 내소사의 압권은 일주문부터 천왕문까지 걸어 들어가는 600m의 전나무 숲길. 올곧게 하늘로 뻗은 n전나무 사이로 난 황톳길을 걸으면 사시사철 푸른 침엽수가 뿜어내는 청신한 향기에 속세의 때가 씻기는 듯하다. | |
| 내장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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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사(內藏寺)는 전북 정읍시 내장동, 국립공원이자 호남의 5대 명산중의 하나인 내장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내장사는 백제 무왕 37년(636년) 영은조사가 창건한 사찰로 본래 이름은 영은사였다고 한다. 그후 몇 차례의 소실과 중건을 거쳤으며, 한국전쟁 때 다시 불타버려 현재의 사찰은 1970년대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지은지 얼마 되지 않아 고찰의 풍모는 느껴지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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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과 내장사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단풍이다. 단풍은 내장사 입구에서부터 볼 수 있는데, 유명한 단풍터널은 내장사의 일주문을 지나 부도밭까지 이어지는 약 300m 정도의 길로 내장산 단풍의 백미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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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을 즐기며 내장사까지 가려면 좀 걸어 들어가야 한다. 상가단지와 매표소를 지나면 작은 계곡인 내장천을 따라 단풍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 30분쯤 걷다보면 왼쪽으로 연못이 하나 나오고 연못 가운데에 정자가 보인다. 이 정자가 우화정(羽化亭)으로 정자에 날개가 돋혀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원래 정자가 승천해 없어져서인지 현재의 정자는 새로 지은 것으로 연못의 운치를 제대로 살리지는 못하고 있다. 우화정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왼쪽으로 케이블카 승강장이 있다. 내장산 연자봉전망대(667m)까지 오르는 케이블카로 시간은 5분 정도 소요된다. 20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요금은 왕복 기준으로 어른 2500원, 어린이 1500원이다. |
| 케이블카 승강장을 지나면 바로 내장산 탐방안내소가 있고, 조금만 더 가면 내장사 일주문이다. 이 일주문을 지나면서 단풍터널이 시작된다. 수령 수십년에서 수백년에 이르는 단풍 나무가 하늘을 가려 터널을 만드는 곳으로 가을이면 붉은 당단풍으로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단풍터널이 끝나는 곳에 부도밭이 있다. 십여 개의 부도가 있는데, 부도밭 앞의 소나무가 일품이다. 늘씬하게 솟아오른 소나무로 단풍의 위세에 눌려 별 시선을 받지는 못하지만 멋진 자태를 지니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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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밭을 지나면 천왕문을 지나 작은 연못이 하나 있고 바로 정혜루(定慧樓)를 만난다. 옛 영은사의 범종루 역할을 했던 건물 같은데, 본래는 조선 세조 12년(1466년)에 지어진 건물이나, 현재의 건물은 1970년대에 복원된 것으로, 내장사의 건물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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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루를 지나면 대웅전, 명부전, 관음전, 극락전 등의 건물이 있다. 특징적인 것은 없어 보이고 관음전 안의 관음상이 정교하다. 금 도금을 입힌 십이수(十二手, 손이 열두개) 관음보살상으로 정교함이 돋보이고 또 창을 들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
| 내장사 부근에는 자연학습 탐방로를 개발해 놓았다. 내장사 앞에서 원적암, 벽련암을 거쳐 일주문으로 내려오는 일종의 삼림욕 코스인데, 산행을 하면서 내장산의 자연생태계를 공부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고 한다. 거리는 약 3.6km로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며, 탐방로 중 벽련암 부근에는 자연수목원을 개발중에 있다. | |
| 매표소에서 내장사까지는 약 3km 정도의 거리로 천천히 걸으면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매표소 부근에서 케이블카 승강장까지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는데(요금 편도 600원) 가능하면 걸으며 단풍이나 주변 경관을 즐기는 것이 좋다. | |
| 그외에도 매표소를 지나 왼쪽 골짜기를 500m 정도 따라가면 높이 18m 정도의 도덕폭포를 볼 수 있다. 또 내장사에는 조선동종(이조동종이라 하기도 한다)이라는 문화재가 있는데,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아 볼 수는 없다. | |
| 내장산 국립공원 입장료는 어른 2300원, 청소년 1300원, 어린이 600원이다. 이 입장료에는 문화재 관리비가 포함되어 있는데, 실제로 문화재인 이조동종은 숨겨 놓아 볼 수 없다. * 내장산 탐방 안내소 : (063)530-7777 | |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 내장사로 가려면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호남고속도로 정읍나들목을 나와 바로 만나는 29번 국도에서 우회전하여 정읍 방향으로 간다. 정읍 시내를 지나 계속 29번 국도를 타고 달리다가 내장산 이정표가 있는 49번 지방도로로 접어든다. 49번 지방도로가 갈라지는 길은 삼거리인데 29번 국도는 좌회전 길이고 직진하는 길이 49번 지방도로이다. 49번 지방도로로 들어서면 바로 삼거리가 나오는데, 어느 길을 택하든 내장산 입구에 이른다. 정읍나들목을 나와 정읍 방향으로 조금 달리면 사거리가 나오는데, 이 사거리에서 우회전해야 내장산길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이 이정표를 따라가도 되는데, 이 길은 정읍시내를 비껴가는 길로 다시 29번 국도와 만나게 되어 있다. 서울 경부고속도로 궁내동 톨게이트에서 약 3시간 30~4시간 거리이다. | |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 기차나 고속버스를 이용해 정읍까지 가야 한다. 정읍에서 내장산 입구까지 직행버스나 시내버스가 수시로 운행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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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장사는 단풍이 아주 유명해 단풍철이면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런데 이 단풍 관광에 문제가 있다. 대부분 중년 이후의 사람들이 관광버스를 이용해 오는데, 좋지 않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정말 조용히 단풍을 즐기고 싶은 사람은 어렵더라도 평일에 시간을 내거나 아니면 아예 이곳을 찾지 않는 것이 좋은 듯싶다. 상가단지에서도 나이트클럽이나 캬바레들이 꽤 있는데, 이런 시설들은 좀 멀리 떨어트려 놓는 것이 어떨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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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산탑사와 은수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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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마이산의 남쪽 사면에 탑사와 은수사가 있다. 마이산의 남부주차장에서 약 1.9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이산 탑사는 이갑용 처사가 쌓은 80여 개의 돌탑으로 유명하다. 돌탑들의 형태는 일자형과 원뿔형이 대부분이고 크기는 다양하다. 대웅전 뒤의 천지탑 한 쌍이 가장 큰데, 어른 키의 약 세 배 정도 높이이 다. 어떻게 이런 높은 탑을 쌓아 올렸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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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돌탑들은 1800년대 후반 이갑용 처사가 혼자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갑용 처사는 낮에 돌을 모으고 밤에 탑을 쌓았다고 한다. 이 탑들은 이제 10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아무리 거센 강풍이 불어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니, 그저 신기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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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사에서 약 300m 정도를 더 오르면 은수사가 있다. 탑사가 돌탑으로 워낙 유명하지만 사찰의 규모로는 은수사가 그래도 조금 큰 편이다. 이 은수사에는 이성계가 심었다는 청실 배나무가 있다. 배나무라고 보기에는 너무 크다 싶을 정도인 18m 높이의 커다란 배나무이다. 아직도 봄이면 배꽃이 활짝 피어 화사함을 내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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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실 배나무 주위에 놋쇠 그릇이 빙 둘러가며 놓여져 있는데, 이것은 유명한 거꾸로 솟는 고드름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탑사에 돌탑이라는 불가사의가 있다면 은수사에는 거꾸로 솟는 고드름이라는 불가사의가 있는 것이다. 그릇에 물을 담아 놓으면 겨울에 그 물이 얼어 고드름이 솟는데, 그 고드름이 하늘을 향해 자란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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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사의 대웅전 앞에는 큰 북이 하나 있다. 이 북을 세 번 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어 일요일이면 북을 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선다. 또 이 은수사는 마이산 숫마이봉 바로 아래에 있어 숫마이봉의 모습을 잘 볼 수 있으며, 바로 옆의 암마이봉에 구멍이 숭숭 나 있는 타포니 현상을 볼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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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탑사는 봄 벚꽃으로도 유명하다. 진입로 입구의 마이산 남부주차장에서 탑사 앞까지 약 1.9km의 길에 벚나무가 늘어서 있어 봄이면 벚꽃 잔치가 벌어진다. 이 기간에 이곳에서 마이산 벚꽃축제가 펼쳐지기도 한다. 마령면 동촌리의 남부주차장에서 탑사까지는 약 30분 정도 걸어 들어가야 한다. 입장료는 어른 14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600원이며, 주차료가 2000원이다. |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 마이산 탑사로 가려면 일단 진안으로 가야 하는데, 진안으로 가려면 부분 개통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이용해 무주 나들목까지 가는 것이 좋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의 비룡 분기점과 호남고속도로의 서대전 분기점을 잇는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의 남대전 분기점에서 연결된다. 서울에서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전을 지나 비룡분기점에서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를 타고 남대전 분기점에서 다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바꾸어 타면 된다. 이 고속도로를 타고 무주 나들목을 빠져나와 진안 이정표를 따라가면 진안에 닿게 된다. 진안에서 마이산 남부주차장으로 가려면 진안로터리에서 마령 이정표를 따라가야 한다. 마이산 이정표를 따라가면 마이산 북부주차장이다. 이리 가면 약 1.5km 정도를 걸어 마이산을 넘어야 탑사에 갈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 서울 궁내동 톨게이트에서 약 3시간 30분~4시간 정도 거리이다. 그렇지 않으면 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을 나와 화심을 지나 진안으로 가는 방법도 있고, 또 화심을 지나 소태정 고개를 넘어 49번 지방도로로 빠져도 남부주차장으로 갈 수 있다. | |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 일단 시외버스 등을 이용해 진안까지 간 후 진안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마이산 남부주차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 |
| Comment | |
| 시간이 날 때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 |
| 문수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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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의 문수산 중턱에 자리한 문수사는 신라의 명승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이다. 당나라로 건너가 청량산에서 기도를 거듭한 끝에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받고 귀국한 문수보살이 우연히 이 곳을 지나다가 산세가 당나라 청량산과 흡사하여, 문수산에 있는 굴 속에서 며칠간 기도하자 역시 문수보살이 나타나므로 이 곳에 절을 지었다 한다. 그러나 이 절의 창건 시기는 확실치 않다. 다만 조선 효종 4년(1653년)에 성오대사와 그의 제자 상유비구가 중건했고, 영조 40년(1764년)에는 신화와 쾌영화상이, 헌종 1년(1835년)에는 우홍화상이 다시 중건한 것은 사실인 듯싶다. 현재의 문수사는 지방 유형문화재 51호와 52호인 대웅전 및 문수전을 비롯하여 만 세루, 명부전, 한산전 등의 건물을 거느리고 있으나 그다지 큰 규모의 사찰은 아니다. |
| 문수사는 주변 경관이 아늑해 산사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숲을 이룬 산죽과 맑고 아담한 계곡이 정감 있고, 가을이면 단풍이 계곡을 물들이고, 겨울이면 소복히 쌓인 흰눈과 손잡고 그윽한 승경을 연출한다. 더욱이 아는 이가 거의 없으니 적막하리만큼 호젓한 분위기에서 풍광에 도취될 수 있다. 문수사 : (063)562-0502 | |
| 백련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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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덕유마을), 덕유산 중턱에 자리한 백련사는 신라 신문왕 때 백련선사가 숨어 살던 곳에 하얀 연꽃이 솟아나왔다 하여 절을 짓고, 백련암이라 했다고 전하는 고찰이다. 불교 전성기 때는 14개의 사암이 있어 구천인의 승려들이 도를 닦던 곳이어서 이 일대의 이름을 구천동이라 했다는 말이 전할 정도로 큰 사찰이었다. 문화재로는 매월당 부도(전라북도 유형 제43호), 정관당 부도(전라북도 유형 제102호), 백련사 금강계단(전라북도 기념물 제42호) 등이 있다. |
| 찾아 가는 길 | |
| 무주읍내-38km-구천동(국도 37호선) : 버스편 40분 소요 구천동-6km-백련사 : 도보 1시간 30분 소요 | |
| 선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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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운사(禪雲寺)는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선운산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이다. 백제 때 검단선사가 창건한 사찰로 당시에는 대찰이었으나, 정유재란 때 거의 소실되고 지금은 규모가 큰 사찰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절 내에 대웅보전, 만세루, 영산전, 명부전 등의 건물이 있고, 도솔암을 비롯한 네 개의 부속 암자가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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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동백꽃이다. 대웅보전 뒤 살짝 비탈진 언덕으로 수천 그루의 동백나무가 있어, 봄이면 화사하게 동백꽃을 피운다. 꽃이 가장 많이 피는 시기는 대략 4월 중순에서 말경. 물론 매해 기후가 조금씩 달라 동백꽃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주변 음식점이나 호텔에 전화로 물어보고 가는 것이 좋다. 선운사 동백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동백 명소에 비해 그리 월등히 아름답다고 볼 수는 없다. 더욱이 선운사 동백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울타리를 쳐 놓아 동백숲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그러나 선운사 동백은 미당 서정주와 가수 송창식의 아름다운 헌사로 다시 태어나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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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동구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디다 <서정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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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송창식> |
|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에서 또 송창식의 "선운사"에서 모두 선운사 동백은 애절한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 "선운사 동구"에서는 동백꽃이 막걸릿집 여자의 목 쉰 육자배기 가락으로 남았다고 했고, "선운사"에서는 내 맘처럼 슬픈 동백꽃을 보면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라 했다. 실제 선운사 동백보다 훨씬 아름답고 애절한 이미지를 노래하고 있다. 선운사 동백은 위대한 시인과 탁월한 가인에 의해 뚜렷한 이미지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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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분이 선운사 동백을 이렇듯 애절하게 느낀 것은 절 자체의 이미지도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선운사는 백제 때 지어진 고찰로 흔히 천년사찰이라 부르는 곳이다. 우리나라에는 천년사찰이 수도 없이 많지만, 이 선운사처럼 쓸쓸함을 주는 곳은 찾기 힘들다. 대웅보전의 기둥은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썼는데, 빛 바랜 단청이 그대로 쓸쓸함을 자아내고, 대웅보전 앞 돌계단은 거의 무너져 있어 쓸쓸함이 지나쳐 쇠락한 이미지까지 풍기고 있다. 절 자체가 하나의 유적 같은 느낌이다(물론 스님들의 거처인 요사는 새로 정비해 놓았다). 이 분위기가 선운사의 이미지이다. 이런 선운사 뒤의 동백꽃이 송이째 뚝뚝 떨어지니 애처롭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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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는 동백 말고도 볼거리가 많다. 봄철 동백에 이어 피는 진입로의 벚꽃이 아름답고, 도솔암으로 가는 길가에 피는 여름 상사화와 가을 단풍, 그리고 겨울 설경도 아름답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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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선운사에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곳이 부도밭이다. 부도밭이야 큰 사찰에 가면 어디나 있지만, 이곳 선운사 부도밭은 곧고 울창한 숲속에 들 어앉아 있어 아늑하기 그지없다. 숲의 규모가 크진 않지만 자연스럽고 정갈 해 도시인들의 마음을 차분해게 해주는 힘이 있다. |
| 그리고 시간이 허락되면 도솔암까지 올라 보도록. 왕위를 버린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 높이 17m의 거대한 마애불을 볼 수 있는 산책로 같은 산길이다. 현재 선운사 내의 문화재로는 대웅보전(보물 제290호), 금동보살좌상(보물 제279호) 등이 있다. 금동보살좌상은 대웅보전 옆 관음전에 모셔져 있다. 선운사 앞 주차장 뒤편 광장에서는 매년 동백이 피는 4월경에 수산물축제를 연다. 고창의 특산물인 쭈꾸미, 바지락, 풍천장어 등을 소재로 한 요리를 선보이는 축제이다. 축제기간동안 쭈꾸미를 비롯해 바지락, 풍천장어 등 다양한 수산물 요리들이 선보인다. 선운사의 입장료는 어른 2600원, 청소년 1700원, 어린이 1200원이며, 주차료가 2000원이다. 선운사 : 063)561-0039 고창군청 문화공보실 : (063)560-2224 | |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 선운사로 가려면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호남고속도로 정읍 나들목을 나오면 바로 만나게 되는 삼거리에서 고창 쪽으로 좌회전하여 29번 국도를 타고 조금 달리면 주천 삼거리를 만난다. 여기서 좌측길인 22번 국도를 택해 계속 22번 국도를 따라가면 된다. 중간에 흥덕에 있는 검문소 삼거리에서 우측길로 빠지고, 더 가서 고창으로 갈라지는 상탑삼거리에서 또 우측길을 택하는 것만 조심하면 된다. 이 길이 계속 22번 국도이다. 이 길을 따라 선운사 입구 삼거리까지 가서 좌회전하면 선운사 주차장이다. 선운사는 주차장에서 약 15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된다. 정읍 나들목에서 선운사까지는 약 30분 남짓한 시간이 소요되고, 경부고속도로 서울 궁내동 톨게이트에서 약 4시간 30분 정도 거리이다. | |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 선운사로 가려면 먼저 고속버스를 타고 고창까지 가야 한다. 고창에서 선운사까지는 직행도 있고 완행도 있다. 버스는 많은 편이다. | |
| Comment | |
| 아무 생각없이 동백을 보러 가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듯. 그러나 마음을 열고 선운사를 본다면 선운사만의 쓸쓸함과 그 쓸쓸함이 주는 무게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
| 신흥사 |
| 전북 임실, 사자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신흥사는 백제 성왕 때인 529년, 진감국사가 창건한 고찰로 4백평의 사찰 건물과 3백여명의 승려가 있었던 큰 규모의 대찰이었다고 한다. 대웅전은 몇 차례 불탔지만 원형을 잃지 않아 지방 유형문화재 제112호로 지정되어 있다. | |
| 실상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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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의 실상사는(사적 제309호)는 신라시대에 당나라에서 유학한 증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우리나라에서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17점)한 사찰로 유명하다. 부속 암자인 백장암의 3층석탑(국보 제10호)은 탑의 구조가 특이할 뿐 아니라 전면에 화려한 조각이 새겨진 대표적인 공예탑이다 |
| 안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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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무주, 적상산 정상 부근에 자리한 안국사의 창건은 고려 때(1277년) 월인화상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조선의 태조가 새로 건국을 하고 무학대사로 하여금 축조케 했다는 설도 있다. 어떤 설이 맞든 현재의 안국사는 예전의 안국사가 있던 자리가 아니다. 현재의 안국사는 양수발전소의 건설로 인해 지금의 자리로 이축되어 새로 단장된 절이기 때문이다. 안국사는 조선왕조실록으로 인해 유명해진 사찰이다. 조선왕조실록 중 태조, 태종, 정조의 3대 실록은 2부씩을 만들어 충주 사고에 보관하고 있었다 한다. 그러나 한 곳에만 보관하는 것이 불안해 2부를 더 동사하여 전주와 성주에 사고(史庫)를 신설해 보관하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임진왜란 등의 국난을 겪으면서 모두 사라지고 이 곳 적상산 안국사에 옮겨 놓은 것만이 남았다고 한다. |
| 위봉사, 위봉폭포, 위봉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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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와 동상면 수만리에 위봉산성과 위봉사 그리고 위봉폭포가 모여 있다. 송광사를 지나 조금만 달리면 제법 긴 고개가 나오는데, 이 고개를 올라서면 정상 부근에 위봉산성이 있고 모퉁이를 하나씩 돌면 차례로 위봉사와 위봉폭포를 만날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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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봉산성은 조선 숙종 원년(1675년) 축조된 성으로, 유사시 전주 경기전에 있는 태조의 영정과 조경묘의 시조 위패를 안전하게 봉안하기 위해 쌓은 성이다. 실제로 동학혁명 때 전주가 동학군에 함락되자 태조의 영정과 시조의 위패를 이곳으로 피난시킨 적도 있다. 본래는 폭 3m, 높이 4~5m, 길이 16km의 규모에 세 개의 문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도로변에 있는 서문만 남았다. 이 서문 위에도 예전에는 문루가 있었다고 하나 없어지고 쓸쓸히 석문만 하나 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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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봉산성에서 모퉁이를 하나 돌면 길 왼쪽으로 위봉사가 있다. 위봉사(威鳳寺)는 고려말에 창건된 사찰로 1900년대 초반까지도 이 일대 50여 개의 말사를 거느린 대찰이었는데, 한국전쟁 때 큰 피해를 입어 거의 폐사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1980년대부터 중창이 시작되어 현재 건물들은 모두 최근에 지어진 것들이다. 현재는 보물 제608호로 지정된 큰 법당 보광명전과 관음전, 나한전, 극락전, 위봉선원 등의 건물이 있다. 사찰 자체는 그리 특징적인 것은 없고, 도로에서 위봉사 주차장까지 약 300m 정도의 가로수 길이 정갈하고 운치 있으며, 일주문을 지나 보광명전 앞마당으로 오르는 계단 주변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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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봉사에서 다시 모퉁이를 하나 돌면 도로폭이 좀 넓어지며 길 오른쪽으로 주차공간이 있다. 이 주차공간에 내려 건너편을 바라보면 위봉폭포가 보인다. 높이는 상당히 높은 폭포인데, 수량은 적다. 특히 갈수기에는 물줄기가 너무 가느다랗기 때문에 기대를 하고 찾아간 사람들을 실망시키기 일쑤다. 그러나 주변 경관은 시원한 느낌을 준다. 이 경치 때문에 위봉폭포는 완산8경의 하나로 꼽힌다. 위봉사 : (063)243-7657 |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 위봉산성, 위봉사, 위봉폭포로 가려면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 전주로 빠져야 한다. 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을 나와 전주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조금 달리면 삼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우측길은 전주 시내로 들어가는 길이고 좌측길이 시내를 비껴가는 외곽도로이다. 이 삼거리에서 좌측길을 택해 진안, 임실, 남원 방면으로 계속 직진하면, 익산, 봉동으로 빠지는 17번 국도를 지나 진안으로 빠지는 26번 국도와 만나는 우아사거리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진안 방향으로 좌회전해야 하는데, 직진길은 지하차도이다. 그러므로 차를 우측 차선으로 빼야 좌회전할 수 있는 곳이다. 26번 국도를 약 3분쯤 달리면 길 오른쪽으로 빠지는 길이 나온다. 송광사 이정표도 서 있지만 작은 편이고 "소양"이라는 이정표가 크게 붙어 있다. 이 소양으로 빠져 면소재지 안에서 다시 송광사로 가는 좌측길을 택해 가면 된다. 이 길로 접어들면 벚나무 길과 송광사를 차례로 지나 위봉산 성, 위봉사, 위봉폭포를 만난다. 호남고속도로 전주 전에 있는 익산 나들목을 나와 17번 국도를 이용해도 된다.경부고속도로 서울 궁내동 톨게이트에서 약 3시간 30분 정도 거리이다. | |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 일단 전주까지 가야 한다. 전주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위봉사행 버스를 타면 된다. | |
| Comment | |
| 전주를 여행할 때 시간이 나면 한 번 들러볼 만한 곳이다. | |
| 천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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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의 천황사는 신라 헌강왕 1년(857년)에 무랑대사가 창건한 유서깊은 사찰로, 입구에 있는 수령이 5백년, 둘레 5.1m나 되는 우람한 전나무가 인상적이다.이 천황사는 본래는 주천면 운봉리 안정동에 있었는데, 전설에 의하면 원래의 그 절터가 명당이라고 하여 무주의 박헌갑이라는 사람이 절 뒤에 묘를 썼다. 그러자 절에 있는 우물이 끊기고 쥐 떼가 나와 절 안팎을 휩쓰는 이변이 생겼다. 이에 승려들이 박씨에게 묘를 옮길 것을 간청했으나 박씨는 권세를 앞세워 거절했다. 그 후 절은 폐쇄되고,박씨는 벼락에 맞고 묘는 폭우에 떠내려갔다고 한다. 그 뒤 1871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재건하였다. |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 진안읍에서 운일암반일암 쪽으로 정천면 조림리 삼거리를 거쳐 13km 지점에 있는 갈용리 조포 마을에서 왼쪽으로 꺾어 1km 쯤 들어가면 천황사가 나온다. | |
| 화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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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의 화암사는 신라 진덕여왕 3년에 일교국사가 창건하였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수도하던 사찰이며, 설총도 한 때 이 곳에서 수도하였다고 전한다. 이 절은 국내 유일의 하앙식 건축양식인 극락전(보물 제663호)과 우리나라 고대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우화루(보물 제662호)를 보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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