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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시간…(o^-^)o

방정식의 '방정'이란?

작성자귀뚜라미|작성시간12.12.15|조회수827 목록 댓글 0

수학에는 방정식(方程式)이 많이 있다. 단순한 경우로 일차 방정식, 이차 방정식, ⋯ 등의 다항 방정식이 있고, 고등학교에서 유리 방정식, 무리 방정식, 지수 방정식, 삼각 방정식을 배운다. 대학에서 미분 방정식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 방정식은 여러 가지 문제 상황을 모델링해서 얻게 되고, 이를 풀어 문제를 해결한다. 그런데 ‘방정식’이라 용어는 어디서 왔을까?

 

 

방정식은 어디서 나온 말일까?

‘방정’은 동아시아의 전통 수학인 산학에 등장한다. 산학의 고전 ‘구장산술(九章算術)’은 아홉 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8권의 제목이 바로 ‘방정(方程)’이다. 중국의 수학자 이선란(李善蘭, 1811~1882)은 서양의 수학‧과학책을 다수 중국어로 번역했는데, ‘equation’을 번역하기 위해 ‘방정’을 이용해서 ‘방정식’이란 말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아래에서 설명할 ‘방정’의 원래 뜻을 알아보면, 이 용어 선택이 적절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구장산술’의 방정은 ‘수들을 네모 모양으로 늘어놓고 계산하는 것’

‘구장산술’ 의 방정에서는, 요즘은 아래의 왼쪽과 같은 연립 일차 방정식으로 해결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런 문제의 해법인 ‘방정술(方程術)’에서는 먼저 아래의 오른쪽과 같이 산대를 이용해서 각 방정식의 계수와 상수항을 한 열(산학에서는 이를 행이라 부른다)에 나타낸다. 산대가 나타내는 수를 인도‧아라비아 숫자로 나타내면 가운데와 같다. 한문에서는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쓰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런 배열을 얻는다.

 

실제로, ‘방정(方程)’은 ‘수들을 네모 모양으로 늘어놓고 계산하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수들을 배열한 다음에 한 열에 있는 모든 수에 같은 수를 곱하거나 한 열에서 다른 열을 대응하는 수끼리 빼는 과정을 반복해서 답을 얻었다. 물론, 이 경우에 답은 x = 98, y = 85, z = 67이다. 그 과정은 다음 단락에 나온다. 현대 수학의 용어를 사용하면, 이는 연립 일차 방정식에 대응하는 ‘확대 계수 행렬’을 만든 다음에 ‘기본 열 연산’을 통해 답을 구하는 과정과 같다. 이런 계산 과정에서 음수의 출현을 피하기 어렵다. '구장산술'에서 양수와 음수의 덧셈과 뺄셈 법칙인 ‘정부술(正負術)’이 등장하는 것 역시 제8권 방정이다. 실제로 ‘구장산술’에서는 방정(方程)을 ‘이것으로 양수와 음수가 뒤섞인 것을 다룬다(以御錯糅正負)’고 말하고 있다.

 

 

700년 전의 1차 방성식 풀이 방법

위에 예시한 연립 방정식과 행렬은 중국에서 1299년에 발간된 책 ‘산학계몽’ 하권 방정정부문(方程正負門)의 제1문인 다음 문제의 풀이에 나타난다. 

 

 

해법에서 제시한 답을 얻을 때까지의 계산 과정은 다음과 같다. 1열이 가장 오른쪽의 열이다.

 

 

 

이것은 연립 일차 방정식의 각 방정식에 상수를 곱하거나 방정식끼리 빼거나 더해서 미지수의 개수를 줄여나가면서 해를 구하는 가우스 소거법 또는 가우스‧요르단 소거법이라 부르는 과정과 일치한다. 이 용어에 등장하는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 1777∼1855)와 요르단(Wilhelm Jordan, 1842∼1899)의 생몰년을 보면, 산학이 얼마나 앞섰었는지를 알 수 있다.

 

 

수들을 사각형으로 배열하게 된 이유는 중국의 전설, ‘낙서’에서부터

연립 일차 방정식을 풀 때, 산학에서와 같이 계수만을 나열하면 미지수에 혼동되지 않고 간편하고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서양에서도 연립 일차 방정식을 다루었지만, 계수만으로 해를 구한 것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실제로 수들을 사각형으로 나열한 행렬을 그 자체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매우 뒤의 일로, 1848년에야 실베스터(J. J. Sylvester)의 제의로 용어 ‘matrix’가 등장했다고 한다. 현대 수학에서 행렬의 엄청난 중요성을 생각해보면, 수들을 사각형으로 나열한 것은 수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그렇다면 산학에서는 어떻게 해서 수들을 사각형으로 나열하게 되었는가? 그 기원을 통상 ‘낙서(洛書)’에서 찾는다. 낙서는 오른쪽 그림과 같이 한 개부터 아홉 개까지의 점의 무리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그림은 중국 하 왕조의 시조인 우제(禹帝)가 임금이 되기 전에 항하의 상류인 낙수(洛水)에서 치수 사업을 하고 있을 때 나타난 신묘한 거북의 등에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낙서의 거북(상상도)

 

 

신묘한 거북의 등에 새겨진 ‘낙서’는 마방진의 효시

마방진
가로, 세로, 대각선 3수의 합은 15


이를 숫자로 나타내면, 아홉 개의 수를 정사각형으로 배열한 방진(方陣, square)을 얻는다. 낙서의 모든 행과 열 및 두 대각선 위에 있는 세 수의 합은 15인데, 이런 성질을 만족시키는 방진을 마방진(魔方陣, magic square)이라 한다. 이렇게 해서 낙서는 오락 수학의 큰 주제를 이루고 있는 마방진의 효시였다. 마방진에 대해서는 다음에 좀 더 자세히 알아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수학에서는 아주 단순한 상황과 우연한 기회를 통해 발전의 계기를 얻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신화 또는 전설과 같은 낙서는 수학적으로 흥미로운 오락거리뿐만 아니라 훌륭한 연구 주제를 낳았다.

 

 

 

허민 / 광운대학교 수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네티컷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광운대학교 수학과 교수이다. 저서로 <수학자의 뒷모습>이 있고, 역서로 <영부터 무한대까지>, <수학의 위대한 순간들>, <수학적 경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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