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교회에서 강해한 잠언강해 중 한편의 설교를 올립니다.
제목: 현숙한 여인의 지혜 4 (잠언강해211)
본문: 잠언 31:15-18
인사
“당신이 기적의 주인공입니다.”
서론
오늘 현숙한 여인의 지혜 네 번째 시간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가정에서 현숙한 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현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세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요점만 말씀 드리자면
첫째 현숙한 여인은 신뢰 받는 여인이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31장 11절에“그런 자(현숙한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둘째 현숙한 여인은 착한 여인입니다.
12절에 “그런 자(현숙한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
셋째 현숙한 여인은 부지런한 여인입니다.
13절 이하에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상고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오며”
오늘 저는 오늘 제 전도대상자를 만났습니다.
그 분이 “목사님, 귀신이 있습니까?”, 저는 자신 있게 “예, 귀신이 있습니다.”
어제 목사님 한 분을 만났는데 “귀신이 없다고 하던데요?” “귀신이 없다고 말하는 목사님이 있다면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목사님이고 성경을 모르는 목사님입니다. 구약성경이든지 신약성경이든지 첫 성경인 창세기나 마태복음에 얼마나 많은 마귀, 귀신들이 나오는데 귀신이 없단 말입니까?”
귀신의 존재를 믿고 인정한다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귀신을 두려워한다든지,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신앙보다 귀신에게 집중하는 신앙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 귀신은 있습니다. 그리고 사단의 졸개인 귀신을 묶어버리는 영적 전쟁 역시 아주 중요한 신앙의 한 부분입니다.
제가 왜 본문과 관련도 없는 귀신의 이야기를 꺼내느냐? 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의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단의 역사를 염두해 두지 않는다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듯이 또 다른 중요한 신앙의 요인 중 하나가 바로 경제, 돈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등한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John Wesley)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천국에 가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질문하실 것이다. 시간을 어떻게 관리했는가? 재물을 어떻게 관리했는가? 자녀를 어떻게 관리했는가?”
돈을 잘 관리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좌우할 만큼 아주 중요한 것이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누가복음 16:11)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는 부원비젼 1000의 10가지 기도 제목 중에 일곱 번째가 “상주의 상권을 다스릴 지도자를 주소서”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현숙한 여인의 네 번째 지혜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현숙한 여인의 지혜, 현숙한 그리스도의 신부의 지혜는 바로 경제와 관련된 지혜입니다.
현숙한 여인은 가정의 경제를 회복하는 여인입니다.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자기 집 사람에게 식물을 나누어 주며(공정한 분배), 여종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15)
지혜자는 현숙한 여인이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숙한 여인은 게으르지 않고 근면합니다.
미련한 여인은 게으르고 빈둥거리며, 하품하며 늦게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여인은 항상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숙한 여인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하루 일을 계획하고 성실하게 계획한 일을 해냅니다.
또한 현숙한 여인은 집에서 일하는 종과 하인들에게 하루 일을 정해서 맡깁니다.
"밭을 간품하여 사며 그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심으며"(16)
현숙한 여인은 경제와 사업(투자)에도 관심을 갖습니다.
"밭을 간품하여 사며“에서 간품이란? "밭을 살펴보고 산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원래 투자의 가치가 있는가 '심사숙고하여 밭을 산다.'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밭처럼 비싼 부동산 구매는 가장이 맡아서 처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비록 구매 결정을 가장이 해도, 구매 과정이나 협상 과정에서 아내가 일을 지혜롭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현숙한 여인은 집 안 일을 잘 돌볼 뿐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중요한 대외적인 일에도 협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토지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율법은 원칙적으로 토지를 매매하는 행위를 금지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본문에 나오는 매매는 가정 형편상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매매로 보입니다. 이러한 매매는 희년이 될 때까지 곡식을 소출할 수 있는 곡식의 양을 계산해서 밭 값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 땅을 산 사람은 희년이 되면 아무 조건 없이 다시 원래 주인에게 그 땅을 돌려주어야 했습니다(레 25:28).
그녀는 스스로 번 돈으로 포도원을 사서 그것을 잘 관리합니다.
질문 : 크리스천으로서 과연 주식 투자를 해도 좋은지 알고 싶습니다.
주식을 투자로 하는 것과 투기로 하는 것의 차이도 알고 싶습니다. 국민의 4분의 1 이상이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주식으로 오히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듣고 있긴 한데, 성경적으로 바른 기준이 무엇인가 알고 싶습니다.
답변 : 주식 투자는 자신이 가진 돈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좋은 재테크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또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서라도 주식 투자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주식 투자에는 이렇게 ‘윈-윈’의 요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매스컴을 통해 소수의 사람이 주식시장에서 몇 십 배, 혹은 몇 백 배의 수익을 올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같은 꿈을 가지고 주식 시장에 뛰어듭니다. 그런데 그런 결과는 만 명에 한 사람, 또는 십만 명 중 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특별한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대단한 수익을 올리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모든 크리스천은 돈에 있어서도 청지기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돈을 적게 갖고 있든지, 많이 갖고 있든지 그 돈을 잘 관리하는 사람으로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돈을 쉽고, 빨리, 많이 벌어서는 잘 관리할 능력을 갖출 수가 없습니다. 복권에 당첨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그 돈을 관리할 능력이 없어서 오히려 더 큰 화가 미쳤던 경우가 많습니다. 돈을 쉽고, 빨리, 많이 벌고자 하는 태도는 매우 위험한 자세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그릇된 동기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돈을 쉽고 빨리 많이 벌고자 하는 기대를 가지고 증권 회사의 전광판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터에서도 일은 안 하고 인터넷으로 주식 시황만을 보고 있는 직장인들도 많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른 투자자의 자세가 아니며, 이렇게 해서 좋은 결과를 가져 온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크리스천이 주식을 투자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나, 앞서 언급한 잘못된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결과에 관계없이 주식 투자를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이익 뿐 아니라, 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워렌 버핏에게 영향을 주었던 투자의 아버지 벤자민 그레이엄의 말을 소개합니다.
"투자 행위란 철저한 분석에 바탕을 두고 투자 원금의 안정성과 적당한 수익성이 보장되는 것을 말하며, 이런 제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행위는 투기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신앙과 가족을 담보로 하여 재테크에만 관심을 갖는 경우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식 거래의 경우 투기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떼돈을 벌려고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투기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투자라고 생각하면서 주식 투자를 하려고 해도 투기적인 요소가 내포되어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관심있는 업계나 업종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주식을 구입한다면 좋은 투자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힘으로 허리를 묶으며 그 팔을 강하게 하며“(17),
미련한 여인은 풀어져서 빈둥거리고 놀지만, 현숙한 여인의 근면하고 민첩하고 활동적입니다.
그녀는 자기 재능을 수건에 싸서 땅에 묻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가산을 점점 더 크게 늘려갑니다.
미련한 여인은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비활동적인 것을 좋아하시만, 지혜로운 여인은 활동적이고 일할 수 있는 의상을 더 좋아합니다. 게으른 여인은 풀어진 옷을 입고 할 일 없이 모여 앉아서 잡담이나 남을 흉보는 데 시간을 소일합니다. 그러나 현숙한 여인은 허리를 묶고 나가서 열심히 집안일과 사업을 돌아보며, 자기의 사업을 번영하게 만듭니다.
"자기의 무역하는 것이 이로운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18)
미련한 여인은 좋은 환경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여인은 부지런하여 좋은 상품을 싸게 구해다가, 고객들에게 공급하기 때문에 많은 고객들을 확보하게 되고, 사업은 점점 더 번창하게 됩니다.
또한 지혜자는 현숙한 여인은 밤에도 등불을 끄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현숙한 여인은 자신이 하는 일이 번창하기 때문에, 밤에도 열심히 일을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녀는 밤에도 등불을 끄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할 만큼 사업이 번창합니다.
이러한 여인의 모습은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여리고 나긋나긋한 여성상과는 많이 다릅니다.
잠언서에서 말하는 여인상은 부지런하며, 사업적 수완이 있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쟁력 있는 여인입니다. 그러므로 현숙한 여인이 집에 들어오게 되면, 그 가정은 날로 번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지혜는 가정을 성공과 번영으로 인도합니다.
결론
현숙한 여인, 현숙한 그리스도 예수의 신부는 가정의 경제를 회복시킬 하나님의 지혜에 눈을 뜨야합니니다.
하나님이 만복의 근원이신데 왜 재정관리에 실패할까?
왜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께 재정 원칙을 배우려 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것에 관심이 많아도 너무 많다. 어디서 유명한 재테크 강사가 강의한다고 하면 부지런히 쫓아가서 듣는다. 부자의 비법을 담은 책이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고 있다. 서점에 가 보라. 얼마나 많은 재테크 책들이 판매대를 뒤덮고 있는가. 부자가 되는 비법이 넘쳐 나는데도, 사람들은 모두 돈 때문에 한숨을 쉬며, 돈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고, 수입이 적은 것도 아닌데 늘 돈에 허덕인다. 크리스천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은 왜 재정관리에 실패했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돈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과 하나님이 돈을 다루시는 기준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돈의 영향력에 휘둘려 인생이 왜곡되지 않을 수 있는 진정한 부의 원칙을 알고 계신다. 그리고 믿고 구하는 자에게 그것을 분명히 알려 주신다.
왜 하나님을 믿는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재정 원칙을 가르쳐 주지 않는가?
교회에서 ‘돈’ 이야기를 잘못 꺼냈다가는 ‘돈 밝히는’ 사람으로 여겨져 은밀하게 왕따를 당하기 때문이다.
집사님 한 분이 보증을 섰다가 망했다. 목사님에게 와서 하소연을 늘어지게 했다.
목사님이 그에게 물었다. “집사님은 성경에 보증서지 말라는 얘기 못 보셨어요?”
“아니, 목사님 어디 그런 말이 있습니까? 찾아 주세요.”목사님이 찾아 줬다. 그랬더니 집사님이 대뜸 한다는 이야기가 이랬다. “그럼, 저 망하게 된 것은 목사님 책임입니다. 보증서지 말라는 말이 있으면 가르쳐 주셨어야죠?”
우리 크리스천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돈을 버는 것 자체는 잘못된 것도 아니고 불경건한 일도 결코 아닙니다. 돈 버는 것에 대해서 막연히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돈을 벌다가 돈을 사랑하게 되거나 혹은 부정적인 방법이나 허황된 생각으로 돈을 벌게 될 가능성 때문인 듯합니다. 잘못된 생각이 아닙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기 때문에(딤전 6:10)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부정한 방법이나 허황된 생각으로 돈을 버는 것도 삼가야 합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크리스천들이 합법적인 일을 해서 버는 돈은 하나님의 ‘거룩한 돈’입니다.
제 손으로 수고하여 버는 돈은(엡 4:28)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직업이나 사업 그 자체를 거룩한 사명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돈을 법시다.
제물의 복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복의 근원이시며(창 1:27-28) 우리들에게도 복의 근원이 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창 12:1-3).
요셉이 아브라함의 언약에 담긴 복을 그의 가정 일터인 보디발의 집에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많은 주부들이 힘든 상황에서 가정을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의 가정 환경을 탓하고 남편을 비난하곤 합니다. 요셉의 상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형제들에게 팔려 타향에 와서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보디발의 가정 총무로서 “집안일과 밭일” 로 업무량도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또 주인의 아내까지 젊고 준수한 요셉을 잔뜩 눈독들이며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하는 요셉에게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고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는 표현을 창세기 기자가 두 번이나 반복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요셉의 주인 보디발이 볼 때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분명히 보였습니다. 가시적으로 일의 성과가 보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보디발은 자기 집안의 모든 일을 요셉에게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
보디발의 집은 복 받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보디발은 살육하며 전쟁하는 사람이었고 그의 아내는 요부(妖婦)였습니다. 하나님이 그 집에 복을 주신 이유는 바로 요셉 때문이었습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았을 때부터 하나님이 그 집에 복을 내리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창세기 기자는 말합니다. 우리도 결코 녹녹하지도 않고 편안하지도 않은 우리 가정에서 아내가 가정의 경제를 일으키는 현숙한 여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