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迷妄(미망)의 촛불

작성자골장|작성시간08.12.31|조회수24 목록 댓글 0

迷妄(미망)의 촛불

등잔불 밑에서 공부하던 시절은 근대화 물결에 밀려나고, 촛불마저도 의식(儀式)이나 분위기 조성에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조명에 그치고 있다. 1950년대만 해도 농촌에서는 석유등잔이 주류를 이뤘다. 촛불을 켜는 부류는 상류층에 속했다.

가람 이병기의 <촛불>은 의식의 불이며, 시대를 넘어서는 불꽃이다.

‘촛불은 여러 의식에 다 쓰이는 바 동방(洞房) 첫날밤에도 이걸 켜므로 화촉지전(華燭之典)이니 하는 문자를 쓰며 화톳불, 관솔불, 등잔불보다 더욱 전아화려(典雅華麗)하다. 청사초롱이나 와옥두실((蝸屋斗室)에는 물론 불전(佛典)과 성당(聖堂)을 밝히는 것도 이것이다.

근래 석유와 와사(瓦斯), 전기가 들어와 유행하므로 화로, 관솔, 등잔 등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으나 양초만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사랑과 헌신의 화신(化身)과도 같은 촛불이 어이없이 ‘광란의 촛불’ ‘거짓의 촛불’로 변질되었다. 촛불을 켜면 면경(面鏡)의 유리알, 의롱(衣籠)의 나전, 어린 것들의 눈망울과 입 언저리, 이런 것들이 하나씩 살아나기는커녕 난데없는 광우병 망령에 시달린다. 수천, 수 만의 촛불이 도심의 밤거리를 누비는 그 시간 사람들의 마음은 칠흑 같은 어둠에 갇히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촛불문화제라는, 참으로 순수한 이름의 축제가 광우병괴담의 브레이크 없는 열차에 편승하여 ‘촛불장난’으로 둔갑했다. 두 여중생이 미군장갑차에 치여죽었을 때도 마치 미국이 한국인을 무시하여 일부러 사고를 낸 것처럼 반미(反美) 촛불시위를 벌였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 때도 나라를 둘러엎을 듯 탄핵반대 촛불시위를 벌였다. 보안법 반대 시위 때도 좌파세력들이 친북 촛불시위를 벌였다.

국민 모두가 즐길 축제에 있어야 할 촛불이 과격시위 현장의 꼭두각시가 된 것은 비극이다.

현재 광우병에 걸린 미국소가 없고, 인간광우병 환자는 더더구나 없는 데도 미국산 쇠고기는 인간광우병을 옮기는 ‘미친 소’라 소리 지르며 거리로 뛰쳐나와 거짓 촛불을 들고 정권을 불사르고 나라를 태우려고 설친다. 촛불이 ‘광우병 괴담’ 광신자들의 전매특허인양 빗나간 촛불 시위를 비판이라도 하면, 벌떼처럼 일어나 마녀사냥식 비난을 퍼부으며 심지어 공갈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마치 촛불만 들면 선(善)이고 정의인양 착각하는 무리들이 ‘잃어버린 10년’을 복원하기 위해 출범한 이명박 정부를 출발선에서부터 다리를 걸고 넘어진다. 한 번 켠 촛불을 줄창 들고 서서 ‘나 살고 너 죽자’며 끝장을 보려는 자들의 불온한 속내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라고 노래한 시인 김동명에게는 촛불은 사랑이며, 헌신이다.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자신을 태우는 사랑이야말로 영원하다. 양초는 불에 녹아지고 헌신의 보답으로 촛불은 황망히 빛난다. 전신이 이토록 완벽하게 불의 질료인 것은 다시 없다. 그토록 숭고한 촛불이 거짓 촛불로 인해 날로 그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거짓 촛불이 지배하는 촛불공화국의 불명예를 뒤집어쓰기 전에 의도적, 찰나적, 즉흥적, 이념적 촛불난동을 당장 거둬 치워야 한다.

‘미친 소’가 없는데도 “노동자가 광우병에 걸리면 노동력을 상실한다”는, 소가 들어도 웃을 얼토당토않은 억지주장을 펴면서까지 불장난을 계속한다면 밤에 자다가 오줌 싸는 유치한 경지를 넘어 멀쩡한 집을 태우고 말 것이다.

당초 ‘먹을거리 안전 확보’라는, 그래도 명분을 가지고 점화한 촛불시위가 존재하지도 않는 ‘광우병 괴담’을 퍼뜨린 어느 방송사의 악의적 보도를 맹신한 나머지 너도나도 거리로 몰려나오자, 이것을 국민의 힘이라고 착각한 일부 세력들이 ‘이 때다’ 하고 ‘정권 퇴진’ 쪽으로 방향을 바꿔 반(反)정부 운동의 마각(馬脚)을 드러내고 있다. 시민 및 노동단체가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절대다수의 국민이 뽑은 이명박 대통령을 백날도 되기 전에 “미친 소 너나 먹어라”는 피킷을 들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며 정권퇴진을 외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촛불 시위는 비폭력 평화 시위의 상징이며, 침묵 시위의 형태를 띤다. 대표적인 것으로 1988년 체코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촛불 시위가 있다. 우리나라의 촛불 집회는 1992년 하이텔 유료화 정책에 맞서 일어난 것이 그 시초이며,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을 추모하기 위해 2002년 11월 일어난 촛불 집회가 가장 극렬했다. 촛불집회는 시각적 효과가 크고, 일과를 끝낸 시민들의 참여가 용이하며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장점이 있으나 악용 소지도 그만큼 크다.

소설가 이문열의 촛불시위에 대한 소신은 ‘할 말을 하는 지식인의 출현’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그는 “촛불시위는 위대하면서도 끔찍한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라고 비판했다. 그는 촛불집회를 ‘촛불장난’이며, 촛불시위에 맞서 의로운 사람들이 맞서 일어나야 할 정도로 빗나갔다고 강하게 질책하면서 “불장난을 오래 하다 보면 결국 불에 데게 된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가 아직 꺼내지도 않은 정책까지도 전부 꺼내어 그걸 전부 반대하겠다고 하면서 촛불시위로 연결하는 세력을 향해 ‘집단난동’이라고 규정했다.

조갑제 닷컴 대표 조갑제의 ‘거짓의 촛불을 끄자’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수 백 년 쇠고기를 주식으로 해온 미국사람이 광우병에 걸리지 않았다. 이는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광우병 사건이 한국에서만 문제되는 것은 쇠고기가 미국 쇠고기 때문이며 주도자도 맥아더 동상을 끌어내리려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비극적 사실은 거짓말에 대해서는 응징을 가해야 하는데, 정부가 침묵하고 있다. MBC PD수첩과 뉴스 등은 우리 언론사상 최악의 날조, 왜곡, 과장보도인데도 정부가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정부가 계속 양보하고 이 대통령이 나와서 사과하니 이것이 맞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선동세력이 정의의 사도가 되고 승리자가 되고 하다 보니 경찰도 겁을 먹고 물대포를 제대로 쏘지 못하고 진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니 법치도 지키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이쯤에서 迷妄의 촛불을 끄자. 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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